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중출신 독립유공자 명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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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2가 1-206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경성호국신사_일제강점기 아픔의 장소
이곳은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에서 전사한 일본군 추모를 위해 설립된 '경성호국신사'가 있던 장소이다. '호국신사'란 전사자를 전쟁의 신으로 높여 추모하는 신사를 말하며,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야스쿠니신사를 들 수 있다. 일제는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등에서의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 일대와 함경북도 나남에 호국신사를 조성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경성호국신사는 1940년부터 3년여에 걸쳐 '경성 삼판통 용중 리산(裏山)‘에 만들어졌다. 즉 후암동(삼판통) 용산중학교 뒤쪽 산에 위치했고, 총면적 약 2만 2천 평의 넓은 부지를 차지하였다. 경성호국신사의 막대한 건립비용은 강제로 모금되었고,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한국인들은 신사 건립에 강제 동원되었다. 1943년 완공된 후부터 해방 전까지 경성호국신사는 전쟁분위기 조성과 한국인 강제징집을 위해 일제에 의해 적극 활용되었다.
경성호국신사의 흔적은 이곳과 가까운 '108계단'에서 발견할 수 있다. 108계단은 본래 경성호국신사 참배를 위해 오르는 계단이었다. 해방 이후 이곳 일대에는 숭실학교를 비롯하여 보성여학교, 해방교회 등이 자리잡았다.
숭실학교 민족교육의 산실
이곳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아픔을 딛고 1950~70년대 숭실중고등학교가 위치했던 곳이다. 숭실학교는 1897년 미국인 선교사 베어드에 의해 평양에 개설한 기독교 계열 학교이다. 숭실학교의 교육은 학생들에게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을 실천하게 하여 을사조약반대운동, 3.1운동, 신사참배반대운동 등 항일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일제가 숭실학교를 배일운동의 본거지이자 온상으로 불령선인의 소굴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또한 숭실학교 축구부는 일제 강점기 축구로도 명성을 떨쳤는데 1928년 오사카에서 열린 제10회 전일본중등학교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일본 선수들에게 패배를 안기고 우리 님족의 자부심을 높였다. 1938년 숭실학교는 신사참배거부로 폐교되었고, 해방 이후 남하하여 서울 신당동과 대구 덕산동을 거쳐 이곳 용산동에 자리잡았다. 숭실학교가 은평구로 옮겨간 이후 정일학원, 센테니얼크리스천스쿨을 거쳐, 현재는 학생들이 세계7대 도시를 순회하며 공부하는 미네르바스쿨이 교육의 산실로서 명맥을 어어오고 있다.
앞쪽 기념비에는 독립장을 서훈받으신 김태연(金泰淵) 선생이 숭실중학교 출신이라고 나와있다. 하지만 독립장으로 김태연(金泰淵) 선생은 두분이 계신다. 생,졸 연도를 확인하고 싶지만 이곳에는 나오지가 않고 있다.
또 앞쪽 기념비에는 없지만 이곳에는 조병옥,장준하 애국지사 두 분이 사회지도자 부문에 추가되어 있다.
해방촌 이야기 고향을 떠나온 이들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남산 아래 첫 동네
소나무 숲이었던 이곳에 마을이 생겨난 것은 해방 직후였다. 일제강점기에 해외에 흩어졌다 귀국한 동포들과 종교와 정치체제 문제로 월남한 주민들은 움막을 짓고 공동무물을 파고 길을 내서 살기 시작했다. 특히 평안북도 선천 지역주민등은 옛 경성호국신사 자리에 군민회를 위뤄 집다거주시설을 형성하기도 했다. 산업화가 활발하던 60년대 이후, 해방촌은 일감을 찾아 서울로 모여든 서민들의 보금자리이자 일터였다. 당시 활발하게 일어난 니트산업으로 한때 해방촌에는 300여 개의 가내 공장이 운영되었고 생산된 상품들은 전국으로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더욱 물려들었고 시장은 번성했다. 각자의 고향을 그리던 사람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워 정신적으로 뿌리를 내렸고 대를 이어오며 해방촌의 문화를 만들었다. 이제 주민들은 이곳을 고향이라고 부르며 늘어가는 다문화가정과 다국적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해방촌 2세대들과 젊은이들은 공방과 카페, 마을모임에서 조용하면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 1-206 해방타워 앞마당 옛 숭실중학교 터 숭실학교 기념비를 찾았다.
네비게이터에 주소를 입력하고 왔는데 앞마당이 보이질 않는다.
건물의 반대편으로 돌아오자 앞마당이 보였다.
해방타워
HAE BANG TOWER
이곳은 숭실학교의 옛터입니다.
해방타워
HAE BANG TOWER
이곳은 숭실학교의 옛터입니다.
숭실학교는 1897년 베어드(W.M. Baird) 미 선교사가 평양에 설립하였습니다. 그 후,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 거부로 1938년 자진 폐교하였다가, 해방 및 남북분단을 거치며 북한의 종교탄압으로 1954년 이곳 용산에 재건되었습니다. 숭실학교는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인재들을 배출한 명문사학입니다.
2019. 12. 1
분야별 숭실중 출신 인물 / 숭실중 출신 독립유공 포상자

