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인천광역시 중구 송학동1가 11-1
- 탐방로그
- 한성임시정부 수립 13도 대표자회의 집결지 안내판을 찾기 위해 인천 중구 송학동1가 11-1 자유공원에 왔다. 입구 자유공원 안내석이 있었던 바로 좌측에서 위치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자유공원 -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 자유공원
응봉산(應峰山) 남쪽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사람들이 설정한 각국조계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점차 ‘여러 나라’라는 뜻의 만국(萬國)공원으로 통칭되었다. 1888년 러시아 측량 기사 사바틴(Sabatin)이 설계하여 만든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서양식 공원으로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보다 9년이 앞선다. 이 공원에는 한국 최초의 양관(洋館)으로 알려진 독일 세창양행(E. Meyer & Co.)의 숙사(宿舍)와 개항 초기 인천해관장(仁川海關長)을 역임했던 영국인 존스톤(Johnston)의 별장, 당시 각국인들의 사교장이 되었던 제물포구락부(Club) 등 근대 건축물이 유명하였다.
1914년 각국조계가 폐지되면서 일제는 지금의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에 신사(神社)를 세우고 그곳을 동공원(東公園), 만국공원은 서공원(西公園)으로 불렀다. 광복 후 다시 만국공원으로 불렸다가,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7년 개천절에 이곳에 맥아더 동상 제막식을 가지면서 자유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응봉산(應峰山) 남쪽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미국, 영국, 독일 등 각국 사람들이 설정한 각국조계 안에 있었기 때문에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점차 ‘여러 나라’라는 뜻의 만국(萬國)공원으로 통칭되었다. 1888년 러시아 측량 기사 사바틴(Sabatin)이 설계하여 만든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서양식 공원으로 서울의 탑골(파고다)공원보다 9년이 앞선다. 이 공원에는 한국 최초의 양관(洋館)으로 알려진 독일 세창양행(E. Meyer & Co.)의 숙사(宿舍)와 개항 초기 인천해관장(仁川海關長)을 역임했던 영국인 존스톤(Johnston)의 별장, 당시 각국인들의 사교장이 되었던 제물포구락부(Club) 등 근대 건축물이 유명하였다.
1914년 각국조계가 폐지되면서 일제는 지금의 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자리에 신사(神社)를 세우고 그곳을 동공원(東公園), 만국공원은 서공원(西公園)으로 불렀다. 광복 후 다시 만국공원으로 불렸다가,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7년 개천절에 이곳에 맥아더 동상 제막식을 가지면서 자유공원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한성임시정부 수립 13도 대표자 회의 집결지
한성임시정부 수립 13도 대표자 회의 집결지
1919년 3·1운동 후 변호사 홍진(洪震) 등이 주도하여 4월 2일 전국의 13도 대표자들이 만국공원(자유공원)에 모여 국민대회 개최 및 임시정부 수립 등을 결의하였으며, 이는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초석이 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하였으며 한성·상해·노령의 세 임시정부가 9월 통합되었다.
1919년 3·1운동 후 변호사 홍진(洪震) 등이 주도하여 4월 2일 전국의 13도 대표자들이 만국공원(자유공원)에 모여 국민대회 개최 및 임시정부 수립 등을 결의하였으며, 이는 한성임시정부 수립의 초석이 되었다. 이후 1919년 4월 11일 상해임시정부가 탄생하였으며 한성·상해·노령의 세 임시정부가 9월 통합되었다.
인천 중구 송학동1가 11-1 자유공원에 한성임시정부 수립 13도 대표자회의 집결지 안내판을 찾아왔다.
자유공원 안내
인천 제일의 명승지인 자유공원은 1883년 인천이 개항된지 5년후인 1888년 11월 9일에 한국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설정되었다. 당초에는 만국공원 또 한때는 서공원 해방후에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가 1957년 10월 3일 자유공원으로 변경공포했다.
지금 이 공원은 맥아더동상을 정점으로 시민 헌장비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인상과 신석기 시대의 지석(支石) 시립박물관 그리고 연오정(然吾亭) 석정루(石汀樓) 등이 한국의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고 정상에는 주위를 전망하는 눈아래 동양제일의 도크와 외항을 둘러싼 월미, 작약, 영종, 팔미도의 섬들과 멀리 문학산의 연봉이 그림같이 가물거린다.
인천 제일의 명승지인 자유공원은 1883년 인천이 개항된지 5년후인 1888년 11월 9일에 한국최초의 서구식 공원으로 설정되었다. 당초에는 만국공원 또 한때는 서공원 해방후에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가 1957년 10월 3일 자유공원으로 변경공포했다.
지금 이 공원은 맥아더동상을 정점으로 시민 헌장비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인상과 신석기 시대의 지석(支石) 시립박물관 그리고 연오정(然吾亭) 석정루(石汀樓) 등이 한국의 건축미를 자랑하고 있고 정상에는 주위를 전망하는 눈아래 동양제일의 도크와 외항을 둘러싼 월미, 작약, 영종, 팔미도의 섬들과 멀리 문학산의 연봉이 그림같이 가물거린다.
위치를 몰라서 한동안 헤매다가 결국 찾은 곳은 입구 자유공원 안내석이 있었던 바로 좌측에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