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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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 780-54
탐방로그
애국지사 이종근, 이종룡 형제의 묘소는 울산 남구 옥동 780-54 옥동공원묘원(울산공원묘지)에 위치하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울산 남구 옥동 780-54 옥동공원묘원(울산공원묘지) 의 애국지사 이종근, 이종룡 형제의 묘를 찾아가고 있다.
애국지사 이종근, 이종룡 형제분의 묘소안내
애국지사 이종근·이종룡 형제분은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에서 출생하시었다. 두 형제 지사는 1919년 4월 4일과 5일 양일간에 걸친 병영에서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시다가 체포되어 모진 형고를 겪으시었다.
광복된 조국에서는 두 형제분의 애국충정을 기려 건국훈장 등을 추서해 주시었다.
두 분의 묘소는 옥동언덕에 모시니 이는 울산인의 명예요 영광이라 할 것이다.
우리 모두 두분 형제 지사님의 묘소를 찾아 참배를 드리도록 합시다.
2015.12.2. 울산광역시 남구청장
愛國志士 慶州李公 鍾根 之墓(애국지사 경주이공 종근 지묘) / 愛國志士 李鍾根 之墓(애국지사 이종근 지묘)
愛國志士 慶州李公 鍾根 之墓(애국지사 경주이공 종근 지묘)
10-4-74
배 정귀정
자 춘해, 자부 채출이, 손 상옥 상례
자 춘제, 자부 박송자, 손 상봉
서기 1897년 8월 20일 생
서기 1957년 6월 16일 졸
서기 1983년 4월 5일
울주군 청량면 상남리에서 이장
愛國志士 李鍾根 之墓(애국지사 이종근 지묘)
화암 이종근 지사는 서기 1897년 8월 20일 경상남도 울산군 병영 남외리에서 출생하셨다. 1919년 3월 10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마침내 이 고장 병영까지 파급되었다. 이때 병영 청년회 간부이던 지사는 회원들과 밀회하여 거사할 것을 촉구하였으나 모두가 주저하는지라 그 자리에서 '진충보국'이란 혈서를 쓰니 혼연일체로 거사할 것을 결의하고 동년 4월 5일 청년회원
20여명과 일신학교(현 병영국민학교) 교정에 모여 학생 및 주민 다수와 함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손과 손에 태극기를 나눠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급거 달려온 일본 관헌에 의하여 일부는 체포 압송되고 강제 해산 당하였다. 절치부심한 지사는 동지들과 익일에 재거사할 것을 계획하고 동지 규합 책임을 맡고 농소 방면으로 가셨다. 그 익일인 4월 6일 오전 10시 드디어 노도와 같은 만세시위 군중에 놀라 달려온 일본 수비대가 무차별 사살, 구타, 체포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한 지사는 이들이 내밀고 있는 총검 앞에 가슴을 헤치며 "쏠테면 쏘아라"하고 대들자 일본군도 감히 쏘지 못하고 그 기백 앞에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동년 5월 초에 피체되어 무수한 고문을 당하고 대구감옥에서 2년간의 옥고를 치룬 뒤 항일운동을 계속하기 위하여 만주 망명을 시도 함경북도 단천에 은거 중 적발되어 거주 제한 구역인 향리로 압송되셨다. 향리에 돌아와서는 함께 옥고를 겪은 복역자 전원과 함게 기미계를 조직 4월 6일 그날 순국하신 엄준. 문성조. 주사문. 김응룡 네 분의 추모제를 매년 봉행하였다. 1944년 6월에는 소위 대동아전쟁에 광분한 일제의 신사참배 놋쇠 공출 등의 강요에 불복하다가 또다시 울산 경찰서 유치장에서 20여일간 구금의 고난을 겪기도 하셨다. 1957년 6월 16일
20여명과 일신학교(현 병영국민학교) 교정에 모여 학생 및 주민 다수와 함께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뒤 손과 손에 태극기를 나눠들고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다가 급거 달려온 일본 관헌에 의하여 일부는 체포 압송되고 강제 해산 당하였다. 절치부심한 지사는 동지들과 익일에 재거사할 것을 계획하고 동지 규합 책임을 맡고 농소 방면으로 가셨다. 그 익일인 4월 6일 오전 10시 드디어 노도와 같은 만세시위 군중에 놀라 달려온 일본 수비대가 무차별 사살, 구타, 체포하는 광경을 보고 격분한 지사는 이들이 내밀고 있는 총검 앞에 가슴을 헤치며 "쏠테면 쏘아라"하고 대들자 일본군도 감히 쏘지 못하고 그 기백 앞에 그만 기가 꺾이고 말았다. 동년 5월 초에 피체되어 무수한 고문을 당하고 대구감옥에서 2년간의 옥고를 치룬 뒤 항일운동을 계속하기 위하여 만주 망명을 시도 함경북도 단천에 은거 중 적발되어 거주 제한 구역인 향리로 압송되셨다. 향리에 돌아와서는 함께 옥고를 겪은 복역자 전원과 함게 기미계를 조직 4월 6일 그날 순국하신 엄준. 문성조. 주사문. 김응룡 네 분의 추모제를 매년 봉행하였다. 1944년 6월에는 소위 대동아전쟁에 광분한 일제의 신사참배 놋쇠 공출 등의 강요에 불복하다가 또다시 울산 경찰서 유치장에서 20여일간 구금의 고난을 겪기도 하셨다. 1957년 6월 16일
누적된 옥독으로 몰하시니 향년 61세라. 지사의 거룩하신 애국충정을 다새겨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으로 삼가 약력으로나마 적어 길이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서기 1982년 9월 일 울주군수 박필용 근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