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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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30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母校(모교) 先輩(선배)님들의 고귀한 愛國忠情(애국충정)을 길이 빛내고 後學(후학)들에게 나라 사랑의 敎訓(교훈)을 삼고자 이 碑(비)를 세운다.
1995. 3. 6.
仁川昌榮國民學校(인천창영국민학교) 總同窓會(총동창회)
창영
기념
모교 창영 본관 인천지방 유형문화재 제16호 지정
1992.12.16. 인천직할시장
창영 총동창회 증
인천 동구 창영동 30 인천창영초등학교
창영초등학교(昌榮初等學校)구 교사(校舍)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 소재지 :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37-1
1922년에 붉은 벽돌로 길게 지은 이 건물은 원래 인천공립보통학교로 지붕에는 아랫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지붕창이라 부르는 도머(Dormer) 창을 두었다. 교실의 벽은 나무를 얇게 다듬은 심을 넣고 흙을 발랐으며 현관 복도의 난간과 기둥의 보존상태는 현재까지도 양호한 편이다. 현관과 1층 창문은 반아치로, 2층은 수평아치로 마무리한 것이 초기 근대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인천 공립 보통학교 – 위치 : 인천직할시 동구 창영동 30
이 곳은 1907년 4월 보통학교령에 의하여 개교된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현, 창영국민학교)로서 1907년 12일 낙성식이 있었고 1910년 3월 26일 제1회 졸업식을 거행하였다.
이 학교에서 배출된 주요 인물로는 한국 최초의 고미술사학자 고유섭, 전 서울대 총장 및 부흥부장관을 역임한 신태환 박사, 법무부장관 및 대법원장을 지낸 조진만씨, 파월 훈련 중 산화한 강재구 소령이 있다.
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 –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4-1-1 / 소재지 : 인천광역시 동구 창영동 30 / 관리자 : 인천창영초등학교
1919년 3월 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이 거국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과정에서 인천에서는 그 당시 유일한 공립보통학교(현 인천창영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동맹휴학을 일으키고 일부 주동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고, 또한 학교와 인천경찰서간의 연락을 차단할 목적으로 야간에 교무실과 경찰서간의 전화선을 절단한 관계로 주동학생들이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광복 후에도 무관심 속에서 그늘진 생활을 하는 등 시간 속으로 묻혀져가는 역사를 애석하게 여기어 인천창영초등학교 총동창회에서 애국심 발휘의 전통을 살리고자 당시의 고증자료 수집과 재판기록문을 입수, 선배님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길이 빛내고 자라나는 후학들에게 나라사랑하는 교훈을 심어주는 뜻에서 3.1 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기념비를 건립하게 되었고, 2002년 11월 30일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받았다.
나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에
바탕한 의사발동이지 범죄가 아니다
1919년 7월 25일
조선총독부고등법원 상고문에서
인천공립보통학교
생도 김명진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옥고 징역 복역자 동문
제 10회 졸업 - 이만용 : 징역 3개월형을 대신하여 조선 태형령을 적용 태 90형
제 11회 졸업(추가) - 김명진 : 제1심에서 징역 2년, 복심에서 징역 1년 6개월. 고등법원 상고에서 기각되여 1년 6개월 징역형 복역.
제 11회 졸업(추가) - 박철준 : 징역 3개월형을 대신하여 조선 태형령을 적용 태 90형.
제 11회 졸업(추가) - 손창신 : 일경에 체포되여 4개월 옥고를 치르고 무죄판결.
상기는 1919년 당시 조선총독부 재판소 판결기록문에 의거함.
三·一獨立萬歲運動 仁川地域 發祥地(3·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 발상지)
三·一獨立萬歲運動(3·1독립만세운동)
仁川地域 發祥地(인천지역 발상지)
一九一九年 三月 六日(1919년 3월 6일)
仁川公立普通學校(인천공립보통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