목포 3.1독립운동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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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목포시 죽교동 330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3.1독립운동탑
3.1독립운동 목포열사

강석태 곽우영 곽희주 권영례 김봉원 김나열
김연순 김영애 김영주 김옥남 김옥실 김용문
남궁혁 문복금 박복술 박복영 박상술 박상열
박상오 박여성 박음전 박종근 박종두 배치문
서광조 서지현 서화일 양병진 양일석 오도근
오재복 이겸양 이금득 이남순 주유금 차남석

위 명단 외 열사의 자료 미비로 함께 새기지 못함을 아쉽게 여깁니다.
자주 독립국인 대한제국의 주권을 무력으로 강제 찬탈한 침략주의 일본이 강제통치로 말미암아 암흑과 극고에 신음하던 한민족은 마침내 서기 1919년 3월1일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고 일제히 궐기하여 독립만세를 고창 방방곡곡에 태극기의 물결을 일으켰으니 이 의거를 이름하여 역사는 '3.1독립운동'이라 기록하였다. 우리 고장 목포에서도 역사의 소명 아래 박상열의 주도로 이해 4월8일 상오 10시를 기해 시민과 학생이 총궐기 독립선언문과 경고문을 살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여 일제를 진감시킴으로써 한인의 독립혼을 중외에 과시 천명하였다. 귀축과 같은 일제 헌병과 경찰은 열사 80여 명을 체포 투옥하여 천인공노할 고문을 자행 박상술 서지현 양 열사는 고문으로 분사하였고 40여 명의 열사는 일제 법정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되어 주권 잃은 국민의 처절한 슬픔을 반○하였다. 혹독한 노역에서 풀려난 박상열은 중국에 망명 상해임시정부 독립군 자금조달 임무를 맡아 수차 국내에 잠입 밀약 중 일경에 발각되어 재차 옥고를 치루었고 여타 열사들도 일제의 간단없는 감시 아래 신고와 간난의 세월을 보냈다. 여기 3.1독립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고 향리 열사들의 숭고한 독립정신과 자유를 갈구 투쟁한 자주민의 강한 의지를 현창하여 후손의 의표로 삼고자 역사의 이름으로 이 탑을 세운다.
3.1독립운동탑
국가보훈처지정 현충시설물 제53-1-1호

이 탑은 3.1독립만세 사건 발생 이후 1919년 4월 8일 목포시 주민 등 만세사건 참여자들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1983년 8월에 건립하였다. 자주독립국인 대한제국의 주권을 무력으로 찬탈한 침략주의 일본의 강제 통치로 말미암아 암흑과 질곡에 신음하던 한민족은 마침내 1919년 3월 1일 대한제국이 자주독립국임을 세계만방에 선언하고 일제히 궐기하며 독립만세를 고창, 방방곡곡에 태극기의 물결이 일어났을 때 우리 고장 목포에서도 역사의 소명 아래 박상렬의 주도로 이해 4월 8일 상호 10시를 기해 시민과 학생이 총궐기, 독립선언문과 경고문을 살포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절규하여 일제를 놀라 떨게 함으로써 한인의 독립혼을 만방에 널리 알렸다.
일본 경찰과 헌병들이 잔혹한 방법으로 시위군중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80여 명이 체포되어 심한 구타와 고문에 시달렸고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많았다. 한편 3.1독립만세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기 위하여 매년 4월 8일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가 이곳에서 실시되고 있다.
3.1독립운동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