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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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탐방로그
종로구 새문안로 29에 위치한 경교장의 이칭은 죽첨정이며, 백범 김구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사용했던 석조마감 건물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에 위치한 개인 사저 겸 집무실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2층 응접실(서재) / Reception room, 2nd floor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 후 김구와 국내 정당대표들과의 회담 및 국무위원회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임시정부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벽난로
경교장 지하 공간 / Lower level
경교장 지하공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에는 보일러실과 부엌 등으로 사용되었다.
보일러실 북측에는 문이 있었는데 1948년 4월 19일 김구가 남북협상을 위해 평양으로 가려할 때,
김구의 북행(北行)을 만류하는 사람들을 피해 정문이 아닌 지하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갔다고 전해진다.
현재 지하공간은 경교장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조성되었다.
[1938~1945] 죽첨장(竹添莊) 시기
∎ 최창학의 저택으로 사용
1938 금광업자 최창학의 저택으로 건립 (명칭:竹添莊)
∎ 건축주 최창학(崔昌學, 1891~1959)
최창학은 일제강점기에 광산업(鑛産業)으로 큰 부(富)를 축적한 인물로, 1937년 중일전쟁(爭)이 일어나자 일본에 비행기를 헌납하고 거금(巨金)을 기부하는 등 친일행위를 하였다. 1945년 11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준비를 위해 조직된 임시정부환국봉영회(臨時政府還國奉迎會)에서 최창학이 소유하고 있던 경교장을 임시정부에 제공하였다.
[1945~1949] 경교장(京橋莊) 시기
∎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및 김구 등 임시정부 요인의 숙소로 사용
1945.11.23 김구 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 1진 귀국, 경교장 입주
1945.12.1 홍진의정원 의장 등 임시정부 요인 2진 귀국
1945.12.3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국무위원회 개최
1945~1948 신탁통치 반대운동 및 남북통일운동 추진 무대
1949.6.26 김구 서거
[1949~2013] 훼손 및 복원기
∎ 대사관(관저) 및 병원으로 사용되면서 변형
1949.11~1950.5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
1950.6~1950.8 한국전쟁 중 미군특수부대 및 임시의료진 주둔
1956.10~1967.10 월남대사관으로 사용
1967.9 경교장 후면에 고려병원 신축
1968,11 고려병원 개원
1995.6 고려병원, 강북삼성병원으로 명칭 변경
2001.4.6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 지정
2005.6.13 국가사적 제465호로 승격. 2층 김구 집무실 부분 복원
2010.6.30 강북삼성병원, 경교장 복원 위해 병원시설 이전
2010.7-2013.2 건물 복원 및 내부 전시공사
경교장, 60년 만에 제모습을 찾다
▸보존의 목소리가 제기되다 (1960~1980년대) ▸문화재로 지정되다 (1990~200년대) ▸원형복원되다 (2009~2013)
김구 혈의
중국에서 미국로 돌아가는 벨기에 출신 미오스 오그신부를 통하여 미국에 있는 교민에게 보낸 태극기
梅西絶神父의게 付託하오 당신은 우리의 光復운동을 誠心으로 돕는터이니 이번 行次에 어느 곧에서나 우리 韓人을 만나는 대로 以下義句의 말을 傳하여 주시오. 亡國의 설음을 免하려거든 自由와 幸福을 누리려거든 精力 人力 物力을 光復軍에 바쳐서 强奴?末勢인 원수 日本을 打倒하고 祖國의 獨立을 完成하자.
1941년 3월 16일 重慶에서 김구 근증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
▸국호(대한민국), 정부조직(정부, 의회), 정치체제(민주공화제)를 이어받다 ▸국기(태극기)와 국가(애국가)를 이어받다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29 경교장을 찾아왔다.
서울 경교장 / Seoul Gyeonggyojang
지정번호: 사적 제465호 / 시대: 1938년 /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동 108번지 1호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인 1938년에 금광업을 하던 최창학(崔昌學)의 양옥 주택이다. 이곳의 설계와 시공은 김세연(金世演)이 담당하였다. 경교장이라는 이름은 이곳이 광복 후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거처로 쓰이면서 근처 개울에 있는 경교라는 다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건물 각 부분은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물 1층의 응접실과 식당에 있는 완만한 곡면의 돌출창, 2층의 연속 아치창, 지붕 중앙부의 도머 창으로 단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건물의 1층은 테이블과 소파, 의자 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2층은 일본식 다다미방들을 복도 양쪽에 두었다.
백범은 광복 후 3년 7개월간 이곳에 머물면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전개하다가 1949년 6월 26일 이곳에서 저격을 받아 서거했다.
백범 서거 후 이곳은 자유중국 대사관저로 쓰였고, 6.25 동안에는 미 특수부대 시설로, 휴전 후에는 월남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에서 인수하였다. 그 후 대대적으로 수리를 하였으나 외관과 지붕은 지금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백범이 사용하던 2층의 침실 부분을 복원하여 백범기념실로 사용하고 있다. 백범을 향했던 총탄의 자국은 그날의 모습 그대로 침실 창의 유리에 남아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거실(집무실) / Kim Koo's office and living room
김구 주석이 평상시 공무를 보거나 접견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또한 1949년 6월 26일 대한민국 육군소위이며 주한미군방첩대(CIC) 요원인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한 곳이다.
임시정부 요인 숙소 / Bedrooms for High-profile government officials and their aides
1945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수행원들이 환국하여 머문 곳이다.
1945년 12월 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의 신탁통치 결정에 따라 개최된 임시정부의 국무위원회 회의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