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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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산241-8
탐방로그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05-14 도로변 애국지사 유희철 묘소 안내판을 찾아왔다. 애국지사 유희철 선생의 묘소의 GPS 상 주소는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산 241-18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증손 우종
애국지사 유희철 선생의 묘소의 GPS 상 주소는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산 241-18이다.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05-14 도로변 애국지사 유희철 묘소 안내판을 찾아왔다.
유희철 선생 묘소
독립운동가 유희철은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거주하였으며 부내면의 3.1독립운동 계획에 참여하였습니다. 강화군 부내면, 즉 강호읍에서는 1919년 3월 5~6일에 많은 군중이 경찰서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3월 18일 유봉진 목사 등이 주동하는 독립만세운동 행동대원으로 참가하여 강화읍 장터에서 태극기와 독립선언문 등 1만여 매를 군중에게 배포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선두에서 시위행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언도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언덕 위 185m
獨立有功者 江陵劉公 熙哲 之墓(독립유공자 강릉유공 희철 지묘)
獨立有功者 江陵劉公 熙哲 之墓(독립유공자 강릉유공 희철 지묘)
선생은 강능인으로 유영화씨의 3남으로 1893년에 태어나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서 성장하야 어업을 유일한 생업으로 슬하의 자손과 더부러 가산을 이어왔다. 민족자결주의가 제창 되면서 독립선언문이 발포되어 국권을 회복하여 독립하여야 한다는 시위운동이 파급되어 이곧 강화에는 유봉진 선생을 비롯하야 길상면 직산교회 목사 이진형 연락
책 황요문 고익진 선생의 열변을 듣고 격분하여 이에 동조하였다. 유선생을 선봉으로 결사대 견장을 두르고 극비리에 작성한 태극기를 들고 일시에 강화읍 상하시장을 휘날려 평화시위로 독립만세를 높히 부르짖었다. 그 후 항일만세운동은 계속되어 1919년 3월 17일 장날을 이용하야 구척장신의 지휘자인 선생은 강화읍시장 돌다리를 중심으로 독립만세를 높히 불렀는대 이를 체포하려는 일본경찰을 구타하고 다음날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동 3월 18일 시위대는 구속자를 무조건 석방하라고 협박하였더니 일경은 보안법 및 소모죄로 다스려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고 1942년 8월 17일 51세를 일기로 타계하시다. 선생은 지역사회에서 민족정기를 심어주는 위대한 교훈을 남기어 1990년 8월 15일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어 국가유공자 예우에 따라 묘비 건립지원을 받아 이에 그 유덕을 기리기 위하여 이 비를 세우노라.
서기 1992년 월 일 자 학문 장렬 손 재일 재호 재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