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758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梅泉軒(매천헌)
매천저서
◎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 동비기략(東略)
- 매천 선생의 저술을 보지 않고는 우리의 근태사를 연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음
◎ 매천집(梅泉集). 매천속집(梅泉續集), 매천시집(梅泉詩集)
- 절명시(詩), 문변3수(聞變三首), 5애시(五哀詩) 등 1.015수를 남김
매천야록 - 한말의 시인·학자·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이 기술한 한말비사(韓末秘史)로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집정으로부터 1910년(순종 4) 국권피탈에 이르기까지의 47년간의 한국 근대사를 기술한 편년체 역사서이다.
매천집, 매천속집 - 매천집은 황현의 문집으로 1911년 중국 상하이에서 친구 김택영이 편집하여 간행했다. 매천속집 2권은 1912년 "아들 암현이 수집한 것을 김택영이 정리·간행한 것이다.
오하기문 - 1864년(고종 1)부터 1907년(순종 1)까지의 조선말·대한제국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특히 갑오년(1894) 부분은 고부 봉기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월일 별로 상세히 기록하였다.
◎ 매천야록(梅泉野錄), 오하기문(梧下記), 동비기략(東略)
- 매천 선생의 저술을 보지 않고는 우리의 근태사를 연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음
◎ 매천집(梅泉集). 매천속집(梅泉續集), 매천시집(梅泉詩集)
- 절명시(詩), 문변3수(聞變三首), 5애시(五哀詩) 등 1.015수를 남김
매천야록 - 한말의 시인·학자·우국지사인 황현(黃玹)이 기술한 한말비사(韓末秘史)로 1864년(고종 1)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집정으로부터 1910년(순종 4) 국권피탈에 이르기까지의 47년간의 한국 근대사를 기술한 편년체 역사서이다.
매천집, 매천속집 - 매천집은 황현의 문집으로 1911년 중국 상하이에서 친구 김택영이 편집하여 간행했다. 매천속집 2권은 1912년 "아들 암현이 수집한 것을 김택영이 정리·간행한 것이다.
오하기문 - 1864년(고종 1)부터 1907년(순종 1)까지의 조선말·대한제국의 역사를 기록해 놓은 책이다. 특히 갑오년(1894) 부분은 고부 봉기에서 동학농민혁명의 전 과정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월일 별로 상세히 기록하였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758 서석마을 매천 황현, 석전 황원 선생 생가를 찾아가는 길이다.
매천 황현 선생 생가
梅泉先生生家 / The Birth House of Maecheon Hwang, Hyeon.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758번지
이 가옥은 조선말기 대학자요. 시인이자 우국지사였던 매천 황현 선생(1855~1910)께서 태어나 성장한 생가로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광양시에서 건립한 것이며,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한식 목조 초가지붕이다. 황현 선생의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호는 매천(梅泉)으로 황희정승(黃喜政丞)의 15대 손이며, 시골 선비였던 아버지 시묵(時黙)과 풍전노씨(豊川盧氏)사이에서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렸을 때 부터 시문에 능하여 29세(고종25년 1883년)에 특설보거과에 급제하였고 34세(1888년)에는 생원시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과 조정의 부패를 안타깝게 여기고 급제와 동시에 낙향하여 구례에 살면서 호양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양성과 학문에 몰두하였다.
선생이 51세가 되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식민지 체제에 들게되자 이에 비분강개하여 여러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문변삼수 시를 지어 매국(賣國)행위를 통탄했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일제에 항거하는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니 때는 1910년 음력 8월 7일 그의 나이 56세였다.
황현의 저서로는 고종1년(1864년)부터 한일병합(191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매천야록. 매천집, 매천시집, 동비기략 등이 있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상 단상(單章)이 추서(追敍)되었고, 1999년에는 당해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 11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었다.
梅泉先生生家 / The Birth House of Maecheon Hwang, Hyeon.
소재지 :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석사리 758번지
이 가옥은 조선말기 대학자요. 시인이자 우국지사였던 매천 황현 선생(1855~1910)께서 태어나 성장한 생가로 선생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광양시에서 건립한 것이며,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한식 목조 초가지붕이다. 황현 선생의 본관은 장수(長水)이며 호는 매천(梅泉)으로 황희정승(黃喜政丞)의 15대 손이며, 시골 선비였던 아버지 시묵(時黙)과 풍전노씨(豊川盧氏)사이에서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어렸을 때 부터 시문에 능하여 29세(고종25년 1883년)에 특설보거과에 급제하였고 34세(1888년)에는 생원시에 장원급제 하였으나 시국의 혼란함과 조정의 부패를 안타깝게 여기고 급제와 동시에 낙향하여 구례에 살면서 호양학교를 설립하는 등 후진양성과 학문에 몰두하였다.
