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혁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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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 890-1
탐방로그
의사 박재혁 비, 어제 어린이 대공원 수변공원에서 본 동상과 같은 분이시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의사 박재혁 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40-1-23
관리자 : 부산진 초등학교장

박의사는 1895년 범일동에서 태어나서, 1911년 3월 22일 부산 진공립 보통학교(현, 부산진초등학교)를 졸업하셨다. 3·1운동 후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에 가입하여 1920년 9월 14일 부산진 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일본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대한청년의 독립의지를 유감없이 발휘하셨다. 일본 경찰에 붙잡힌 의사께서는 온갖 고문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27세를 일기로 단식 끝에 순국하셨다. 나라에서는 박의사의 애국심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하였으며, 1966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하였다. 이 비는 부산진 정공단 경내에 있던 기념비를 1981년 5월 3일 모교인 본교 개교 70주년 기념일에 이곳으로 이전 건립하였다.
義士 朴載赫 碑(의사 박재혁 비)
공은 부산인으로 유시부터 호협하였다. 어즉 조국광복의 뜻을 품고 해외에 망명하였다가 기미독립운동 후 백 이론보다 일 행동이 귀함을 말하고 단신으로 상해에서 폭탄을 가저와 일본의 침략 관문인 부산의 경찰서를 폭격하였다. 때는 경신년 9월 14일이다. 즉석에서 왜적에게 피검되어 옥중에서 신음하다가 익년 5월 12일에 절식 자진하니 공의 나이 27세라 그 충령을 표하기 위해서 이 비를 세우노라.
국기 4281년 무자 10월 일 달
다전 건립인
부산진국민학교 동창회장 강재윤
부산모선 동지회장 김참근
전 문교부장관 박찬현
부산진국민학교 육성회장 장영진
부산진 국민학교장 이환호
조국 광복을 되찾게 되자 옛 동지였던 오택 최천택 유유진 등이 정공단 경내에 건립해 두었던 이 비를 본인 등이1981년 5월 8일 의사 모교의 개교 70주년 기념 행사일에 본 교정에 옮겨 건립함
의사 박재혁 비, 어제 어린이 대공원 수변공원에서 본 동상과 같은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