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적 기미3.1독립만세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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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진리 136-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감사의 글
○ 이 장소는 1919년 일제치하에 있던 덕적면 주민들이 자주 독립의 염원을 담아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으로
○ 지난 1979년 3.1독립만세 60주년을 맞아 그 뜻을 기리고자 면민 일동이 그자리에 기념비를 세워관리하였으나
○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진마을 주민들의 건의와 웅진군의 적극적인 사업추진으로 덕적면민의 자랑스러운 항일투쟁역사와 애국정신 문화를 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한 기념공원을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 이 공원이 완성 될 때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장정민 웅진군수님과 웅진군의회 의원님, 그리고 관계 공무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21년 1월 덕적면민 일동
저 멀리 차도가 왼쪽으로 굽은 곳이 인천 옹진군 덕적면 진리 136-1 덕적초등학교 옆 덕적 기미3.1독립만세 기념공원이다.
예전에는 기미3.1독립만세기념비가 솔숲 안 누각 안에 있었는데, 덕적기미3.1독립만세기념공원으로 단장되었다.
진마을(진1리)
진리(鎭里)
서기 1652년 효종3년 덕적도에 최초로 둔영(屯營)을 설치하고 만호(萬戶)를 두었다가 1808년 숙종 34년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로 승격되었다. 그 후 1756년 영조32년 초대 첨사가 부임한 이래 진영(鎭營)이 설치된 마을을 진리(鎭里) 또는 진촌(鎭村)이라 불렀고 "진마을"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덕적 기미 3.1 독립만세 기념공원
덕적 기미 3.1 독립만세 기념공원
덕적 기미 3.1 독립만세 기념공원
덕적 기미 3.1 독립만세 기념공원
이곳은 1919년 4월 9일 덕진면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공원이다.
1919년 3월 1일 임용우 선생은 고향인 김포 월곶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제에 수배되어 덕적도로 들어와 제자인 합일학교 선생 이재관, 차경창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4월 9일 덕적도 면 춘계 대운동회에서 왜경 백근이 자리를 비우자 이를 기회라 여긴 임용우 선생이 연설을 하였고 다음에 이재관 선생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마을마다 산에서 봉화를 올려 인근 문갑도와 을도까지 독립운동의 여파를 미치게 하였으며, 임용우 선생은 일제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일제의 모진 고문에 못 이겨 그해 5월 10일 35세의 나이로 순국했다(사후 판결로 임용우 선생은 징역 1년 6개월, 이재관, 차경창 선생은 징역 8개월의 옥고를 치룸) 덕적면민들은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3.1운동 60주년인 1979년 4월 9일에 덕적면민과 덕우회 일동이 만세를 불렀던 그 자리(현위치)에 기념비를 세웠다.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주민들은 덕적면의 자랑스러운 항일 투쟁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공원 조성을 건의하였으며 옹진군에서는 1979년에 세워진 기미3.1독립만세 기념비를 확장하고, 6.25 전쟁에서 산화한 애국 청년들의 뜻을 기리던 충혼탑도 도우언덕에 이어 밧지름 언덕에 이설되어 관리하던 것을 선현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현재의 위치에 재 이설하여 옹진군민의 역사적 자긍심과 애향심을 높이기 위한 "덕적 기미3.1독립만세 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
己未三一獨立萬歲記念碑(기미3.1독립만세기념비)
己未三一獨立萬歲記念碑(기미3.1독립만세기념비)
덕적은 선조들이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는 동안 후손들의 교육에 남다른 정성을 쏟아온 곳이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자 구국의 일념으로 10화운동이 일어나니 진리에 명덕 북리에 평신 서포리에 함일학교를 각각 세워 새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910년 경술국치로 강토가 일본의 총칼 앞에 짓밟히자 9년 후 기미년 3월 1일은 겨례가 자주독립을 선언하는 독립만세의 함성이 강산을 뒤흔들때 명덕학교 임용우 선생은 그해 3월 고향인 김포 월곶에 가셨다가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일본 경찰의 수배를 받는 몸으로 덕적에 돌아와서 제자인 함일학교 선생 이재선(당시 23세) 차경창(당시 19세)와 함께 만세운동을 거사하기 위하여 4월 9일 진리 송정에서 명덕 명신 함일학교의 연합운동회를 마친후 모인 200여 문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고 이재관 선생의 선창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다음 각 마을마다 산에서 봉화를 올리며 또 만세를 불렀다. 그 여파는 문갑과 울도에까지 미쳤으며 겨례의 정당한 주장을 장열히 외쳤다. 4월 중순 덕적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신 김용우 이재관 차경창 선생이 체포되어 서울로 이송된 후 임용우 선생의 신병인도 연락이 있어 그 제자들이 서대문 형무소에서 5월 10일 모셔오니 체포된 지 불과 20여일 만에 잔혹한 고문으로 35세에 망국의 한을 품은채 순국하셨으며 재판 결과 임용우 선생은 사후 판결로 1년 6개월 이재관 차경창 두 선생은 각 8개월 형의 옥고를 치르시게 되었다.
이제 기미3.1독립만세 60주년을 맞아 면민 일동은 만세를 불렀던 그 자리에 비를 세워 선현들의 애국행적을 되살리고 후손들에게 길이 이 높은 뜻을 전하기 위하여 그 사실을 여기에 새기노라.
1979년 4월 9일 덕적면민 일동 덕우회 일동
태극의 4괘를 조형물로 설치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