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포만세역사 테마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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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1153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박도백 당28세 농업 김해군 대지면 출두리, 임봉래 당30세 구포면 서기 동래군 구포면 화명리, 도우황 당29세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윤장수 당25세 필묵상 동래군 구포면 화명리, 노원필 당45세 노동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강석이 당55세 노동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윤경봉 당23세 농업 돌래군 구포면 대리, 백인봉 당32세 농업, 동래군 사상면 삼락동
최종호 당31세 곡물상, 돌래군 구포면 구포리, 윤대근 당23세 인부 동래군 구포면 덕천리, 노원길 당30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유진영 당24세 점원 청도군 대성면 고수리, 최한봉 당37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박용수 당32세 농업 김해군 대저면 소덕리, 윤정은 당68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대리
정태호 당30세 의생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진유관 당30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금성리, 김용이 당30세 직공 부산부 초량동 3통 10호, 김윤경 당30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변봉엽 당26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금성리, 안화중 당38세 면사무소 소사, 동래군 구포면 금곡리
허정 당26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강두조 당20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박석오 당20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금성리, 신성집 당57세 노동 동래군 사상면 모라리, 조해규 당41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덕천리, 김덕원 당61세 식기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허치옥 당33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김달수 당32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권용학 당29세 노동 동래군 구포면 금곡리, 김옥겸 당27세 농업 김해군 하동면 덕산리
김영길 당30세 농업 김해군 대저면 사두리, 윤경 당31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화명리, 양태용 당21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금곡리, 손진태 당21세 곡물상 합천군 초계면 초계리
이몽석 당22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남산정, 박덕홍 당24세 미곡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허의중 당33세 곡물상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김장학 당25세 농업 김해군 대저면 덕도리, 정치호 당28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금곡리, 유기호 당30세 농업 동래군 구포면 화명리
구포장터 3.1만세운동 기소문, 1919년 8월 주동인물 42명 기소(정식기소 38명, 면소 2명, 방면 2명)
구포장터 3.1만세운동 - 1919년 3월 29일(음력 : 2월 28일, 구포장날)
▷ 발단
1919년 3월 중순 양봉근(梁奉根, 화명사람,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과 임봉래(林鳳來, 구포면 서기, 화명동 거주)가 만나 3.1독립운동 소식과 거사 종용 한 후 윤경(尹逕), 류기호(柳基護)를 만나, 3.1독립운동 소식과 거사협의하고 상경
▷ 경과
1919년 3월 27일-28일: 이수련 집에서 11명(임봉래, 윤경, 류기호, 김옥겸, 김윤길, 허정, 김용이, 최종호, 유진영, 윤대근, 이수련)이 모의, 29일 구포장날 거사키로 결정,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대한독립만세〉 현수막 등을 제작
1919년 3월 29일: 정오에 장꾼 1,000여명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김윤길 외 수명이 구포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윤영태에게 민족적 양심으로 참가 종용, 그후 주동시위자 12명 구포주재소에 구금. 3시, 성난 독립운동 시위자 1200여명은 구포주재소 공격 →부산시 급파된 군경의 발포로 9명 부상(일본 헌병 2명, 순사 2명 중상)과 41명 체포됨
구포만세길
구포만세길
구포만세길은 낙동대로 1652번에서 구포역으로 빠지는 길부터 시작하여 구포역과 구포만세 테마거리를 지나 구포시장으로 향하는 1.7km 구간의 길이다. 길 이름은 1919년 3월 구포장터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하여 지어졌다. 구석구석 구포의 옛 시간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길을 거닐며 옛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을 느껴보자.
구포만세길
구포만세길
부산 북구 구포동 305-2 구포만세길을 찾았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 재현
추진배경 : 구포장터 3.1운동 재현행사는 1989년 3.1운동 80주년을 맞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조국의 자주독립을 만방에 선포하였던 그날의 만세운동상황과 만세함성을 그대로 재현 파급함으로써 자랑스런 한민족의 긍지를 심어주고 나라사랑의 산 교육장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코자 부산지방보훈청, 부산광역시 북구가 주최하고 부산북구 낙원문화원이 주관하여 해마다 특색사업으로 추진하고 이다.
행사의 의이 : 『구포장터 의거』는 학생.종교인.유림 등이 주도한 타지역의 3.1운동과는 달리 농민,상인,노동자등 구포지역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장꾼들의 자진참여로 전개된 순수 민간주도운동으로 단순시위보다 저항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해마다 재현되는『구포장터 3.1만세운동 의거』를 통해 우리 고장엗 3.1운동에 참여한 역사가 있다는 자긍심을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심어주고 나라사랑하는 산 교육장으로 계승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 다채로운 재현 행사를 통해 어려운 재래시장의 상권회복과 활성화 등 주민화합으로 경제난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3.1만세운동 재현생사를 통해 3.1운동을 지역사회의 단합과 나라 사랑의 정신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범구민 의지를 결집하는 데 의의가 있다.
