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우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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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 산105-6
탐방로그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 산105-6 독골 부안임씨 밀직공파 추모공원 입구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공덕비를 찾아가고 있다.
월곶면 개곡리 산87의 애국지사의 묘소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같은 위치에 임용우의 묘가 있다.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공덕비는, 그의 높은 교육정신과 애국정신을 후대에 선양하기 위해 부안임씨 밀직공파 김포종중에서 2016년에 건립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을유년 9월 25일 생 / 기미년 4월 23일 졸
孺人 慶州李氏 之墓(유인 경주이씨 지묘)
부 용우 갑오 4월 19일 졸 / 자 명덕, 손 종원, 증손 도연, 고손 병휘 대근
김포시 월곶면 개곡리 산105-6 독골 부안임씨 밀직공파 추모공원 입구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공덕비를 찾아가고 있다.
월곶면 개곡리 산87의 애국지사의 묘소도 이곳으로 이장되었다고 한다.
독립운동가 임용우의 묘
追慕公園(추모공원) 부안임씨 김포종회
殉國烈士 林容雨 先生 功德碑(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공덕비)
殉國烈士 林容雨 先生 功德碑(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공덕비)
선생은 구 한 말인 1884년 9월 월곶면 개곡리에서 학사공(繼子楨子)의 17세 후손으로 태어나시어 통진의 창신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3년간 봉직하셨으며, 이후 교육시설이 불모지인 옹진군 덕적도에 사재를 출연하여 명덕학교를 설립하시어 8년간 봉직하셨다. 선생은 일제에 항거하며 민족 해방을 노심초사 계책하시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 공원 독립선언식에 지역 대표로 참가한 후 김포시 월곶면 등지에서 시민들과 같이 독립만세를 시창하고 시위행진을 주도 하시며 일본에 저항하셨다. 그해 5월 일본군에 검거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 되었으며 모진 고문 끝에 35세를 일기로 옥사하셨다. 현재 서대문 형무소 순국선열 현충사 내에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1991년 8월 15일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 되었다. 이에 우리 김포 종중에서는 선생의 높은 교육정신과 애국정신을 후대에 선양하기 위하여 선생의 공덕비를 세워 드립니다.
2016년 11월 09일 공덕비 건립추진 위원장 임종훈
부안임씨 밀직공파 종중회장 임종호 외 회원 일동
저 위쪽 좌측에 흰색 계통의 묘비가 보인다.
독립유공자 임용우(林容雨) 선생의 묘
임용우 선생은 김포 사람으로 1919년 3월 29일 최복석, 윤영규 등과 월곶면 갈산리 조강리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선생은 당시 덕적면에 있는 명덕학교 교사로, 이 날 정오경 갈산리에서 최복석이 만든 태극기를 선두로 만세시위 행진을 벌이고 14시경 군하리 향교와 공립보통학교 면사무소를 차레로 행진하였다.
4월 9일에는 명덕학교 운동회를 덕적도 해안가에서 개최하여, 여기 모인 많은 학생과 참관자들의 앞으로 나아가 이재관, 차경창 등과 독립만세를 선창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이 해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일제의 잔인한 고문으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殉國烈士 扶安 林公 容雨 先生 之墓(순국열사 부안 임공 용우 선생 지묘)
殉國烈士 扶安 林公 容雨 先生 之墓
(순국열사 부안 임공 용우 선생 지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