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 355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광복회
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조직되었다. 광복회는 독립전쟁을 목표로 한말 의병계열과 계몽운동계열이 연합해 조직하였으며 박상진 의사가 총사령을 맡았다. 광복회는 국국회복과 공화주의 국가건설이 목적이었다. 먼저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을 치러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1910년대 독립운동이 방략이었던 독립전쟁론의 실현이었다. 광복회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폭동.암살.명령'이라는 투쟁강령과 '무력준비.무관양성.군인양성.무기구입.기관설치.행형부설치.무력전'을 행동강령으로 정하고 군대식으로 조직했다. 대구에 본부를 설치하고 상덕태상회.대동상점.안동여관 등과 같은 상점이나 미곡상, 여관 등을 설치해 활동거점으로 삼았다. 국내외로 조직을 확대해 만주와 8도에 지부도 설치했다. 광복회는 조직된 후 군자금 모집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그 방법으로 일제가 거두어들인 세금을 탈취하거나 일본인 소유의 광산을 공격해 자금을 확보하며, 부호들로부터 의연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전국으 부호들에게 의연금 모집 동고문을 발송하였다. 더불어 친일세력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의열투쟁도 전개했다. 경상도지부에서는 칠곡부호 장승원, 전라도지부에서는 친일부호 서도현, 충청도지부에서는 친일면장 박용하를 처단했다. 그러나 1918년 광복회원 대다수가 체포되면서 조직이 크게 와해되었으나 체포되지 않은 회원들이 1919년 3.1운동 후 주비단을 조직해 광복회를 계승 발전시켰다. 광복 후 생존 지사들을 중심으로 1945년 9월 광복회가 재건되어 산남의진 위령제를 거행하고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하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46년 해산되었다.
광복회는 1915년 8월 25일 대구 달성공원에서 조직되었다. 광복회는 독립전쟁을 목표로 한말 의병계열과 계몽운동계열이 연합해 조직하였으며 박상진 의사가 총사령을 맡았다. 광복회는 국국회복과 공화주의 국가건설이 목적이었다. 먼저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을 치러 나라를 되찾고자 하였다. 1910년대 독립운동이 방략이었던 독립전쟁론의 실현이었다. 광복회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비밀.폭동.암살.명령'이라는 투쟁강령과 '무력준비.무관양성.군인양성.무기구입.기관설치.행형부설치.무력전'을 행동강령으로 정하고 군대식으로 조직했다. 대구에 본부를 설치하고 상덕태상회.대동상점.안동여관 등과 같은 상점이나 미곡상, 여관 등을 설치해 활동거점으로 삼았다. 국내외로 조직을 확대해 만주와 8도에 지부도 설치했다. 광복회는 조직된 후 군자금 모집을 중점적으로 추진했다. 그 방법으로 일제가 거두어들인 세금을 탈취하거나 일본인 소유의 광산을 공격해 자금을 확보하며, 부호들로부터 의연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전국으 부호들에게 의연금 모집 동고문을 발송하였다. 더불어 친일세력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의열투쟁도 전개했다. 경상도지부에서는 칠곡부호 장승원, 전라도지부에서는 친일부호 서도현, 충청도지부에서는 친일면장 박용하를 처단했다. 그러나 1918년 광복회원 대다수가 체포되면서 조직이 크게 와해되었으나 체포되지 않은 회원들이 1919년 3.1운동 후 주비단을 조직해 광복회를 계승 발전시켰다. 광복 후 생존 지사들을 중심으로 1945년 9월 광복회가 재건되어 산남의진 위령제를 거행하고 무관학교 설립을 추진하며 다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46년 해산되었다.
