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나주시 경현동 225-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기념비
우리의 유구한 민족사를 통하여 수없이 겪는 수난과 시련앞에서 끈질긴 생존권과 자주성을 끝내 꺽이지 않고 국난을 극복하였기에 민중의 맥박을 통하여 그 강인한 민족혼은 연면히 이어져 왔다.
일제의 식민지 교육과 민족 차별에 항거하여 자유와 독립을 외치고 이 나라 학도들이 맨주먹으로 총궐기했던 광주 학생 독립운동- 이는 얼마나 찬연한 금자탑이겠는가. 1028년의 광주고보, 광주 농림고의 대맹휴투쟁 이래 고조되어간 항일민족감정은 마침내 이듬해 10월 30일 하오 나주역 출차구를 벗어나온 한일 기차 통학생간의 충돌사건으로 폭발하고야 말았다. 일인학생들의 희롱과 만행 그리고 뼈에 사무친 수모는 이 겨레의 대일 적대감에 불을 붙였은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간 함성과 파맺힌 절규는 영원 무궁토록 메아리쳐 들릴것이다.
이제 늦게나마 여기 광주 학생 독립운동의 진원지 나주에 온 군민의 정성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고 불멸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여 이 고장의 긍지와 보배로운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일제의 식민지 교육과 민족 차별에 항거하여 자유와 독립을 외치고 이 나라 학도들이 맨주먹으로 총궐기했던 광주 학생 독립운동- 이는 얼마나 찬연한 금자탑이겠는가. 1028년의 광주고보, 광주 농림고의 대맹휴투쟁 이래 고조되어간 항일민족감정은 마침내 이듬해 10월 30일 하오 나주역 출차구를 벗어나온 한일 기차 통학생간의 충돌사건으로 폭발하고야 말았다. 일인학생들의 희롱과 만행 그리고 뼈에 사무친 수모는 이 겨레의 대일 적대감에 불을 붙였은 삼천리 방방곡곡으로 번져나간 함성과 파맺힌 절규는 영원 무궁토록 메아리쳐 들릴것이다.
이제 늦게나마 여기 광주 학생 독립운동의 진원지 나주에 온 군민의 정성을 모아 기념비를 세우고 불멸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여 이 고장의 긍지와 보배로운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기념비
광주학생독립운동유공자(나주출신)
강달모 김광용 김만섭 김보섭 김성남
김철근 김형호 나석현 나종남 박공근
박기옥 박동희 박준채 서형수 서형윤
손동출 송성수 승천일 양영택 오쾌일
원복준 유찬옥 윤승현 이경연 이계춘
이광춘 이금자 이대기 이성환 이순태
이영범 이영범 이용근 이이근 이창신
이채후 정세면 정우채 최희선 최희연
홍기열 홍민후 홍기창 김재홍 최영회
강달모 김광용 김만섭 김보섭 김성남
김철근 김형호 나석현 나종남 박공근
박기옥 박동희 박준채 서형수 서형윤
손동출 송성수 승천일 양영택 오쾌일
원복준 유찬옥 윤승현 이경연 이계춘
이광춘 이금자 이대기 이성환 이순태
이영범 이영범 이용근 이이근 이창신
이채후 정세면 정우채 최희선 최희연
홍기열 홍민후 홍기창 김재홍 최영회
광주학생독립운동 나주 진원 건립기념 헌성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숭고한 얼을 길이 뱇내기 위하여 남성 김영환 선생께서 사재와 정열을 바쳐 진원기념비의 건립을 시작하여 주신 높은 뜻에 따라 여러분의 중론과 성원을 모아 여기 기념비를 건립하면서 그 업적을 새겨 둡니다.
전남 나주시 경현동 225-3 나주고등학교 옆 광주학생운동진원기념비
광주학생독립운동진원기념비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직접적인 동기는 1929년 10월 30일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던 한일 학생들이 나주역에서 충돌하면서 비롯되었다. 일본학생들이 한국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모욕적인 행동에 격분한 한국 학생들과의 충돌은 11월 1일까지 지속되었다. 일본인 교사와 경찰의 편파적인 대응에 광주학생들이 격분하여 11월 3일 대규모 학생운동으로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전국적인 항일 학생독립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더불어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되어,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직접적인 동기는 1929년 10월 30일 나주에서 광주로 통학하던 한일 학생들이 나주역에서 충돌하면서 비롯되었다. 일본학생들이 한국 여학생들을 희롱하는 모욕적인 행동에 격분한 한국 학생들과의 충돌은 11월 1일까지 지속되었다. 일본인 교사와 경찰의 편파적인 대응에 광주학생들이 격분하여 11월 3일 대규모 학생운동으로 활화산처럼 폭발하여 전국적인 항일 학생독립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6.10만세운동과 더불어 3대 독립운동으로 평가되어, 11월 3일을 학생의 날로 지정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