분야별 숭실중 출신 인물
* 사회 지도자 : 조응천, 장리욱 김명선, 김선식, 유기천, 황성수, 장문화, 문익환
* 종교 지도자 : 임종선, 정일선, 김인준, 이성휘, 변성옥, 김화식, 배민수. 기주복, 김영환, 길진경, 강태국, 명신홍, 김철훈, 안광국, 김정준 이동진, 정대위
* 음악인 : 김인식, 김형준, 김영환, 김세형, 박태현, 조순천, 전봉초, 안익태
* 미술인 : 김원, 윤중식, 박고석
* 문학인 : 주요섭, 박영준, 김현승, 김조규, 황순원, 김종문, 김형석, 김종삼
* 체육인 : 이병학, 김영근

숭실중 출신 독립 유공 포상자
* 대한민국장 : 조만식
* 대통령장 : 김익상, 편강렬
* 독립장 : 김강, 김예진 김정련, 김태연, 백기환, 선우혁, 손정도, 안세환, 오운홍, 윤동주, 이승길, 임이걸, 장일환, 정찬조, 조병옥, 차리석, 최수봉, 홍성익
* 애국장 : 강봉우, 곽임대, 김희백, 박휘병, 이상조. 장신국, 정태희, 조봉호, 최광옥, 한도원
* 애족장 : 길진형, 김대엽, 김두찬, 김두화, 김선두, 김승은, 김영서, 김용근, 김화식, 노선경, 노원찬, 박석훈, 박재헌, 방승현, 오능조, 유기준, 이경호, 임찬규, 조익준. 주기원, 주요섭, 최병무, 최진, 한승곤, 한창선, 황보영주, 황세청, 황찬영
* 대통령 표창 : 곽권응, 김만진, 김병두, 김창화, 박기복, 오한길, 이양식, 이영휘, 한준겸
* 미포상자 : 김영서, 박종은, 김사현, 김창준, 김근식 등

이 분들의 애국심, 희생정신, 기독교정신을 기리며 기미년 3.1운동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이 비를 건립합니다.
2019. 12. 1 이승희
분야별 숭실중 출신 인물
* 사회 지도자 : 조응천, 장리욱 김명선, 김선식, 유기천, 황성수, 장문화, 문익환
* 종교 지도자 : 임종선, 정일선, 김인준, 이성휘, 변성옥, 김화식, 배민수. 기주복, 김영환, 길진경, 강태국, 명신홍, 김철훈, 안광국, 김정준 이동진, 정대위
* 음악인 : 김인식, 김형준, 김영환, 김세형, 박태현, 조순천, 전봉초, 안익태
* 미술인 : 김원, 윤중식, 박고석
* 문학인 : 주요섭, 박영준, 김현승, 김조규, 황순원, 김종문, 김형석, 김종삼
* 체육인 : 이병학, 김영근