광복회 포고문
슬프다. 우리 동표여! 지금은 어떠한 때인가. 4천 년 종사는 멸망하고 우리 2천만 민족은 노예가 되어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굴욕이 극에 달했다. 슬프다. 저 왜놈들은 오히려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날이 식민탄압을 더 하여,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멸망시키려고 기세등등해 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동포는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점진적으로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 근시안적인 방법만으로 대책하고 있다. 깨진 둥지에 어찌 완전한 계란이 있겠는까? 자자손손 남김없이 침략자의 희생이 되고 수많은 재산과 보물 역시 타인의 창고로 들어가니 이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진다. 우리 조국을 회복하고 세상의 원수에서 우리 동포를 구하려는 이유는 역사적 사명을 가진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러하므로 광복회는 성패와 이익을 돌보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창립하여 이미 십여 년을 경과하였다. 그동안 겪은 수많은 어려움은 일일히 나열하기 어려우며, 국내외 동포도 이러한 우리의 거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광복회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이 일체감이 부족하여 관습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큰 소리로 꾸짖어 우리 동포에게 고하노니, 모쪼록 이를 경시하지 말고 마음을 기울여 한번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가 힘을 규합하면 그대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단지 모자라는 것은 합치된 열정이다. 어찌 통곡하며 눈물을 흘릴 일이 아닌가. 바라건대 우리 동포는 조국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혜로운 자는 서로 애국애족하며 단결해서 광복회의 의로운 깃발이 제대로 발휘할 때를 기다려야 하며, 재력 있는 사람은 각기 의무를 다하기 위해 광복회의 요구에 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는 되찾아야 할 것이고, 왜놈은 토벌되어야 하며, 공적을 세운 다음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날은 어찌 즐겁고 장하지 않겠는가. 우리 동포는 뜨거운 마음과 이 기회를 통해 서로 돕고 각각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광복회.
슬프다. 우리 동표여! 지금은 어떠한 때인가. 4천 년 종사는 멸망하고 우리 2천만 민족은 노예가 되어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굴욕이 극에 달했다. 슬프다. 저 왜놈들은 오히려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나날이 식민탄압을 더 하여, 우리들의 생명과 재산을 멸망시키려고 기세등등해 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동포는 아직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점진적으로 재앙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지 못하며 근시안적인 방법만으로 대책하고 있다. 깨진 둥지에 어찌 완전한 계란이 있겠는까? 자자손손 남김없이 침략자의 희생이 되고 수많은 재산과 보물 역시 타인의 창고로 들어가니 이를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진다. 우리 조국을 회복하고 세상의 원수에서 우리 동포를 구하려는 이유는 역사적 사명을 가진 우리들이 해야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러하므로 광복회는 성패와 이익을 돌보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창립하여 이미 십여 년을 경과하였다. 그동안 겪은 수많은 어려움은 일일히 나열하기 어려우며, 국내외 동포도 이러한 우리의 거사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아직도 광복회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이 일체감이 부족하여 관습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에 큰 소리로 꾸짖어 우리 동포에게 고하노니, 모쪼록 이를 경시하지 말고 마음을 기울여 한번 생각하기 바란다. 우리가 힘을 규합하면 그대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 단지 모자라는 것은 합치된 열정이다. 어찌 통곡하며 눈물을 흘릴 일이 아닌가. 바라건대 우리 동포는 조국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혜로운 자는 서로 애국애족하며 단결해서 광복회의 의로운 깃발이 제대로 발휘할 때를 기다려야 하며, 재력 있는 사람은 각기 의무를 다하기 위해 광복회의 요구에 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라는 되찾아야 할 것이고, 왜놈은 토벌되어야 하며, 공적을 세운 다음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날은 어찌 즐겁고 장하지 않겠는가. 우리 동포는 뜨거운 마음과 이 기회를 통해 서로 돕고 각각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광복회.
