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 집(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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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1
탐방로그
심우장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승려,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과 관련된 한옥으로 시도기념물로서 201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33년, 김벽산(金碧山)이 초당을 지으려고 사둔 땅을 기증받아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사장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 이 곳에서 1934년 첫 장편소설인 『흑풍(黑風)』을 집필하여 『조선일보』에 연재하기도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위치하던 남쪽을 등진 곳을 택하여 북향의 집을 짓고 심우장(尋牛莊)이라고 하였다. 총 112.99평의 대지 위에 17.8평의 건평규모로 단층 팔작 기와지붕이다. 집의 구조는 정면 4간 측면 2간으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좌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이다. 우측 서재로 쓰던 우측 방에는 尋牛莊(심우장)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한용운은 만해(萬海)라는 호(號) 외에 필명으로 오세인(五歲人), 성북학인(城北學人), 목부(牧夫), 실우(失牛) 등의 이름을 가끔 썼는데 목부란 ‘소를 키운다’는 뜻으로, 곧 내 마음 속의 소를 키움은 왕생의 길을 멈출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하겠다. 즉, 심우장이란 불교의 무상대도(無常大道)를 깨우치기 위해 공부하는 집, 공부하는 인생을 의미한 것이다. 201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만해 한용운 심우장 / Manhae Han Yongun Simujang
万海韩龙云寻牛庄 | 万海韓龍雲尋牛荘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7호 / 시대: 1933년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222번지 1호, 2호

이 집은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자 《님의 침묵》의 시인인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1933년부터 1944년까지 살았던 곳이다. 동쪽으로 난 대문을 들어가면 북쪽으로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과 양옥의 관리사 그리고 만해가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 등이 있다. 심우장은 전체 규모가 5칸에 불과한 작은 집으로, 이곳에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왼쪽에 온돌방, 오른쪽에 부엌이 있다. 부엌 뒤로는 식사 준비를 하는 공간인 찬마루방이 있다. 한용운의 서재였던 온돌방에는 심우장(尋牛莊)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이름은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다. 심우장이 있는 성북동 일대는 1930년대 서울이 확장되면서 주거지로 개발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여느 집과는 다르게 검소하고 소박한 구성을 보여 준다. 한용운은 조선의 불교를 개혁하려고 했던 승려이자 조국의 독립에 힘쓴 독립 운동가이며 근대 문학에 큰 업적을 남긴 시인이었다. 한용운이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그의 이 같은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심우장
시인, 대선사, 독립지사이신 만해 한용운선생께서 남향을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된다고 하여 동북향으로 지어 사시던 집이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이 유서깊은 곳에 선생의 높은 뜻을 기리고자 여기에 이글을 새긴다.
1995년 7월 1일 사단법인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황명, SBS문화재단 이사장 윤세영
만해 한용운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께서는 이 심우장에서 입적하셨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222-1 만해고택 심우장을 찾아왔다.
동네분들에게 물으니 아래쪽 나무가 크게 보이는 집이라고 알려주셨다.
尋牛莊(심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