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34-3
- 탐방로그
- 중구 정동 34-3 정동제일교회는 1919년 3.1운동 가사 준비를 위해 학생 대표 및 기독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이 있던 곳이다. 또한 이 곳은 민족대표 기독교측 16명이 최종 서명한 장소라고 한다. 이필주 목사 사택 터 안내판은 차량이 막고 있어서 아쉽게도 정면 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중구 정동 34-3 정동제일교회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신 이필주 목사 사택 터 안내판을 찾았다.
또 이 곳은 민족대표 기독교측 16명이 최종 서명한 장소라고 한다.
또 이 곳은 민족대표 기독교측 16명이 최종 서명한 장소라고 한다.
정동제일교회 Chungdong First Methodist Church
격변의 시대, 청년들의 교육과 독립운동 중심지
Center of Youth Enlightenment and Independence Movement in Turbulent Modern Days
정동제일교회는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한국 최최의 개신교 교회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서재필 박사,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주시경 선생 등 한국 개화기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예배를 보면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에는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고, 3.1운동 당시에 오르간 뒤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이 열렸으며, 1920년 이화여고생이었던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격변의 시대, 청년들의 교육과 독립운동 중심지
Center of Youth Enlightenment and Independence Movement in Turbulent Modern Days
정동제일교회는 배재학당의 교장이었던 헨리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한국 최최의 개신교 교회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서재필 박사,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주시경 선생 등 한국 개화기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예배를 보면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정동제일교회 예배당에는 1918년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이 설치되었고, 3.1운동 당시에 오르간 뒤에서 비밀리에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최초의 서양식 결혼식이 열렸으며, 1920년 이화여고생이었던 유관순의 장례식이 거행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합니다.
이필주 목사 사택 터 안내판도 차량이 막고 있어서 찾는 데 오래 걸렸다.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 / Lee Pilju’s Residence at Chungdong Church
관리번호: 10-1-27 / 관리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1919년 3.1운동 가사 준비를 위해 학생 대표 및 기독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이 있던 곳이다. 정동교회 내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는 2월 25일과 26일 학생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 참여 방안을 논의하였고, 2월 28일에는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또한 이곳에서 기독교계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에 참여할 기독교측 민족 대표의 인선을 마무리 지었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추진 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2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관리번호: 10-1-27 / 관리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1919년 3.1운동 가사 준비를 위해 학생 대표 및 기독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이 있던 곳이다. 정동교회 내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는 2월 25일과 26일 학생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 참여 방안을 논의하였고, 2월 28일에는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또한 이곳에서 기독교계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에 참여할 기독교측 민족 대표의 인선을 마무리 지었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추진 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2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동교회 이필주 사택 터 / Lee Pilju’s Residence at Chungdong Church
관리번호: 10-1-27 / 관리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1919년 3.1운동 가사 준비를 위해 학생 대표 및 기독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이 있던 곳이다. 정동교회 내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는 2월 25일과 26일 학생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 참여 방안을 논의하였고, 2월 28일에는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또한 이곳에서 기독교계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에 참여할 기독교측 민족 대표의 인선을 마무리 지었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추진 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2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
관리번호: 10-1-27 / 관리자: 기독교대한감리회 정동제일교회 /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46
1919년 3.1운동 가사 준비를 위해 학생 대표 및 기독계 대표들이 회합을 가졌던 이필주 목사의 사택이 있던 곳이다. 정동교회 내 이필주 목사 사택에서는 2월 25일과 26일 학생대표들이 모여 독립운동 참여 방안을 논의하였고, 2월 28일에는 학생 대표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또한 이곳에서 기독교계 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에 참여할 기독교측 민족 대표의 인선을 마무리 지었다. 1918년부터 정동교회를 담임하던 이필주 목사는 3.1운동 추진 계획을 듣고 그 취지에 동의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고, 이로 인해 2년 여의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