구포장터 3.1만세운동 기념비
겨레의 젖줄인 낙동강은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이 고장 사람들이 피 흘리며 항쟁했던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유유히 흘러내리고 있다. 강물 따라 뱃길을 오르내린 큰 나루터가 있었던 강변의 장터에서 지역 청년들이 주도하여 일으킨 만세운동은 천여명 장꾼들의 가슴과 가슴으로 뜨겁게 이어져, 하나같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왜경의 총칼앞에서도 맨몸으로 싸웠고, 그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독립을 주장하다가 끝내 옥살이를 해야 했던 역사적 사실은 이 고장에도 민족혼이 살아있음을 증명해주었다. 참으로 거룩하고 자랑스러운 구포장터 항일투쟁의 혈맥을 후대에 길이 물려주기 위하여 8.15광복 제50주년을 맞아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강둑 위에 3.1만세운동기념비를 세운다.
윤현진 애국지사의 입체 초상화이다.
윤현진 열사
윤현진(1892~1921)
● 신학문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떠난 일본 유학길
● 조선유학생 학우회와 신아동맹당의 핵심 인물로서 항일운동을 주도
●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재무차장을 지냈고 힘겨웠던 임시정부의 재정 상황을 회복하기 위해 힘쓴 임시정부의 살림꾼
● 독립을 위해 혼신을 다했지만 과로를 이기지 못하고 29세의 나이로 별세
구포장터 3.1만세운동 유공자
임봉래(林鳳來 1890~1968) : '68 대통령표창, '90 건국훈장 애족장 윤경봉(尹敬奉 1897~1941) : '97 건국포장
김옥겸(金玉兼 1892~1957) : '77 대통령표창, '90 건국훈장 애족장 윤장수(尹章守 1895~1958) : '95 대통령표창
윤정은(尹正殷 1852~1920) : '77 대통령표창, '90 건국훈장 애족장 양태용(梁太鎔 1893~1937) : '96 대통령표창
허치옥(許致玉 1884~1824) : '90 건국훈장 애족장 박용수(朴龍水 1887~미상) : '13 대통령표창
김달수(金達洙 1888~1924) : '90 건국훈장 애족장 권용학(權龍鶴 1891~미상) : '17 대통령표창
박도백(朴道伯 1892~1932) : '90 건국훈장 애족장 도우황(都宇黃 1891~미상) : '17 대통령표창
김학준(金學俊 1886~1829) : '17 건국훈장 애국장 백인봉(白仁鳳 1887~미상) : '17 대통령표창
손진태 애국지사의 입체 초상화이다.
손진태 열사
손진태(1900~1949 납북)
● 구포에서 자라 구포만세운동에 참여
● 주동자로 체포되어 4월의 징역을 받고 수감
● 와세다 대학에서 지도교수의 영향으로 민속학에 관삼
● 그 후 조선민속학회를 결성하여 한국사 연구에 매진
● 그의 주도로 발간된 ≪조선민속≫은 역사학의 중요한 결실
● 해방후 서울대학교 사학과 교술 임용
● 6.25발발 후 납북
구포장터 3.1만세운동 수형명부표
1919년 - 1920년 주동인물 중 26명
임봉래, 백인봉, 양태용, 인화중, 노원필, 권용학,
도우황, 이몽석, 윤장수, 윤대근, 윤경, 손진태,
박용수, 김영길, 김장학, 유진영, 최종호, 강석이,
김덕원, 김달수, 진유관, 허희중, 박덕홍, 윤경봉,
정치호, 최한봉, 박영초, 김학준
윤경 애국지사의 입체 초상화이다.
윤경 열사
윤경(1889 ~ 1977)
● 사립화명학교 출신의 양봉근과 임봉래에게 3.1운동소식을 듣고 구포지역의 의거를 당부받아 시위 주도
● 시위도중 주동자들이 구포주재소에 구금되자 주동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대치
● 구포 만세운동 이후 대천청년회를 조직하여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학교를 설립해 신문학을 가르침
임봉래 애국지사의 입체 초상화이다.
임봉래 열사
임봉래(1890 ~ 1968)
● 구포면사무소 서기였던 임봉래는 사립화명학교에서 친분을 맺은 양봉근에게 서울과 평양에서 진행된 3.1만세시위에 대해 듣고 윤경과 유기호와 함께 구포만세운동을 계획
● 구포장날을 거사일로 정하여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제작하여 시위
양봉근 애국지사의 입체 초상화이다.
양봉근 열사
양봉근(1897 ~ 1982)
●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고 고향 구포에 소식을 알리고 독립선언서를 전달하여 구포장에서 일어난 구포 만세 운동에 기여
● 울산으로 이주하여 울산의원을 개원 후 울산 의료분야와 사회운동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 임시정부 동북지부의 정치부장으로 재만 조선인들의 귀국을 돕고 연변지역의 조선족 병원이자 교육기관인 연변병원과 연변의과대학의 창립에 기여
구포장터 3.1만세운동 1919년 8월 주동인물 42명 기소(정식기소 38명, 면소 2명, 방면 2명)이 소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