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38
- 탐방로그
-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38에 위치한 임현주, 최익현 선생 사당인 오봉정사(五鳳精舍)를 찾았다. 오봉정사는 구례군향토문화유산 제7호이다. 후손 되시는 문중대표 종손 임병곤 선생께서 탐방을 도와주셨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후손되시는 임병곤 선생이 오셔서 문을 열어주셨다.
五鳳精舍(오봉정사) -염재(念齋)
衣冠瞻視(의관첨시) - 尤菴 筆(우암 필)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현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현판
警堂記(경당기)
면암 최익현 선생이 쓰신 친필이다.
면암 최익현 선생이 쓰신 친필이다.
敬次(경차) - 전주인 이종의 동암
謹次 五鳳精舍 韻(근차 오봉정사 운) - 임술 원회 춘암 최상문
五鳳精舍 次韵(오봉정사 차운) - 아석 이최승, 잠우 황진모, 고암 황병중, 배헌 조영선, 아산 최원식, 계해 청화 상한
謹次 五鳳精舍 韻(근차 오봉정사 운) - 남파 김효찬, 갑자 계동 삼봉 김영숙
謹次(근차) - 임술 구월 상한, 강릉인 유인태 만산
謹次(근차) - 동촌 임병균
五鳳精舍 記(오봉정사 기) - 강위단알 중춘하한 손우 월성 최영조 근기
次 林顯周 五鳳精舍 韵(차 임현주 오봉정사 운) - 오준선, 갑자 삼월 하완, 송안 박해원 신유 시월 하완
謹題 五鳳精舍(근제 오봉정사) - 운촌 박병무
謹題 五鳳精舍(근제 오봉정사) - 운촌 박병무
作亭有感(작정유감) - 오산 임풍호
謹次(근차) - 한주석
謹次(근차) - 한주석
敬次(경차) - 전교관 한주 이양래
五鳳精舍 次韵(오봉정사 차운) - 신유 수하 연사 김택주
五鳳精舍 次韵(오봉정사 차운) - 신유 수하 연사 김택주
謹次 五鳳精舍 元韻 幷小亭(근차 오봉정사 원운 병소정) - 경신 오추 하한 위관 윤충하
醉眠石(취면석) : 술에 취하면 잠든다
- 경당 선생 친필이다.
- 경당 선생 친필이다.
취면석 위에 날짜가 새겨져 있었는데 거의 판독이 안 된다.
구례군민 일동 건립
전남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 38 오봉정사.
오봉정사
향토문화유산(유형) 제7호 /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 38번지
오봉정사는 경당 임현주(1858-1934) 선생이 민족정신과 항일정신을 후학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도장이다. 임현주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하였으며 항상 정의로운 일에 앞장 서 왔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이루어졌을 때 최익현 선생을 따라 남원에서 3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을 습격하였으나 불행하게도 포로가 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석방된 후 전 재산을 처분하여 1918년 3월 이 곳에 정사를 짓고 제자들에게 독립정신을 배양하기 위해 여생을 바쳤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자들이 뜻을 모아 제향을 올리고 있다.
향토문화유산(유형) 제7호 /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 38번지
오봉정사는 경당 임현주(1858-1934) 선생이 민족정신과 항일정신을 후학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도장이다. 임현주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하였으며 항상 정의로운 일에 앞장 서 왔다. 1905년 을사조약이 이루어졌을 때 최익현 선생을 따라 남원에서 300여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을 습격하였으나 불행하게도 포로가 되어 옥고를 치르면서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석방된 후 전 재산을 처분하여 1918년 3월 이 곳에 정사를 짓고 제자들에게 독립정신을 배양하기 위해 여생을 바쳤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제자들이 뜻을 모아 제향을 올리고 있다.
오봉정사(五鳳精舍)
관리번호 : 55-1-8(구례군향토문화유산 제7호 / 관리자 : 문중대표 종손 임병곤 / 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 38 / 규모 : 부지 5,107㎡(1,545평), 五鳳精舍(오봉정사), 鳳山祠(봉산사)
오봉정사는 경당 임현주(1858-1934) 선생이 민족정신과 항일정신을 후학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강학소이다. 경당 임현주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하였으며, 항상 정의로운 일에 앞장 서 왔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문하생으로 태인의 무성서원 의거에 참여한 장수 격인 12인 중의 1인으로 남원, 운봉, 정읍, 태인, 순창, 곡성, 영천 등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병기, 탄환, 군량미 등을 입수, 의병활동을 하던 중 순창에서 포로가 되어 경성 사령부로 끌려가 옥고를 치르면서 태형 100도에 처해지는 등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석방된 후 면암이 순국하자 시신을 맞아 충남 청양군 정산에서 장례를 지낸 후 남원에서 사재인 전 재산을 처분하여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바다리)로 이사, 1918년 섬진강이 보이는 이곳 오봉산 기슭에 정사를 짓고 주자를 봉안하고 면암 선생도 배향 평생 백양자를 쓰고 후진양성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경당의 사후에 제자들이 뜻을 모아 봉산계를 조직,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사당 내에 있는 봉산사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관리번호 : 55-1-8(구례군향토문화유산 제7호 / 관리자 : 문중대표 종손 임병곤 / 위치 :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금정리 산 38 / 규모 : 부지 5,107㎡(1,545평), 五鳳精舍(오봉정사), 鳳山祠(봉산사)
오봉정사는 경당 임현주(1858-1934) 선생이 민족정신과 항일정신을 후학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강학소이다. 경당 임현주 선생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강직하고 총명하였으며, 항상 정의로운 일에 앞장 서 왔다.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문하생으로 태인의 무성서원 의거에 참여한 장수 격인 12인 중의 1인으로 남원, 운봉, 정읍, 태인, 순창, 곡성, 영천 등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병기, 탄환, 군량미 등을 입수, 의병활동을 하던 중 순창에서 포로가 되어 경성 사령부로 끌려가 옥고를 치르면서 태형 100도에 처해지는 등 극심한 고문을 당하여 반신불수의 몸이 되었다. 석방된 후 면암이 순국하자 시신을 맞아 충남 청양군 정산에서 장례를 지낸 후 남원에서 사재인 전 재산을 처분하여 구례군 토지면 파도리(바다리)로 이사, 1918년 섬진강이 보이는 이곳 오봉산 기슭에 정사를 짓고 주자를 봉안하고 면암 선생도 배향 평생 백양자를 쓰고 후진양성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 경당의 사후에 제자들이 뜻을 모아 봉산계를 조직,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사당 내에 있는 봉산사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鳳山祠(봉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