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부산광역시 영도구 동삼동 산29-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해기사 명예의 전당
小愴 申性模(소창 신성모) 흉상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小愴 申性模(소창 신성모)
소창 신성모는 1891년 5월 26일 경남 의령 출생,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강점기에 러시아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독립자금은 전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뒤 영국으로 유학하여 런던항해학교를 졸업하고 선장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최고의 명예인 대영제국의 Exstra-Master자격을 취득하였다. 해방후 귀국 내무장관, 국방장관 겸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하였고 퇴임후 대통령 자문기구인 해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평화선 선포, 해양경찰대 창설, 해무청 설치 등에 기여하였다. 1956년 한국해양대학 제8대 학장에 취임하여 해군 예비원령 제정시행, 실습실 반도호 확보 등 해양한국 건설의 초석을 닦았다. 1960년 5월 29일 작고,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다. 정부는 자주독립과 국가발전등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소창 신성모는 1891년 5월 26일 경남 의령 출생,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강점기에 러시아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독립자금은 전달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뒤 영국으로 유학하여 런던항해학교를 졸업하고 선장으로 발군의 실력을 발휘, 최고의 명예인 대영제국의 Exstra-Master자격을 취득하였다. 해방후 귀국 내무장관, 국방장관 겸 국무총리 서리를 역임하였고 퇴임후 대통령 자문기구인 해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평화선 선포, 해양경찰대 창설, 해무청 설치 등에 기여하였다. 1956년 한국해양대학 제8대 학장에 취임하여 해군 예비원령 제정시행, 실습실 반도호 확보 등 해양한국 건설의 초석을 닦았다. 1960년 5월 29일 작고,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하고 있다. 정부는 자주독립과 국가발전등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부산 영도구 동삼동 산 29-1 태종대공원 내 영도등대 해기사 명예의전당에 건립된 애국지사 소창 신성모 흉상 등을 찾기 위해 왔다.
입구에서 전망대까지 1.7Km라고 되어 있었다.
태종대 전망대가 보였다.
태종대 전망대를 지나서 영도등대가 있는 곳에 해기사 명예의 전당이 있었다.
바다의 혼
'해기사 명예의 전당' 조형물은 우리 겨례의 유구한 해양의 역사를 지키고 조국과 민족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상징으로서 해기사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구상한 작품이다.
주 조형물은 '해기사 명예의 전당' 중앙에 커다란 원형의 키를 바닥 형태로 하여 그 위에 닻의 형상을 조형물로 상징화 하였으며, 닻의 아래 보습 부분은 바이킹선과 판옥선의 이미지를 해학적으로 조형화 하였다.
주 조형물의 오른쪽으로 두 계단을 오르면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인물의 흉상과 업적을 알 수 있는 명예의 공간으로 해양 역사와 교육의 장소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해기사 명예의 전당' 조형물은 우리 겨례의 유구한 해양의 역사를 지키고 조국과 민족을 보호하는 수호자의 상징으로서 해기사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구상한 작품이다.
주 조형물은 '해기사 명예의 전당' 중앙에 커다란 원형의 키를 바닥 형태로 하여 그 위에 닻의 형상을 조형물로 상징화 하였으며, 닻의 아래 보습 부분은 바이킹선과 판옥선의 이미지를 해학적으로 조형화 하였다.
주 조형물의 오른쪽으로 두 계단을 오르면 '해기사 명예의 전당'에 헌정된 인물의 흉상과 업적을 알 수 있는 명예의 공간으로 해양 역사와 교육의 장소로서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