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선열추념탑

4

주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이곳은 우리의 선열들이 조국 광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끝내 민족의 제단에 장렬히 선혈을 뿌리며 순국하신 곳이니 곧 조국수난사의 현장이요 한국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우리 민족의 기가 서린 성역이다.
이제는 자손된 우리 모두가 이성소에 모여 겨레위해 산화하신 순국선열의 얼을 되새기고 살신구국한 성업을 본받을 때이다. 그 유훈이 깃발되어 배달민족이 하나되고 대동단결하여 열강의 외압을 물리쳐 통일조국의 앞날을 기약할수 있을것이니 우리 조국이 만세반석위에서 영원 무궁할것이다.
여기 있던 서대문 형무소를 1987년 1월 15일 경기도 의왕시로 옮김에 따라 이곳을 민족정기 구현의 도장으로 보존하여 전국민의 뜻을 모아 성역화하고 원혼이 되신 순국선열을 위령하며 그 공을 추념하기 위하여 이 탑을 세우노라.
단기 4325년 8월 15일
순국선열 추념탑
순국선열추념탑
Memorial Monument to Patriotic Martyrs

건립자 : 서울특별시
관리자 : 서대문독립공원 관리사무소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순국선열추념탑은 애국지사들과 항일투사들이 가장 많이 옥고를 치른 조국수난의 현장이었던 서대문형무소를 비롯하여 우리 산하와 해외 각처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 장열히 순국하신 선열들의 얼을 되새기며 원혼을 추모하기 위하여 서울특별시에서 1992년 8월 15일에 건립하였다.
추념탑의 중앙에는 전국 14개도 전역에서 나타난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의지와 기상을 상징하고 있는 태극기를 음양각한 조각상이 높이 22.3m로 축조되어 있으며 좌우에는 길이 40m로 독립투쟁의 역사적 활동상을 형상화한 모습이 부조(浮彫)되어 있다. 좌측에는 항일의병무장상, 윤봉길. 이봉창열사 상징상, 독립군의병 순국선열 처형상, 유관순열사 만세운동상이, 우측에는 3.1독립만세상, 안중근의사 이토 히로부미 저격상, 순국선열 의병체포 처형상, 청산리 전투상이 새겨져 있다.
또한 바로 아래의 순국선열추념탑기(殉國先烈追念塔記)에는 일제의 침챡부터 조국독립을 재취하기 위한 우리 선열들의 자주독립 의지와 끊임없이 계속된 항일투쟁사가 기록되어 있다.
순국선열 추념탑
순국선열록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하여 1895년부터 1945년 8.15 광복까지 국내외에서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이어진 무장투쟁과 3.1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한 정치, 외교, 군사, 의열항쟁, 민족계몽운동과 언론, 문예투쟁, 종교계 및 학생운동 등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 전사, 형사, 피살, 절사, 옥사, 옥병사하신 순국선열은 수십만위이며 정부로부터 이미 서훈된 순국선열도 일천이백 위가 넘습니다.
나라와 겨레 위해 고귀한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을 온 겨레가 추모하고 그 높은 뜻을 받들어 애국애족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며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여기 모든 순국선열들의 방명을 수록함이 도리이나 조국의 분단에 의한 자료의 미확보로 부득이 방명을 생략키로 하였으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순국선열추념탑기
항일의병 무장상
윤봉길, 이봉창 열사 상징상
독립군, 의병 순국선열 사형상
유관순 열사 만세운동상
3.1 독립만세상
안중근 의사 이등박문 저격상
순국선열 의병 체포 처형상
청산리 전투상
순국선열추념탑기

