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기념탑(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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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학정리 9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곡성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일본의 침략으로 국권을 빼앗기고 가혹한 식민통치에 짓눌리던 우리 민족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으로 민족의 힘을 온 세상에 떨쳤다.
억눌러도 짓밟히지 않는 3.1독립만세운동을 계기로 우리의 독립의지와 민족정신은 삼천리를 넘어 세계만방에 들불처럼 퍼져나갔고 마침내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통치를 무너뜨린 독립운동사의 일대 전환을 이루어냈다.
3.1독립만세운동의 불길은 우리 고장 곡성에서도 불타올랐다.
평소 자주독립정신이 유달리 강인했던 우리 고을 군민과 학생들은 사전에 독립선언서와 격문 및 태극기를 만들어 거사를 모의하고 곡성시장을 시발점으로 시가지를 돌며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에 3.1독립만세운동으로 드높았던 우리 곡성의 자주민족정신과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온 군민들의 뜻을 모아 3.1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을 여기에 세우다.
2011년 3월 1일
전남 곡성군 곡성읍 읍내리 500-1에 있는 3.1운동기념비를 찾아왔지만 찾을 수 없었다.
건너편 단군전 3.1운동기념탑 뒤로 옮겨진 상태였다.
단군전의 주소는 전남 곡성군 곡성읍 학정리 95이다.
곡성 3.1운동기념탑
◆ 관리번호 : 55-1-55
◆ 관리자 : (사)국조단군곡성숭모회(대표이사:김학근)
◆ 위치 : 곡성군 곡성읍 학정리 95번지
◆ 규모: 탑 높이 11.4m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갈 무렵 우리 곡성에서는 곡성공립보통학교 부훈도(副訓導) 백당(白堂) 신태윤(中秦允) 선생의 주도로 1919년 3월 24일 학생 정래성(丁來聖), 정용태(丁泰), 김중호(金仲浩), 양성만(梁成滿), 박수창(朴秀昌), 김경석(金敬錫), 김기섭(金起燮), 김태수(金泰洙), 오종태(吳鐘泰), 정연시(鄭練時), 임락기(林洛驥), 김경택(金京)과 군민(郡民)이 함께하여 3월 24일부터 29일까지 왜경의 눈을 피해 치밀하게 거사준비를 하였다.
3월 29일(음력 월 28일)을 기하여 곡성 5일시장에서 신태윤 선생을 선두로 독립만세를 힘차게 불러 우리 군민의 독립 의지와 기상을 펼쳤다. 이어서 옥과 5일시장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국성군내 여러곳의 높은 산 정상에서 불을 피우며 조국 독립을 외치기도 하였다. 또한 섬진강가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나라를 억울하게 강탈당함에 의분을 참지 못해 산발적이나마 지속적으로 만세를 부르짖었다.
이로 인하여 백당 신태윤 선생은 경성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대구형무소에 이감되어 2년 옥고를 치루었으며, 정래성은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이에 곡성군민들은 선열들의 3.1운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8년 이곳에 곡성 3.1운동기념비를 군민들의 뜻을 모아 세웠으나, 기단(基壇)이 일부 붕괴되어 (사)국조단군곡성숭모회가 주축이 되어 곡성군민의 뜻을 모아 국비 4천5백만원과 군비 1억 5백만원 총사업비 1억5천만원으로 "곡성 3.1운동기념탑"을 2011년 3월 1일 건립하여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호국안보의 정신을 배우는 학습의 도장으로 가꾸었다.
곡성 3.1운동 기념탑

◆ 관리번호 : 55-1-55
◆ 관리자 : (사)국조단군곡성숭모회(대표이사:김학근)
◆ 위치 : 곡성군 곡성읍 학정리 95번지
◆ 규모: 탑 높이 11.4m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갈 무렵 우리 곡성에서는 곡성공립보통학교 부훈도(副訓導) 백당(白堂) 신태윤(中秦允) 선생의 주도로 1919년 3월 24일 학생 정래성(丁來聖), 정용태(丁泰), 김중호(金仲浩), 양성만(梁成滿), 박수창(朴秀昌), 김경석(金敬錫), 김기섭(金起燮), 김태수(金泰洙), 오종태(吳鐘泰), 정연시(鄭練時), 임락기(林洛驥), 김경택(金京)과 군민(郡民)이 함께하여 3월 24일부터 29일까지 왜경의 눈을 피해 치밀하게 거사준비를 하였다.
3월 29일(음력 월 28일)을 기하여 곡성 5일시장에서 신태윤 선생을 선두로 독립만세를 힘차게 불러 우리 군민의 독립 의지와 기상을 펼쳤다. 이어서 옥과 5일시장에서도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국성군내 여러곳의 높은 산 정상에서 불을 피우며 조국 독립을 외치기도 하였다. 또한 섬진강가에서 독립만세를 불렀으며 나라를 억울하게 강탈당함에 의분을 참지 못해 산발적이나마 지속적으로 만세를 부르짖었다.
이로 인하여 백당 신태윤 선생은 경성고등법원에서 징역 2년 확정, 대구형무소에 이감되어 2년 옥고를 치루었으며, 정래성은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이에 곡성군민들은 선열들의 3.1운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1978년 이곳에 곡성 3.1운동기념비를 군민들의 뜻을 모아 세웠으나, 기단(基壇)이 일부 붕괴되어 (사)국조단군곡성숭모회가 주축이 되어 곡성군민의 뜻을 모아 국비 4천5백만원과 군비 1억 5백만원 총사업비 1억5천만원으로 "곡성 3.1운동기념탑"을 2011년 3월 1일 건립하여 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하고 호국안보의 정신을 배우는 학습의 도장으로 가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