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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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산5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처사 계림 김공 지묘
휘 정기 자 현가요, 자호 농암하다. 선세는 신라 경순왕 제 4자 휘 은설 대안군후요. 조선조 개국공신 계림군 익제 용 공 3남 휘 계성의 차자 휘 종효 관 부사가 원구 연산조하여 결신낙남하고 생 ○ 자간 호 우은 관 현감이 시거 명촌한 어 공 15대조요. 후전 5세에 휘 용은 성균진사였고 생 휘 ○립 호 독성당은 ○사한강 정선생하야 학덕저세하고 우전 2세에 휘 차안은 무과요. 배 광주노씨는 이열부 정려하였고 생 휘 지 휘 명헌은 이효학행하고 고조 휘 규인데 정묘 갑인에 방등 무과요. 생 2남하여 장 휘 진일 차 휘 주일이 증조요. 조 휘 영건 고 휘 교목이고 비 진주강씨 세영 녀는 조
세무육하고 이어 차성이씨 기학 녀인데 유 부덕하고 생 1남 6녀하니 즉 공은 1892년 고종 임진 2월 19일 생이다. 자유급장함에 용의단아하고 품성이 결성하며 재기출륜하여 과공면려하니 조사일진이라. 문예촉망이였으나 국권을 침탈한 왜관의 폭정이 패악함에 우국충분이 강직하여 필관투척하고 향내의 여러 지사와 함께 3.1 구국항쟁에 분연 활약하다 피체되어 폭악한 형고를 당하였으니 시년 26이었다. 이로 연유하여 학업이 중단되고 전도 막히니 통분하였으나 위국정충은 후인이 추행경모하리라. 여 동기는 공경생 서훈종 김강효 김복조 안효극 김영조에게 가하였고 공은 여년을 응세지도를 밝히며 예속준행하고 만탐독서하며 각리동몽을 훈회하고 수분자정하며 청빈낙도한 아사로서 1966년 병오 2월 3일 타계하여 장마차지하니 향수 75이였다. 배는 청송심씨 종권 녀인데 1897년 정유생이요. 생 4남 1녀하고 1938년 무인 6월 14일 졸하여 묘는 서나무 등하 임좌다. 남 도경 보경 재경 노경이고 녀는 경주 최수환이요. 도경 남 지용 지옥 학조 학일이고 녀는 김해 김완식 여양 진치호 안동 권재철이고 보경 남 성진 학수 만천이요. 녀는 밀양 박근조 달성 서종수 밀양 박상원이고 재경 남 학만 성완 녀는 순흥 안일주요. 노경 남 해룡 수룡 녀 남원 양재복이요. 최남 도득 준득이고 여유불진록이다. 약서여우하고 명을 몇 자 적는다.
세무육하고 이어 차성이씨 기학 녀인데 유 부덕하고 생 1남 6녀하니 즉 공은 1892년 고종 임진 2월 19일 생이다. 자유급장함에 용의단아하고 품성이 결성하며 재기출륜하여 과공면려하니 조사일진이라. 문예촉망이였으나 국권을 침탈한 왜관의 폭정이 패악함에 우국충분이 강직하여 필관투척하고 향내의 여러 지사와 함께 3.1 구국항쟁에 분연 활약하다 피체되어 폭악한 형고를 당하였으니 시년 26이었다. 이로 연유하여 학업이 중단되고 전도 막히니 통분하였으나 위국정충은 후인이 추행경모하리라. 여 동기는 공경생 서훈종 김강효 김복조 안효극 김영조에게 가하였고 공은 여년을 응세지도를 밝히며 예속준행하고 만탐독서하며 각리동몽을 훈회하고 수분자정하며 청빈낙도한 아사로서 1966년 병오 2월 3일 타계하여 장마차지하니 향수 75이였다. 배는 청송심씨 종권 녀인데 1897년 정유생이요. 생 4남 1녀하고 1938년 무인 6월 14일 졸하여 묘는 서나무 등하 임좌다. 남 도경 보경 재경 노경이고 녀는 경주 최수환이요. 도경 남 지용 지옥 학조 학일이고 녀는 김해 김완식 여양 진치호 안동 권재철이고 보경 남 성진 학수 만천이요. 녀는 밀양 박근조 달성 서종수 밀양 박상원이고 재경 남 학만 성완 녀는 순흥 안일주요. 노경 남 해룡 수룡 녀 남원 양재복이요. 최남 도득 준득이고 여유불진록이다. 약서여우하고 명을 몇 자 적는다.
수결학선하고 행독윤상하며 효우승가하니 충신저향이라. 자손이 진진하니 적덕지○로다. 백엽이 무어현당하니 인음이원하야 운잉경창 필분천상하리라.
국기 4322년 기사 1월 하한 4종손 지환 근찬 병서, 효자 도경 근수
독립유공 애국지사 김경수 공의 묘
독립유공 애국지사 김경수 공의 묘

김경수(1892~1968) : 대통령 표창

경남 울산군(蔚山郡) 언양(彦陽) 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 하순, 울산군 상남면(上南面) 길천리(吉川里)에 사는 이무종(李武鍾) 등 6명은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한 후 유지들을 비밀리에 규합해 갔다. 이들은 거사 일자를 4월 2일 언양 장날로 정하였다. 4월 2일, 이무종 등 6인이 언양 남부리(南部里) 장터로 나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군중들은 일제히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많은 청년동지들은 미리 준비했던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위행렬을 이끌고 행진하였다. 그러나 일본 군경들이 시위 군중을 향해 실탄 사격을 퍼붓자,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 때 주동인물 48명이 체포되면서 시위군중은 해산하고 말았다. 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던 김경수는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현재 위치: 울산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174-2 / 묘소 소재지: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억알프스리 산 54 / 2020년 11월 울산광역시 울산군수
이곳 마을 뒤쪽에 있는 김경수 애국지사의 묘는 바로 옆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었다.
해당 번지가 넓은 지역인데 예상했던 지점까지 가기 전에 표창장 비석이 눈에 들어왔다.
제174534호 / 표창장 - 고. 김경수 위는 대한민국의 자주독립과 국가 건립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므로 이에 표창합니다. 2010년 3월 1일 대통령 이명박
독립유공자 경주김공 휘 경수 지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