박상진 의사 연보
1885년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에서 박시규(朴時奎)의 장남으로 출생. (음력 1884년 12월 7일) 생후 100일만에 큰아버지 박시룡(朴時龍)에게 출계하였고 1887년 경주시 외동면 녹동리로 이사하여 성장
1897년 왕산(旺山) 허위(許蔿) 문하에 입문
1898년 경주최씨 영백(永伯)과 혼인
1902년 벼슬길에 나선 스승 허위를 따라 서울로 올라감
1906년 양정의숙 전문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인 법률 경제를 공부함
1909년 양정의숙을 다니면서 계몽운동 단체 교남교육회 참여. 허위가 사형 순국하자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름
1910년 판사 등용 시험에 합격하여 평양지원에 발령이 났으나 부임하지 않고 사직
1911년 의주와 중국 단둥현에 안동여관(安東旅館)을 설치하여 거점으로 삼음. 중국 상해 등지를 여행하며 신해혁명을 참관
1912년 대구에서 독립운동 거점으로 곡물무역상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 설립
1885년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에서 박시규(朴時奎)의 장남으로 출생. (음력 1884년 12월 7일) 생후 100일만에 큰아버지 박시룡(朴時龍)에게 출계하였고 1887년 경주시 외동면 녹동리로 이사하여 성장
1897년 왕산(旺山) 허위(許蔿) 문하에 입문
1898년 경주최씨 영백(永伯)과 혼인
1902년 벼슬길에 나선 스승 허위를 따라 서울로 올라감
1906년 양정의숙 전문부에 입학하여 신학문인 법률 경제를 공부함
1909년 양정의숙을 다니면서 계몽운동 단체 교남교육회 참여. 허위가 사형 순국하자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름
1910년 판사 등용 시험에 합격하여 평양지원에 발령이 났으나 부임하지 않고 사직
1911년 의주와 중국 단둥현에 안동여관(安東旅館)을 설치하여 거점으로 삼음. 중국 상해 등지를 여행하며 신해혁명을 참관
1912년 대구에서 독립운동 거점으로 곡물무역상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 설립
1913년 서상일(徐相日) 등이 재조직한 달성친묵회 가입
1915년 1월 15일에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에 참여. 8월 25일 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에 추대되어 광복회 활동을 지휘함
1916년 대구권총사건으로 체포되어 6개월간 투옥됨
1918년 생모 장례에 참석하였다가 일제에 체포(2월 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예심종결
1919년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 등의 죄목으로 채기중, 김한종, 김경태, 임세규, 강순필 등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음
1920년 고등법원에서 일부 파기하여 대구복심법원으로 이송 판결(3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선고(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 확정(11월 4일).
1921년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3월 11일 오후 1시).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백운대에 안장(8월 21일)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추서
1996년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공동 선정)
1997년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 366 소재 생가를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
2007년 생가 건물을 수리.복원하고 준공식 거행
2017년 8월 이달의 호국인물 선정(전쟁기념관 선정)
1915년 1월 15일에 조직된 조선국권회복단에 참여. 8월 25일 광복회를 조직하고 총사령에 추대되어 광복회 활동을 지휘함
1916년 대구권총사건으로 체포되어 6개월간 투옥됨
1918년 생모 장례에 참석하였다가 일제에 체포(2월 1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예심종결
1919년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위반 등의 죄목으로 채기중, 김한종, 김경태, 임세규, 강순필 등과 함께 사형 선고를 받음
1920년 고등법원에서 일부 파기하여 대구복심법원으로 이송 판결(3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선고(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사형 확정(11월 4일).
1921년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3월 11일 오후 1시).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백운대에 안장(8월 21일)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 추서
1996년 8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국가보훈처, 독립기념관 공동 선정)
1997년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 366 소재 생가를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호로 지정
2007년 생가 건물을 수리.복원하고 준공식 거행
2017년 8월 이달의 호국인물 선정(전쟁기념관 선정)
항일의 횃불을 밝힌 독립전쟁론의 선구자 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不遠復(불원복) 태극기. 불원복은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라는 뜻으로 고광진의병장이 처음 사용한것에서 유래한다.
