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150-1
- 탐방로그
- 서울 도봉구 쌍문동 150-1 정의여자고등학교에 독립유공자 윤기안 선생의 흉상을 찾아왔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오직 겨레 위한 큰 뜻 하나로 일제 식민통치의 짙은 어둠을 쫓고자 3.1운동의 횃불을 들었고 강요하는 창씨개명을 거부하였으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민족의 역사를 빛내고져 정의 성실 봉사의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재단을 세웠으니 인생 칠순에 세운 삼산학원이어라! 자기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는 어떤 몸짓도 하지 않으신 님! 우리는 그 정신에 꽃을 심고 수를 놓는다.
설립자 윤기안 선생 약력
1899. 11. 9. 평북 박천군 덕안면 사륙동 388번지에서 출생.
1918. 11. 평남 선수예수학교, 대흥학교 및 평북 덕명학교 교사
1919. 3. 1. 3.1운동 주도, 일본군 보안법 및 일장기 말살죄로 복역
1919. 5. 평양형무소에 수감,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
1920. 4.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감
1945. 8. 평북 박천군 덕안면 덕안중학교 설립
1953. 8. 동아일보 용산 제일 보급소 경영
1970. 6. 12. 학교법인 삼산학원 설립(정의유치원, 한신국민학교, 정의여자중고등학교)
1982. 12. 15. 국민훈장 동백장 서훈
1983. 8. 31. 대통령 표창(자주독립운동 헌신)
1986. 10. 14. 국가유공자기장 수여
1990. 1. 26. 서거(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1899. 11. 9. 평북 박천군 덕안면 사륙동 388번지에서 출생.
1918. 11. 평남 선수예수학교, 대흥학교 및 평북 덕명학교 교사
1919. 3. 1. 3.1운동 주도, 일본군 보안법 및 일장기 말살죄로 복역
1919. 5. 평양형무소에 수감, 서대문 형무소로 이감
1920. 4. 서대문 형무소에서 출감
1945. 8. 평북 박천군 덕안면 덕안중학교 설립
1953. 8. 동아일보 용산 제일 보급소 경영
1970. 6. 12. 학교법인 삼산학원 설립(정의유치원, 한신국민학교, 정의여자중고등학교)
1982. 12. 15. 국민훈장 동백장 서훈
1983. 8. 31. 대통령 표창(자주독립운동 헌신)
1986. 10. 14. 국가유공자기장 수여
1990. 1. 26. 서거(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
서울 도봉구 쌍문동 150-1 정의여자고등학교
독립유공자 윤기안 선생의 흉상을 찾아왔다.
독립유공자 윤기안 선생 상 Statue of Patrit Yoon Gi-An
관리번호 11-1-12 / 관리자: 정의여자 고등학교 / 소재지: 도봉구 쌍문동 150-1 (정의여고 교정내) / 규모 : 부지 33m
윤기안(1899.11.9 ~ 1990.1.26)은 평안북도 박천 사람이다. 1919년 3월 4일 대동군 율리면 무진리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이곳의 기독교 학교의 교사로서, 이날 동료 교사·학생·주민들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관리번호 11-1-12 / 관리자: 정의여자 고등학교 / 소재지: 도봉구 쌍문동 150-1 (정의여고 교정내) / 규모 : 부지 33m
윤기안(1899.11.9 ~ 1990.1.26)은 평안북도 박천 사람이다. 1919년 3월 4일 대동군 율리면 무진리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이곳의 기독교 학교의 교사로서, 이날 동료 교사·학생·주민들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設立者 尹基安 先生 像(설립자 윤기안 선생 상)
관리번호 11-1-12 / 관리자: 정의여자 고등학교 / 소재지: 도봉구 쌍문동 150-1 (정의여고 교정내) / 규모 : 부지 33m
윤기안(1899.11.9 ~ 1990.1.26)은 평안북도 박천 사람이다. 1919년 3월 4일 대동군 율리면 무진리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이곳의 기독교 학교의 교사로서, 이날 동료 교사·학생·주민들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관리번호 11-1-12 / 관리자: 정의여자 고등학교 / 소재지: 도봉구 쌍문동 150-1 (정의여고 교정내) / 규모 : 부지 33m
윤기안(1899.11.9 ~ 1990.1.26)은 평안북도 박천 사람이다. 1919년 3월 4일 대동군 율리면 무진리의 독립만세 시위를 주동하였다. 그는 당시 이곳의 기독교 학교의 교사로서, 이날 동료 교사·학생·주민들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주동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어 1990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