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공원

4

주소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270-3
탐방로그
"2.8 공원"은 "2.8 독립 선언"에서 유래했다. 1919년 2월 8일 일제강점기 동경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남녀 학생들이 조선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한 사건이 "2.8 독립 선언"이다. 이 선언은 도쿄 조선청년독립단이 주도했다. 최팔용, 윤창석, 김도연, 이종근, 이광수, 송계백, 김철수, 최근우, 백관수, 김상덕, 서춘 등이 독립단 대표를 맡았는데, 이 중 한 사람인 유학생 김도연이 바로 이 곳 출신이다. 그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억하며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공원 이름이 "2.8 공원"으로 붙여졌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상산 김도연 박사 동상
상산 김도연 박사 동상
상산 김도연 박사 약력
상산 김도연 박사 약력
김도연(金度演) 박사 아호 상산(常山) 관향은 영천 구한말 1894년 6월 16일 경기도 양천군 남산면 염창리 현 서울 강서구 염창동 증미마을에서 출생 7세부터 종조부 께 천자문, 동몽선습 계몽편을 배우고 10세부터는 등촌동 허씨댁 서당에서 금근행 선생께 통감, 소학, 대학, 맹자, 사율작문 등 유학을 공부하다 14세에 관례 왜란고 호란을 거치면서 극도로 피폐해진 국세가 조선성릭학을 바탕으로 영정조시대에는 진경문화로 꽃을 피우더니 민중은 동학에서 돌파구를 찾으려 하였으나 이미 서세동점의 광풍이 우리나라에도 포함과 총검으로 몰아치니 청일전쟁 노일전쟁에서 신승한 왜구에게 주권을 도적맞고 말았다. 시대변천에 맞추어 새로운 학문을 배우려고 서울에 유학하니 15세에 아현동 태극학교 2학년에 입학하여 4학년 졸업하고 보성중학에 입학 2학년 수료하다. 16세에 혼인 대학에 진학하고자 부천 허락을 받지 못한 채 1913년 10월 중순 일본 유학을 감행하여 유학생 감독부에 머물며 일어를 배우는 동시에 정칙영어학교에 등록 영어 수학을 공부하여 금성중학 3학년에 편입하다. 부친께서는 오히려 칭찬하시며 넉넉히 뒷바라지하시다. 금성중학교 5학년 졸업 경응대학교에 진학 이재학부 본과 수료 망국한 십수년 1919년 2월 8일 상산은 적도 동경에서 조선유학생 5백여인과 회동하여 조선청년독립단 이름으로 독립선언문과 결의문을 반포하여 본토의 3.1운동을 촉발하였고 일본 동경에서 15개월여 옥고에 개의치않고 조선혼 수호에 앞장섰으나 불령선인이 되어 더이상 일본에서 공부가 어려워져 감리교회 웰치 감독 소개로 1922년 6월 미국으로 출발하여 오하이오주 웨시실렌대학을 졸업 1927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교 경제과 석사 1931년 미국 워신턴 아메리카대학 경제학 박사 받았다. 뉴욕 체류시에는 대동단결 임정지지를 목적으로 삼일신문 창간 1926년까지 2년간 속간하여 민족투쟁하시다. 1932년 8월 27일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 출강 경제학을 가르치다 2년 뒤 학계 떠나 조선흥업주식회사 경영에 참여하다. 1942년 12월 28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피의 옥살이 거주제한 해제 7개월 만에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음 정계에 몸을 던져 1945년 한국민주당 충무 피선 이후 초대 재무부장관 국회의원 제헌 3~7대 역임 1967년 7월 19일 장서하니 사회장으로 영결하였다. 생전에 대통령표창 애국지사 사후에 국민훈장 무궁화장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하시다. 巴甫 丁奎昇 記
사귀정직 事貴正直 2004년 6월 16일 유묵비 세움
정부발행 施政月報(시정월보) 제3호에 재무부장관 휘호로 게재된 것을 족자로 재구성하여 새겼으니 상산이 남긴 필적을 흠모함이다. 상산은 서당에서 동몽선습 소학을 배우며 익히 도리 사귀(事貴)에 정직(正直)을 합하여 신생국 대한민국의 공무원 특히 국고를 담당하는 재무부 장관으로서 소회를 밝힌 것으로 청백리의 귀감이라. 巴甫 記
관향은 영천 김씨
'事貴正直(사귀정직)'
: 일을 대함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은 정직함이다
상산 김도연 박사 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