광복회 조직
(본부)
총사령 : 박상진 / 지휘장 : 우재룡.권영만 / 재무부장 : 최준 / 사업총괄 : 이복우
(국내)
강원도지부장 : 김동호 / 충청도지부장 : 김한종 / 경기도지부장 : 김선호 / 평안도지부장 : 조현균 / 경상도지부장 : 채기중 / 함경도지부장 : 최봉주 / 전라도지부장 : 이병찬 / 황해도지부장 : 이관구
(해외)
부사령 : 초대 이진룡. 2대 김좌진 / 단동 : 안동여관(손일민), 봉천 : 삼달양행(정순영)
광복회 강령
(투쟁강령)
비밀.폭동.암살.명령
(행동강령)
ㅇ 무력준비 : 일반 부호의 의연과 일본인이 불법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이로써 무장을 준비함.
ㅇ 무관양성 : 남북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사관으로 채용함.
ㅇ 군인양성 : 우리 대한의 의병, 해산군인 및 남북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혼련하여 채용함.
ㅇ 무기구입 : 중국과 러시아에 의뢰하여 구입함.
ㅇ 기관설치 : 대한, 만주, 북경, 상해 등 요지에 기관을 설치하되 대구에 상덕태라는 상회에 본회의 본점을 두고, 각지에 지점 및 여관, 또는 광무소를 두어서 이로써 본광복회의 군사행동의 집회, 왕래 등 일절의 연락기관으로 함.
ㅇ 행형부 : 우리 광복회는 행형부를 조직하여 일본인 고등관과 우리 한인의 반역분자를 수시수처에서 포살을 행함.
(본부)
총사령 : 박상진 / 지휘장 : 우재룡.권영만 / 재무부장 : 최준 / 사업총괄 : 이복우
(국내)
강원도지부장 : 김동호 / 충청도지부장 : 김한종 / 경기도지부장 : 김선호 / 평안도지부장 : 조현균 / 경상도지부장 : 채기중 / 함경도지부장 : 최봉주 / 전라도지부장 : 이병찬 / 황해도지부장 : 이관구
(해외)
부사령 : 초대 이진룡. 2대 김좌진 / 단동 : 안동여관(손일민), 봉천 : 삼달양행(정순영)
광복회 강령
(투쟁강령)
비밀.폭동.암살.명령
(행동강령)
ㅇ 무력준비 : 일반 부호의 의연과 일본인이 불법 징수한 세금을 압수하여 이로써 무장을 준비함.
ㅇ 무관양성 : 남북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인재를 양성하여 사관으로 채용함.
ㅇ 군인양성 : 우리 대한의 의병, 해산군인 및 남북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혼련하여 채용함.
ㅇ 무기구입 : 중국과 러시아에 의뢰하여 구입함.
ㅇ 기관설치 : 대한, 만주, 북경, 상해 등 요지에 기관을 설치하되 대구에 상덕태라는 상회에 본회의 본점을 두고, 각지에 지점 및 여관, 또는 광무소를 두어서 이로써 본광복회의 군사행동의 집회, 왕래 등 일절의 연락기관으로 함.
ㅇ 행형부 : 우리 광복회는 행형부를 조직하여 일본인 고등관과 우리 한인의 반역분자를 수시수처에서 포살을 행함.