선생이 51세가 되던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일본의 식민지 체제에 들게되자 이에 비분강개하여 여러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문변삼수 시를 지어 매국(賣國)행위를 통탄했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일제에 항거하는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음독 자결하니 때는 1910년 음력 8월 7일 그의 나이 56세였다.
황현의 저서로는 고종1년(1864년)부터 한일병합(1910년)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매천야록. 매천집, 매천시집, 동비기략 등이 있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상 단상(單章)이 추서(追敍)되었고, 1999년에는 당해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 11월에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지정되었다.
梅泉 黃玹 先生 生家(매천 황현 선생 생가)
梅泉軒(매천헌)
絶命詩(절명시) / 梅泉 黃玹 (매천 황현)
亂離滾到白頭年 [난리곤도백두년]
난리를 겪다 보니 백발의 나이가 되었구나
幾合捐生却未然 [기합연생각미연]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今日眞成無可奈 [금일진성무가내]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輝輝風燭照蒼天 [휘휘풍촉조창천]
가물거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을 비추네
妖氛掩翳帝星移 [요분엄예제성이]
요망한 기운에 가려서 임금 별자리 옮겨지니
九闕沈沈晝漏遲 [구궐침침주루지]
구중궁궐은 침침하여 햇살도 더디구나
詔勅從今無復有 [조칙종금무부유]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琳琅一紙淚千絲 [임랑일지루천사]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올을 모두 적시네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曾無支厦半椽功 [증무지하반연공]
일찍이 나라를 지탱하는데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 [지시성인불시충]
다만 인(仁)을 이룰 뿐이요, 충(忠)은 아닌 것이로다
止竟僅能追尹穀 [지경근능추윤곡]
끝맺음이 겨우 윤곡(尹穀)처럼 자결할 뿐이요
當時愧不躡陳東 [당시괴불섭진동]
당시의 진동(陳東)처럼 의병을 일으키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柱聯(주연)
山居三十年 [산거삼십년]
산 속에 삼십 년 묻혀 살면서
種德不種木 [종덕부종목]
덕을 키웠을 뿐이지 나무를 키우진 않았다네
枾栗自能生 [시율자능생]
감나무며 밤나무들은 저절로 자라나서
低低秋晩熟 [저저추만숙]
주렁주렁 가을 열매 가득 열린다네
亂離滾到白頭年 [난리곤도백두년]
난리를 겪다 보니 백발의 나이가 되었구나
幾合捐生却未然 [기합연생각미연]
몇 번이고 목숨을 끊으려다 이루지 못했도다
今日眞成無可奈 [금일진성무가내]
오늘날 참으로 어찌할 수 없고 보니
輝輝風燭照蒼天 [휘휘풍촉조창천]
가물거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을 비추네
妖氛掩翳帝星移 [요분엄예제성이]
요망한 기운에 가려서 임금 별자리 옮겨지니
九闕沈沈晝漏遲 [구궐침침주루지]
구중궁궐은 침침하여 햇살도 더디구나
詔勅從今無復有 [조칙종금무부유]
이제부터 조칙을 받을 길이 없으니
琳琅一紙淚千絲 [임랑일지루천사]
구슬 같은 눈물이 종이 올을 모두 적시네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새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무궁화 온 세상이 이젠 망해 버렸구나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날 생각하니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구나
曾無支厦半椽功 [증무지하반연공]
일찍이 나라를 지탱하는데 조그마한 공도 없었으니
只是成仁不是忠 [지시성인불시충]
다만 인(仁)을 이룰 뿐이요, 충(忠)은 아닌 것이로다
止竟僅能追尹穀 [지경근능추윤곡]
끝맺음이 겨우 윤곡(尹穀)처럼 자결할 뿐이요
當時愧不躡陳東 [당시괴불섭진동]
당시의 진동(陳東)처럼 의병을 일으키지 못함이 부끄럽구나
柱聯(주연)
山居三十年 [산거삼십년]
산 속에 삼십 년 묻혀 살면서
種德不種木 [종덕부종목]
덕을 키웠을 뿐이지 나무를 키우진 않았다네
枾栗自能生 [시율자능생]
감나무며 밤나무들은 저절로 자라나서
低低秋晩熟 [저저추만숙]
주렁주렁 가을 열매 가득 열린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