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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358
- 탐방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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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천리 3.1운동 만세시위지 안내판을 찾으러 구리시 아천동 378-4 아천동교회에 왔다. 진입로 주변을 찾아보아도 안내판이 보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아천동 교회 안에서 안내판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을 만날 수 있었다. 해당 사적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여러 제약에 부딪히면서 최종적으로 나무 밑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峨川里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길 22번길 11일대
아천리 3·1운동 만세시위지는 아천리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28일에 양주 구리면 아천리에서 면서기인 이강덕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심점봉 등 아천리 주민 수십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5시 무렵에 이웃 동리인 토평리와 교문리까지 행진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또한 이들은 다음 날에도 인근 아차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산꼭대기에 꽂고 만세를 불렀다.
이강덕 심점봉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峨川里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길 22번길 11일대
아천리 3·1운동 만세시위지는 아천리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28일에 양주 구리면 아천리에서 면서기인 이강덕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심점봉 등 아천리 주민 수십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5시 무렵에 이웃 동리인 토평리와 교문리까지 행진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또한 이들은 다음 날에도 인근 아차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산꼭대기에 꽂고 만세를 불렀다.
이강덕 심점봉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峨川里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길 22번길 11일대
아천리 3·1운동 만세시위지는 아천리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28일에 양주 구리면 아천리에서 면서기인 이강덕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심점봉 등 아천리 주민 수십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5시 무렵에 이웃 동리인 토평리와 교문리까지 행진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또한 이들은 다음 날에도 인근 아차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산꼭대기에 꽂고 만세를 불렀다.
이강덕 심점봉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峨川里 三一運動 萬歲 示威址)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길 22번길 11일대
아천리 3·1운동 만세시위지는 아천리 주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이다. 1919년 3월 28일에 양주 구리면 아천리에서 면서기인 이강덕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심점봉 등 아천리 주민 수십명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대는 오후 5시 무렵에 이웃 동리인 토평리와 교문리까지 행진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또한 이들은 다음 날에도 인근 아차산에 올라가 태극기를 산꼭대기에 꽂고 만세를 불렀다.
이강덕 심점봉은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구리시 아천동 378-4 아천동교회 진입로 옆 아천리 3.1운동 만세시위지 안내판을 찾았다.
정면에 보이는 큰 건물이 아천동교회이다.
원래는 저 입구에 설치를 해야하는데 마땅치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부근에 설치를 할려고 했지만, 땅주인이 허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최종적으로 나무 밑에 설치된 경기도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안내판
아천리 3.1운동 만세 시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