광복회 연혁
1915년
08월 :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8월 25일), 대동상점 설치(연락거절)
11월 : 경북 김천에서 군자금 모집
12월 : 경주에서 일제 우편마차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집
12월 : 광복회 길림지부 조직
1916년
05월 : 전라도 지부에서 벌교부호 서도현 처단, 강원도 영월의 상동중석광 자금탈취 계획수립
06월 : 조선총독 암살 계획 수립
09월 : 대구에서 군자금 모집(대구권총사건)
10월 : 강원도 영월 중석광에서 군자금 모집
11월 : 황해도 지부에서 군자금 모집
1917년
01월 : 전라도 지부에서 자금 모집
02월 : 전라도 지부에서 순차으이 헌병출장소 공격
05월 : 만주 부사령 이진룡 체포됨
08월 : 김좌진을 만주 부사령으로 파견
09월 : 직산금광 공격 계획 수립
11월 : 칠곡 부호 장승원 처단
1918년
01월 : 충청도 지부에서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충청도 지부원 체포됨
02월 : 총사령 박상진 체포됨
06월 : 황해도 지부장과 지부원 체포됨
07월 : 경상도 및 전라도 지부장 등 체포됨
10월 : 체포된 광복회원 예심종결(40명 중 32명이 재판에 회부됨)
1919년
02월 : 광보고히원 1심 판결(공주지방법원, 24명이 유죄판결을 받음)
06월 : 광복회를 계승한 주비단 조직
11월 : 박상진.김한종 사형 확정
1921년
08월 : 박상진.김한종 사형 순국(8월 11일), 채기중.김경태.임세규 사형 순국(8월 12일)
1945년
08월 : 서울에서 광복회 재건 착수
09월 : 서울에서 광복회를 재건하고 「광복회」발행(9월 19일)
12월 : 무관학교 설립계획을 수립하고 무관학교 생도 선발시험 실시
1946년
02월 : 산남의진위령제 거행(영일군 죽장면 입암리). 미군정의 사설군사단체해산령으로 무관학교 설립 무산
03월 : 재건광복회 강제해산
1915년
08월 : 대구 달성공원에서 결성(8월 25일), 대동상점 설치(연락거절)
11월 : 경북 김천에서 군자금 모집
12월 : 경주에서 일제 우편마차를 습격하여 군자금 모집
12월 : 광복회 길림지부 조직
1916년
05월 : 전라도 지부에서 벌교부호 서도현 처단, 강원도 영월의 상동중석광 자금탈취 계획수립
06월 : 조선총독 암살 계획 수립
09월 : 대구에서 군자금 모집(대구권총사건)
10월 : 강원도 영월 중석광에서 군자금 모집
11월 : 황해도 지부에서 군자금 모집
1917년
01월 : 전라도 지부에서 자금 모집
02월 : 전라도 지부에서 순차으이 헌병출장소 공격
05월 : 만주 부사령 이진룡 체포됨
08월 : 김좌진을 만주 부사령으로 파견
09월 : 직산금광 공격 계획 수립
11월 : 칠곡 부호 장승원 처단
1918년
01월 : 충청도 지부에서 도고면장 박용하 처단, 충청도 지부원 체포됨
02월 : 총사령 박상진 체포됨
06월 : 황해도 지부장과 지부원 체포됨
07월 : 경상도 및 전라도 지부장 등 체포됨
10월 : 체포된 광복회원 예심종결(40명 중 32명이 재판에 회부됨)
1919년
02월 : 광보고히원 1심 판결(공주지방법원, 24명이 유죄판결을 받음)
06월 : 광복회를 계승한 주비단 조직
11월 : 박상진.김한종 사형 확정
1921년
08월 : 박상진.김한종 사형 순국(8월 11일), 채기중.김경태.임세규 사형 순국(8월 12일)
1945년
08월 : 서울에서 광복회 재건 착수
09월 : 서울에서 광복회를 재건하고 「광복회」발행(9월 19일)
12월 : 무관학교 설립계획을 수립하고 무관학교 생도 선발시험 실시
1946년
02월 : 산남의진위령제 거행(영일군 죽장면 입암리). 미군정의 사설군사단체해산령으로 무관학교 설립 무산
03월 : 재건광복회 강제해산
광복회원
강석주·강순필·고제신·곽경열·권영만·권영목·김경태·김동호·김영근·김원묵·김재덕·김재열·김재완·김재정·김재창·김재철·김재풍·김좌진·김진만·김진우·김한종·박상진·박장희·박제선·변동식·변동환·성달영·성문영·손기찬·손일민·엄정섭·우재룡·유명수·유장렬·유중협·윤병일·윤창하·이관구·이교덕·이근영·이동흠·이명서·이병찬·이병화·이시영·이재덕·이정희·이종영·이진룡·임세규·장두환·정순영·정우풍·정운기·정운일·정응봉·정진화·정태복·조선환·조용필·조재하·조종철·조현균·주진수·채기중·최준·최면식·최병규·최봉주·최익환·한훈·한성근·홍주일·홍현주·황학성
〈가나다순, 포상자〉
강석주·강순필·고제신·곽경열·권영만·권영목·김경태·김동호·김영근·김원묵·김재덕·김재열·김재완·김재정·김재창·김재철·김재풍·김좌진·김진만·김진우·김한종·박상진·박장희·박제선·변동식·변동환·성달영·성문영·손기찬·손일민·엄정섭·우재룡·유명수·유장렬·유중협·윤병일·윤창하·이관구·이교덕·이근영·이동흠·이명서·이병찬·이병화·이시영·이재덕·이정희·이종영·이진룡·임세규·장두환·정순영·정우풍·정운기·정운일·정응봉·정진화·정태복·조선환·조용필·조재하·조종철·조현균·주진수·채기중·최준·최면식·최병규·최봉주·최익환·한훈·한성근·홍주일·홍현주·황학성
〈가나다순, 포상자〉
고헌 박상진 의사의 투혼
"고헌 박상진 의사의 투혼은" 역사공원 내 랜드마크적 상징물로 광복회회원들의 업적과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일치 단결하여 왜적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박상진 의사의 투혼을 표현한 작품이다.