숭실중 출신 독립 유공 포상자
* 대한민국장 : 조만식
* 대통령장 : 김익상, 편강렬
* 독립장 : 김강, 김예진 김정련, 김태연, 백기환, 선우혁, 손정도, 안세환, 오운홍, 윤동주, 이승길, 임이걸, 장일환, 정찬조, 조병옥, 차리석, 최수봉, 홍성익
* 애국장 : 강봉우, 곽임대, 김희백, 박휘병, 이상조. 장신국, 정태희, 조봉호, 최광옥, 한도원
* 애족장 : 길진형, 김대엽, 김두찬, 김두화, 김선두, 김승은, 김영서, 김용근, 김화식, 노선경, 노원찬, 박석훈, 박재헌, 방승현, 오능조, 유기준, 이경호, 임찬규, 조익준. 주기원, 주요섭, 최병무, 최진, 한승곤, 한창선, 황보영주, 황세청, 황찬영
* 대통령 표창 : 곽권응, 김만진, 김병두, 김창화, 박기복, 오한길, 이양식, 이영휘, 한준겸
* 미포상자 : 김영서, 박종은, 김사현, 김창준, 김근식 등
분야별 숭실중 출신 인물
* 사회 지도자 : 조응천, 장리욱 김명선, 김선식, 유기천, 황성수, 장문화, 문익환
* 종교 지도자 : 임종선, 정일선, 김인준, 이성휘, 변성옥, 김화식, 배민수. 기주복, 김영환, 길진경, 강태국, 명신홍, 김철훈, 안광국, 김정준 이동진, 정대위
* 음악인 : 김인식, 김형준, 김영환, 김세형, 박태현, 조순천, 전봉초, 안익태
* 미술인 : 김원, 윤중식, 박고석
* 문학인 : 주요섭, 박영준, 김현승, 김조규, 황순원, 김종문, 김형석, 김종삼
* 체육인 : 이병학, 김영근
숭실중 출신 독립 유공 포상자

* 대한민국장 : 조만식
* 대통령장 : 김익상, 편강렬
* 독립장 : 김강, 김예진 김정련, 김태연, 백기환, 선우혁, 손정도, 안세환, 오운홍, 윤동주, 이승길, 임이걸, 장일환, 정찬조, 조병옥, 차리석, 최수봉, 홍성익
* 애국장 : 강봉우, 곽임대, 김희백, 박휘병, 이상조. 장신국, 정태희, 조봉호, 최광옥, 한도원
* 애족장 : 길진형, 김대엽, 김두찬, 김두화, 김선두, 김승은, 김영서, 김용근, 김화식, 노선경, 노원찬, 박석훈, 박재헌, 방승현, 오능조, 유기준, 이경호, 임찬규, 조익준. 주기원, 주요섭, 최병무, 최진, 한승곤, 한창선, 황보영주, 황세청, 황찬영
* 대통령 표창 : 곽권응, 김만진, 김병두, 김창화, 박기복, 오한길, 이양식, 이영휘, 한준겸
* 미포상자 : 김영서, 박종은, 김사현, 김창준, 김근식 등
이 분들의 애국심, 희생정신, 기독교정신을 기리며 기미년 3.1운동 상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이 비를 건립합니다.
2019. 12. 1 이승희
숭실중 출신 독립 유공자 내역
숭실중 출신 독립 유공자 내역

