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 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서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는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조르지 마라
민들레 제비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김을 매는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갔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 이상화 글씨 홍승련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서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는 고운 비로
너는 삼단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조르지 마라
민들레 제비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김을 매는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갔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음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시 이상화 글씨 홍승련
이상화 시비(詩碑) 건립기
상화 이상화(尙火 李相和)는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1916년 서울로 올라와 중앙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하여 거사를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자퇴하였다. 1921년 '백조' 동인이 되고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으며, 1937년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 이상정 장군을 만났다는 이유로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22년 '백조' 창간호에 시 '말세의 회탄'을 발표하고 1923년 '나의 침실로'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26년 6월호 '개벽'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 강점기 항일 민족시의 대표적 작품이다.
상화는 1943년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집은 '늪의 우화', '나의 침실로', '석인상' 등이 남아 있으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우리 중앙교우들은 모교의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나라의 대표적 민족시인인 교우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돌에 새겨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계산에 시비(詩碑)로 세운다. - 2008년 6월 20일 中央校友會(중앙교우회)
상화 이상화(尙火 李相和)는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1916년 서울로 올라와 중앙학교에 입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운동에 참여하여 거사를 모의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자퇴하였다. 1921년 '백조' 동인이 되고 1927년 의열단 이종암 사건에 연루되어 구금되었으며, 1937년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 이상정 장군을 만났다는 이유로 5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그는 1922년 '백조' 창간호에 시 '말세의 회탄'을 발표하고 1923년 '나의 침실로'를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1926년 6월호 '개벽'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일제 강점기 항일 민족시의 대표적 작품이다.
상화는 1943년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시집은 '늪의 우화', '나의 침실로', '석인상' 등이 남아 있으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우리 중앙교우들은 모교의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이 나라의 대표적 민족시인인 교우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돌에 새겨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계산에 시비(詩碑)로 세운다. - 2008년 6월 20일 中央校友會(중앙교우회)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