단군 성조께서 조국을 세우신 지 반만년 이 땅에 자리잡은 우리 배달민족은 밖으로는 동방예의의 나라로 널리 칭송을 받았고 안으로는 문화민족으로서의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를 키웠으니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은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우리의 강토는 사계절이 워낙 뚜렷하고 기후 또한 순조롭기에 일찍이 여러나라들의 욕심에 의한 외침으로 편할 날이 없었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은 불굴의 투혼으로 시련을 극복하여 대대로 나라를 보전하였고 오히려 만주벌판으로 웅비한 때도 있었으며 우리의 선진문물을 이웃나라에 전달하여 교화에 성의를 다하였다.
저 한족이나 북방족의 침빙비 아무리 질풍같아도 몽매한 왜적의 침빙이 아무리 야수같아도 무수한 백성들의 희생위에 조국은 지켜졌으니 곧 우리의 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의 역사요 국난극복의 역사였다.
일본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리에게 어느 이웃나라보다도 많은 은혜를 입었건만 근대사의 여명기에 서양문물을 일찍 접하였다고 홀연히 배신하여 은혜를 원수로 갚으니 뜻밖의 일이라 실로 놀라고 분할 뿐이었다. 병자 수호 조약 이래 온갖 억지와 강압으로 침략의 마수를 뻗치더니 급기야 조국을 강탈하여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반만년의 왕업이 이로써 무너지니 떨리는 치욕에 그 원한이 하늘에 사무쳤다. 이로 인해 왜인들은 우리민족에게 내선일체를 강요하며 모든 정치결사에 족쇄를 채우고 언론에 재갈을 무리는가 하면 격양가 울려처지던 들녘을 빼았고 모른 생산을 현장에서 착취한것도 부족하여 남녀구분없이 저들의 침략전쟁에 제물로 동원시키니 그 분하고 억울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선열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일신의 영달과 현실의 안주는 초개같이 버리고 혈육과 고향을 등진채 오로지 조국광복을 위해 형극의 길로 나섰다. 나라없는 설움에 눈물을 삼키고 갖은 고생을 참고 이기며 잃어버린 조국을 절규했으니 해외에서는 신천지를 개척하여 한얼을 심고 세계 공론에 조국의 독립을 호소하면서 각종 결사와 대한민국임시정부활동으로써 일제를 배격하였고 국내에서는 지하비밀결사와 평화적시위운동으로 일제에 저항했으니 이같은 독립운동은 청사에 길이 빛날것이다. 국내외에서 배양된 자주독립의 역량은 대일항거에 여러 형태로 발휘되었으니 곳곳의 의병운동과 항일독립전쟁이 그것이요. 때때로 원흉저격의거와 민족착취기관에 대한 습격의거며 삼일운동과 육십만세운동등 거족적인 만세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그뿐이야 노동자와 농민은 산업전선에서 지식인과 학생은 국민계몽운동에서 각계 각인은 저마다의 분야에서 조국을 되살리려 목숨을 걸었다.
일제 침략부터 광복의 그날까지 우리의 선열들이 오직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한 정당한 주장과 합리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투쟁하자 일제는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아무 죄없는 남녀노소까지 특수범죄자로 분류하여 극악한 고문과 무도한 만행으로 처참하게 학살하였다.
현장에는 살인이 그치지 않았고 왜경의 칼날에 선열의 머라가 나뒹굴고 잘려진 팔다리가 흩어져서 꿈틀거렸으니 저들의 천인공노할 만행은 우리 민족의 골수에 사무쳤다. 일제는 우리민족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전국의 형무소를 늘리고 시설을 확충하였다.
이곳에 끌려온 우리 선열들은 인간으로서의 인륜적 보호는 그만두고라도 햇빛마저 없는 감방에서 영양실조와 뭇매질로 죽어갔으며 연약한 여아까지도 여사 지하감방에서 고문당하였으니 어느덧 "류관순굴"이라는 별칭이 남았다.
절명의 순간까지도 일제에 저항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 함성과 비명이 아직도 지하에 쟁쟁하리라.
저들이 우리의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면 할수록 그 수가 증가하니 조선총독은 형무소소장회의를 빈번히 소집하여 더욱 가옥한 탄압과 내선일체의 전향교육을 지시하였으며 빈발하는 옥중의거를 철처한 탄압으로 사전예방하라 하였으니 이 같이 모진행위로 전국의 형무소에서 죄없는 선열들이 무수하게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순국선열들이시여! 님들은 비록 가셨어도 혼은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셨고 일경의 만행들을 동자에 담은 채 눈을 감으셨어도 숭고한 뜻은 겨례와 함께 길이 빛날 것이며 님들께서 보이신 조국에 대한 붉은 마음은 우리의 힘으로 남았으니 님들이 피로 얻은 조국은 우리들 후손이 지키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