1. 을사조약 반대투쟁
김영서, 이승길 등 12명은 서울에 올라와 200명의 동지를 모아 대한문 앞에서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전개하였다.
2. 신민회 활동
길진형, 김두화, 최광옥 등이 중심이 되어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에 주력하였다.
3. 105인 사건
일제는 기독교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1911년 테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을 날조하여 기독교 600명 중 105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강봉우, 곽임대, 길진형, 김두화, 선우혁, 안세환, 이승길, 차이석, 편강렬, 홍성익 등이 해당한다.
4. 조선국민회, 광복회 활동
3.1운동 이전, 최대 비밀결사체인 조선국민회는 숭실 출신들이 주축이 되었다. 1918년 일본에 체포된 김병두, 노선경, 임이걸, 장일환 등이 해당한다.
5. 3.1독립만세운동
숭실 출신으로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원은 현재까지 114명으로 파악되며,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114명 중 51명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으며, 안세환은 3.1운동을 기획, 주도한 민족대표 48인에 포함되었다. 그 외에도 곽권응, 강봉우, 박재현, 오능조, 유기준, 홍성익 등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숭실중 출신 독립 유공자 내역

1. 을사조약 반대투쟁
김영서, 이승길 등 12명은 서울에 올라와 200명의 동지를 모아 대한문 앞에서 을사조약 무효투쟁을 전개하였다.
2. 신민회 활동
길진형, 김두화, 최광옥 등이 중심이 되어 국외 독립군 기지 건설운동에 주력하였다.
3. 105인 사건
일제는 기독교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1911년 테라우치 총독 암살미수 사건을 날조하여 기독교 600명 중 105인에게 실형을 선고하였다. 강봉우, 곽임대, 길진형, 김두화, 선우혁, 안세환, 이승길, 차이석, 편강렬, 홍성익 등이 해당한다.
4. 조선국민회, 광복회 활동
3.1운동 이전, 최대 비밀결사체인 조선국민회는 숭실 출신들이 주축이 되었다. 1918년 일본에 체포된 김병두, 노선경, 임이걸, 장일환 등이 해당한다.
5. 3.1독립만세운동
숭실 출신으로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원은 현재까지 114명으로 파악되며, 그들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을 이끌었다. 114명 중 51명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되었으며, 안세환은 3.1운동을 기획, 주도한 민족대표 48인에 포함되었다. 그 외에도 곽권응, 강봉우, 박재현, 오능조, 유기준, 홍성익 등이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6. 대한민국 임시 정부 활동
손정도는 임시의정원 의장을, 차리석은 국무위원을, 홍성익은 교통부 안동사무국장을, 박재헌은 임시정부 특파원을 역임하였다. 유기준, 장신국은 서기를, 선우혁은 교통부 차장을, 이승길은 지방 선전대 활동을 담당하였다.
7. 광주 학생 운동, 평양 학생 만세 운동
1929년 12월부터 광주에서 전개된 학생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숭실을 중심으로 전개된 평양 학생운동은 1930년 1월에 절정에 달하였다. 조만식, 조병옥 등이 이에 포상을 받았고, 평양 학생 만세 운동으로 검거된 173명 중 숭실 출신이 107명에 달하였다.
8. 항일 무장 투쟁 활동
김두찬은 일본 제련소 용광로 폭파를 시도하였고, 김익상은 조선총독부 사이코 마코토에 폭탄을 투척하였고, 김정련은 중국에서 대한독립군 공명단 활동을 하였으며, 김예진은 상해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일제는 숭실학교를 '배일(排日)운동의 본거지이자 온상으로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소굴'이라고 표현했다 한다.
* 출처 : 숭실학교, 보훈처
해방촌 숭실학교 터 이야기
평양에서 개교한 숭실학교는 1950~70년대 이곳 해방촌에 터를 잡았습니다. 여러분의 눈앞에 펼쳐진 부지 일대가 당시 숭실학교가 위치한 곳입니다. 숭실학교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로 강제 폐교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숭실학교가 남하하여 자리잡은 이 터는 일제강점기 경성호국신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일제가 신사가 있던 아픔의 장소에 신사참배를 거부한 학교가 터 잡아 교육의 산실로 거듭났던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사연을 간직한 이곳에서, 여러분에게 해방촌 숭실학교 터 이야기와 숭실학교가 배출한 인물들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