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룡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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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 780-54
탐방로그
애국지사 이종근, 이종룡 형제의 묘소는 울산 남구 옥동 780-54 옥동공원묘원(울산공원묘지)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李鍾龍 先生 之墓(애국지사 이종룡 선생 지묘)
愛國志士 慶州李公 鍾龍 之墓(애국지사 경주이공 종룡 지묘)
12-3-64
자 재우 병우 대우, 녀 춘자 서 노상진
손 상길 상천 상곤 상태 상명 상조 상민, 손녀 미애, 손서 손재헌
증손 강희
서기 1898년 음 2월 20일 생
서기 1986년 2월 11일 졸
본적 울산시 중구 남외동 248
주소 울산시 중구 남외동 205
愛國志士 李鍾龍 先生 之墓(애국지사 이종룡 선생 지묘)
선생의 이름은 종룡(鍾龍) 호는 예봉(禮峰) 성은 이(李)씨 본은 경주(慶州)이니 고려 석학 익제공(益齊公)의 후예로 고(아버지)는 규수(圭秀) 비(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서기 1899년 2월 20일에 선생의 세거(世居)인 울산광역시 중구 남외동에서 태어나시었다. 일곱살에 촌숙에서 한문을 익혔고
사립 일신학교에서 신학문을 배우시었다. 19세에 서리 농촌학교를 설립하여 그 학교의 스승이 되셨으며 20세 때 기미 3.1운동이 일어남에 조국을 찬탈한 일본에 대하여 복수를 다져오던 의혈청년들을 이끌고 상무향 병영에서 독립만세운동을 펼치시었다. 1919년 4월 4일 독립운동 중 일본 헌병에 체포된 선생은 혹독한 고문 취조 끝에 부산형무소에 투옥되어 옥고를 겪으시기도 하시었다. 출옥 후 대부분의 동지들이 고향을 떠나갔으나 선생은 끝까지 향리에 남아 순국4동지의 추념봉제와 후손들의 애국심 선양에 헌신하시다가 서기 1986년 2월 11일에 서거하시니 향년 86세였다. 조국에서는 선생의 애국충정을 기려 대통령표창을 추서해 주시었다. 가족으로는 미망인 김해김씨(金海金氏), 아들 재우(載雨), 병우(炳雨), 대우(大雨), 딸 춘자(春子) 등을 남기시었다. 지축이 흔들리고 산천초목도 떨리던 이 강산 이 고장에 태극기 높이 들고
목터지라 외치시던 그 모습 아직도 완연한데 세월이 흘렀다하여 차마 어찌 잊으리까. 정성을 함께 모아 실사를 기록하여 이 빗돌에 깊이 새겨 천추에 알리고자 합니다.
2005년 11월 30일 울산광역시 남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