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 과역리 459-3
- 탐방로그
- 고흥 탐방 한 달 후 다시 찾은 고흥군 과역면 과역초등학교 앞. 김재용 의사의 사적비를 찾아왔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군은 당시 광주사범학교 3학년 재학생으로 맨주먹을 휘두러 총칼과 맞서다가 마침내 옥에 갇혀 두 해 아홉 달 만에 병 보석으로 놓였으나 모진 악형으로 인하여 한 많은 이 세상을 떠났으니 때는 곧 1933년 2월 16일이요 향년이 스물 일곱이었다. 나라 없는 백성의 원통하고 분한 마음 땅을 치고 통곡한들 무엇하리요.
〈그러나 우리 겨레는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군은 가면서 이렇게 외쳤으리.
영령이여 이제 광복된 조국땅 향토 과역에서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노니 봄바
〈그러나 우리 겨레는 반드시 일어나고야 말 것이다〉 군은 가면서 이렇게 외쳤으리.
영령이여 이제 광복된 조국땅 향토 과역에서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모두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우노니 봄바
람과 가을달에 고이 잠드소서
서력 1964년 9월 일 김용환은 짓고 노병호는 쓰다.
서력 1964년 9월 일 김용환은 짓고 노병호는 쓰다.
고흥군 과역면 과역초등학교 앞. 김재용 의사의 사적비를 찾아왔다.
광주학생운동에 희생된 김재용 군의 사적비
경술년에 나라가 왜적에게 망한 뒤 비바람 스무해를 지나 망국한은 오히려 하늘에 사무쳐 기어이 광주에서 학생들이 항일의 분화구를 터뜨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