2018.12 조각가 조민길
"고헌 박상진 의사의 투혼은" 역사공원 내 랜드마크적 상징물로 광복회회원들의 업적과 애국애족의 마음으로 일치 단결하여 왜적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박상진 의사의 투혼을 표현한 작품이다.
2018.12 조각가 조민길
박상진 의사 전별시
鴨江秋日送君行(압강추일송군행)
快許丹心誓約明(쾌허단심서약명)
匣裏龍泉光射斗(갑리용천광사두)
立功指日凱歌聲(입공지일개가성)
가을 깃든 압록강 넘어 그대를 보내나니
쾌히 내린 그대 단심이 우리들 서약 밝게 해주네
칼집 속의 용천검이 홀연히 빛 발할지니
이른 시일 내 공 세워 개선가 불러보세
일천구백십칠년 백야 김좌진 장군 만주 파견 때 고헌 박상진 이사께서 읊은 시
정해년 겨울에 삼봉 김석곤 삼가쓰다
鴨江秋日送君行(압강추일송군행)
快許丹心誓約明(쾌허단심서약명)
匣裏龍泉光射斗(갑리용천광사두)
立功指日凱歌聲(입공지일개가성)
가을 깃든 압록강 넘어 그대를 보내나니
쾌히 내린 그대 단심이 우리들 서약 밝게 해주네
칼집 속의 용천검이 홀연히 빛 발할지니
이른 시일 내 공 세워 개선가 불러보세
일천구백십칠년 백야 김좌진 장군 만주 파견 때 고헌 박상진 이사께서 읊은 시
정해년 겨울에 삼봉 김석곤 삼가쓰다
박상진 의사 절명시
難復生此世上(난복생차세상)
幸得爲男子身(행득위남자신)
無一事成功去(무일사성공거)
靑山嘲綠水嚬(청산조녹수빈)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이 세상에
다행히도 남자로 태어났건만
이룰 일 하나없이 이 세상을 떠나려니
청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찡그리네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절명시
難復生此世上(난복생차세상)
幸得爲男子身(행득위남자신)
無一事成功去(무일사성공거)
靑山嘲綠水嚬(청산조녹수빈)
다시 태어나기 어려운 이 세상에
다행히도 남자로 태어났건만
이룰 일 하나없이 이 세상을 떠나려니
청산이 조롱하고 녹수가 찡그리네
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 절명시
박상진 의사 유시
母葬未成(모장미성)
君讐未復(군수미복)
國土未復(국토미복)
死何面目(사하면목)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한 채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강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이내 몸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 걸어갈까
母葬未成(모장미성)
君讐未復(군수미복)
國土未復(국토미복)
死何面目(사하면목)
어머님 장례 마치지 못한 채
나라님 원수도 갚지 못했네
빼앗긴 강토마저 되찾지 못했으니
이내 몸 무슨 면목으로 저승길 걸어갈까
박상진의사의 묘소는 고향인 울산이 아닌 처가인 경주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