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541-17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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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도림사국민관광단지 주차장 우측에 있는 항일독립지사 윤정구 의사 묘를 찾았다.
GPS 상의 주소는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541-17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2017년 마지막 날 저무는 해가 역광으로 비쳐서 정면에서 촬영이 쉽지가 않다.
GPS 상의 주소는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541-17이다.
GPS 상의 주소는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541-17이다.
愛國志士 南原尹公 正九 之墓(애국지사 남원윤공 정구 지묘)
愛國志士 南原尹公 正九 之墓(애국지사 남원윤공 정구 지묘)
이곳 동락산 남쪽 기슭에 자리한 四尺崇封(사척숭봉)의 쌍분은 애국지사 윤공과 배위 성주배씨의 만년유택이다. 공의 휘는 정구요 성은 윤씨이며 관은 남원으로서 이씨조선의 현상 문○공 휘 효손의 14세손인 휘 태성과 김해김씨를 考妣(고비)로 하여 단기 4215년 辛巳(신사) 3월 22일에 고달면 목동에서 태어났다. 공은 천자가 宏傑(굉걸)하며 6척장신에 압인지자를 지녔으며 지용이 출중하였다. 왜제의 강압으로 을사오조약이 체결되어 고종황제가 퇴위하고 군대마져 해산되자 이에 격분한 공은 생명을 조국광복에 바치고자 자진 백의종군의 의병이 되었다. 공은 결사보국키로 결의한 동지 공성찬 임세묵 임기숙 임기서 제인 등과 더불어 남원 순창 함양 거창 곡성 구례 등지에서 많은 의병의 선봉장으로 용약 지방토호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무기를 갖추어 왜군경을 격멸하여 최후까지 유적전을 벌이다가 단기 4242년 10월경 왜헌병에게 체포되었다. 먼저 체포된 공성찬 임세묵등 동지는 교수형을 당하였고 공은 피체당시 왜의 국경일에 해당되어 교수형을 면하고 15년의 중형을 언도받아 7년의 옥고를 치루었다. 출옥후로도 조국광복을 애절하게 기다리며 왜경의 감시 아래 고난의 세월을 지냈다. 마침내는 8.15의 광복을 맞이했으나 공은 국권회복을 위한 구국항쟁의 의병 열사로 대접받지 못한 채 단기 4286년 9월 15일 73세로 한 많은 생애를 마쳤으나 단기 4315년에
대한민국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뒤늦게나마 정부의 지원으로 그 공적을 청사에 기리고자 이 비를 세운다. 공의 자는 啓五(계오)이며 손은 在一(재일) 在二(재이) 在三(재삼)이다.
단군 기원 4318년 만추
광산 이만기 근찬, 옥천 조광만 근서, 국가보훈처 근립
단군 기원 4318년 만추
광산 이만기 근찬, 옥천 조광만 근서, 국가보훈처 근립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도림사국민관광단지 주차장 우측에 있는 항일독립지사 윤정구 의사 묘를 찾았다.
한국독립운동 사적지
항일독립지사 윤정구 의사의 묘역
윤정구(尹正九) 1882.3.22 ~ 1953.10.24
이곳은 암흑과 치욕의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자존과 국권회복을 위하여 일신의 안위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결사 항쟁하셨고 고 윤정구 의사의 영혼이 쉬고 계시는 곳입니다.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고 윤정구 의사는 1905년 일제가 강압적인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자 이에 격분, 결사 보국키로 결의한 공성찬·임세묵·임기숙·임기서 동지를 비롯한 열혈 애국지사들과 함께 지방 토호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섬진강 유역을 무대로 수십명의 일군·경을 참살하는 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전개하다 1909년 일 헌벙에 체포되어 15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르신 항일독립지사입니다. 정부는 풍찬노숙의 극한 상황에서도 기개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윤정구 의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82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다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항일독립지사 윤정구 의사의 묘역
윤정구(尹正九) 1882.3.22 ~ 1953.10.24
이곳은 암흑과 치욕의 일제치하에서 민족의 자존과 국권회복을 위하여 일신의 안위를 초개와 같이 버리고, 결사 항쟁하셨고 고 윤정구 의사의 영혼이 쉬고 계시는 곳입니다.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던 고 윤정구 의사는 1905년 일제가 강압적인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자 이에 격분, 결사 보국키로 결의한 공성찬·임세묵·임기숙·임기서 동지를 비롯한 열혈 애국지사들과 함께 지방 토호로부터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섬진강 유역을 무대로 수십명의 일군·경을 참살하는 등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신출귀몰한 유격전을 전개하다 1909년 일 헌벙에 체포되어 15년의 중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르신 항일독립지사입니다. 정부는 풍찬노숙의 극한 상황에서도 기개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윤정구 의사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982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1990년에는 다시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