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형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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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106-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서울 강북구 우이동 106-1 몽양 여운형 선생의 묘를 찾아왔다.
夢陽 呂運亨 先生 之墓(몽양 여운형 선생 지묘)
夢陽 呂運亨 先生 之墓(몽양 여운형 선생 지묘)
겨레의 빛나는 지도자이신 선생은 우리의 민족과 조국을 사랑하시고 나아가서는 세계의 근로대중과 만인을 사랑하고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도 미워하지 않는 가장 훌륭한 인간적 덕성을 가지신 애국지이시며 진보적 민족주의자이시였다. 선생은 서기 1886년 음4월 입이일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서 임진왜란후 최초의 순호사로 일본에 갔던 여우길의 10대손인 천현과 임진왜란때 일등공신 오성부원군 백사 이항복의 11대손녀인 이씨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나 한문을 배우셨고 신학문에 뜻을 두시고 배재학당과 흥화학교에서 공부를 하시던중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단연운동 국채갚기운동을 하시며 1907년에 광동학교를 세우시고 교장이 되시었으며 양친의 3년상을 마치신후 조상의 신주를 매장하고 노비를 해방하는등 봉건제도에 대한 사회혁명의 봉화를 들었으며 다음해 강릉속초의숙의 교사로 계시다 서간도에 있는 신흥무관학교를 돌아보시고 서북간도각지를 순방하시면서 조국광복의 웅지를 펴보고자 결심하시고 중국남동금릉대학에 입학 장래의 큰뜻을 펴 기초를 닦기시작하셨다. 1918년 상해에서 신한청년당을 조직 당수에 취임하시여 우리민족 광복운동의 거보를 출발시키셨다. 1919년 1월 구사 김규식박사를 파리강화회의에 신한천년당
대표로 파견하여 한국의 완전독립을 요구케하였고 이해 3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조국광복의 역사적 임무수행을 하시고 5월에는 친제 여운홍을 파리강화회의에 파견하여 한국대표단과 함께 조국독립획득을 위한 최대한의 활동을 전개케 하셨다. 이해 12월에 일본정부 초청으로 동경에 가셨으며 동경제국호텔에서 한국독립을 주장한 연설로 인해 일본조야에 비상한 물의를 일으켰음은 물론 전세계를 놀라게 하였으며 동경대학 吉野作造교수가 박도하는 신인연설에서 吉野作造교수의 선창으로 한국독립만세를 불러 큰 파문을 던졌다.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원동피압박민족 대표자대회에 참석하여 5인의장단의 한사람으로 피선되시었으며 레-닌 트로쯔기등과 회견하고 이 대회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독립운동의 원조와 지대를 호소하셨다. 모스크바에서 돌아온 선생은 상해에서 한중호조사를 조직 한국의 독립과 중국혁명의 성공을 위해 한중이 유기적 유대를 맺고 광동정부의 손문과 한국의 독립과 아시아 피압박민족의 해방문제에 대해 직격하게 토의를 하시고 노병회를 조직하셨다. 1924년 선생은 중국국민당에 입당하시고 한중간의 상호협력을 위해서 국민혁명군을 돕기위한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셨다. 1929년 상해복조대학 축구팀을 인솔하고 동남아각지를 순회하시면서 미영등의 식민정책을 성토하는 강연을 하셨다. 동년 상해공설운동장에서 일본결찰에 체포되어 본국으로 압송 1930년 경성지방법원에서 3년징역형을 언도받고 1932년 초선체육회장에 취임하셨다. 1936년 베르린올림픽대회 손기정선수의 일장기 말살사건으로 중앙일보가 폐간되어 사장직을 물러나셨다. 1939년부터 일본 동경에 단유하시면서 세계정세를 살피시며 한국유학생들을 규합하여 해방될 조국의 인재양성을 위해 활동을 하시다 1942년 12월 구긱도중 일본헌병대에게 체포되어 재차 투옥당하시고 1944년 7월에 출옥하셨다. 출옥을 하시자 이해 8월에는 건국동맹 농민동맹등 지하조직을 하고 가까워오는 해방에 대비하셨다. 1945년 선생이 60세시 8.15민족해방을 맞이하여 민족통일국가건설을 위하여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시고 위원장에 취임하셨으며 10월에는 인민당을 조직하시고 당수에 취임하셨다.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선포 1946년 민주주의 민족전선의장단에 추대되셨다. 그리고 노동인민
당수에 취임하시고 김규식박사와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여 통일민족국가건설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셨다. 1847년 7월 19일 정오 서울 혜화동로타리에서 선생을 시기하는 간악한 무리들의 흉계로 흉한의 저격을 받고 62세세를 일리로 위대한 애국자로서의 파란많은 생애를 마치시니 오호라 우리민족은 지도자를 잃었고 통일민족국가건설은 어두움에 쌓이고 말었다. 그러나 선생은 인간세계를 하직하시면서 우리겨레와 인류를 축복하고 계실것이다. 또한 우리들의 가슴에 새긴 선생의 뜻과 정신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