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대전광역시 동구 삼괴동 664-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문국공은 신라 경순왕의 후예로 이조개국공신 계림군 곤의 19세 18대손이시고 문정공 송애 경여의 10세 9대손이시며 이곳 소룡골에서 효자문을 받으신 교관공 재만의 장증손 4세 3대손이시다. 약관의 나이에 서울에서의 학업을 중단하시고 고향인 대전에서 삼일만세운동을 기획, 지휘하시여 옥고를 치르시고 중국 상해로 망명 운남성 강무당 군관학교를 거쳐 길림성 등 만주 일대와 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광복후에는 충청 일대에 저주시를 건설하는 등 국토개발에 힘쓰셨다. 이들 공로를 기려 1983년 대통령 표창과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어 독립유공 애국지사 칭호를 받으셨다. 공의 자 문국을 취하여 2003년에 경주김씨 문국공파 종중을 열고 2014년 10월 28일 갑오 윤 9월 5일에 세천지를 이곳에 조성한다.
넷째아들 용경 근수
넷째아들 용경 근수
慶州金公 諱 正哲 之墓(경주김공 휘 정철 지묘)
慶州金公 諱 正哲 之墓(경주김공 휘 정철 지묘)
훈장증 - 고 김정철
위는 우리나라 자유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12월 26일 대통령 노태우
위는 우리나라 자유독립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바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다음 훈장을 추서함
건국훈장 애족장 1990년 12월 26일 대통령 노태우
慶州金公 諱 正哲 之墓(경주김공 휘 정철 지묘)
삼가
아버님의 성은 김씨요, 이름은 정철이시니 경주가 본관이시고 신라 왕조의 후손이시며 이조개국공신 계림군 곤의 18대손이시며 문정공 송애 경여의 9대손이십니다. 서기 1900년 음 10월 1일 장원 할아버님과 덕수이씨 할머님의 외아들로 충남 대덕군에서
아버님의 성은 김씨요, 이름은 정철이시니 경주가 본관이시고 신라 왕조의 후손이시며 이조개국공신 계림군 곤의 18대손이시며 문정공 송애 경여의 9대손이십니다. 서기 1900년 음 10월 1일 장원 할아버님과 덕수이씨 할머님의 외아들로 충남 대덕군에서
태어나셨읍니다. 어려서부터 청렴강직하셨으며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 투철하셨읍니다. 1919년 열아홉살의 약관으로 일제의 강압에 항거하여 서울에서의 학업을 중단하고 대전지방의 3.1운동을 주도하시다가 왜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시니 이 행적은 청사에 기록된 바 있읍니다.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시어 운남성 광무당 군관학교에서 학업을 계속하셨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시는 등 상해와 만주에서 조국광복을 위하여 활동하셨읍니다. 1944년 20여년 만에 환국하셨으나 있따른 재난 등으로 가난과 병고에 시달리셨읍니다. 자애와 위엄으로 저희들을 인도해 주시던 아버님은 1966년 음 2월 28일 향년 66세로 대전에서 돌아가시니 이곳 향리에 모셨읍니다. 여기 아버님 곁에 모신 어머님 은진송씨는 항상 어질고 자상하셨읍니다. 가난과 인경의 연속이였던 망명생활 중에서도 5남 4녀의 자녀를 낳아 훌륭히 키워주시다가 1944년 음 8월 22일 향년 44세로 돌아가셨읍니다. 재취하신 경주피씨 어머님과의 사이에는 1남 1녀를 생육하셨읍니다. 저희 자녀들은 애모의 추억을 되새기며 이제 짧은 글을 지어 부모님의 덕을 기릴까 합니다.
서기 1979년 4월 5일
자 순경 세경 태경 용경 만경 보경 녀 애경 혜경 복경 연경 은경
손 학구 학천 학연 학수 학범 학주 학준
손녀 학영 학춘 학지 현숙 지영 소라
자 순경 세경 태경 용경 만경 보경 녀 애경 혜경 복경 연경 은경
손 학구 학천 학연 학수 학범 학주 학준
손녀 학영 학춘 학지 현숙 지영 소라
이곳의 GPS 상의 주소는 대전 동구 삼괴동 664-1 마을 뒷산이다.
대전 동구 삼괴동 659 애국지사 김정철 묘소 안내판을 찾아가는 도중에 예상하지 않았던 묘소 안내판이 보였다.
이곳이 예상하였던 대전 동구 삼괴동 659 애국지사 김정철 묘소 안내판
신문 사진에 묘소 안내판 아래쪽의 주소 안내판까지 같이 나와서 이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신문 사진에 묘소 안내판 아래쪽의 주소 안내판까지 같이 나와서 이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마을로 들어가서 주민에게 물으니, 마을 뒤쪽에 보이는 저곳이라고 알려주신다.
한참 올라가니 멀리서는 안 보였던 안내판도 있었다.
독립유공 애국지사 김정철(1900.10.1. ~ 1966.3.19.)
대전 동구 삼괴동 654번지에서 출생한 독립유공 애국지사 김정철은 김알지의 후예요 경순왕의 후손으로 이조 개국공신 계림군의 16대손이며 송애공의 9대손이고 교관공의 종증손으로 서기 1900년에 천석군의 종갓집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문국이다. 서울에 유학하던 중인 1919년 3월 15일 경 대전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국민회보.독립신문을 약 300여 매 인쇄하여 3월 27일 오후 3시 경 대전 장날에 모인 수백명의 군중에게 배포하고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왜경에 체포돼 7월 18일 공주지방 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아 1년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김구, 김용원, 김좌진 등과 활약하다가 조직적인 군사 훈련의 필요성을 느껴 중국 운남성 강무당군관학교 입교, 1934년 길림성 중동선 해림참 소재 한인학교 교사, 1934년 북경 인쇄소 일향사 설립, 1943년 단민보를 설립하는 등 항일애국계몽운동을 다방면으로 펼쳐나갔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엿고 국토재건의 필요성을 인식, 동아토목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48년 현 천안 입장저수지를 완공하고 옥천군 군서면 명경소류지를 착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대전 동구 삼괴동 654번지에서 출생한 독립유공 애국지사 김정철은 김알지의 후예요 경순왕의 후손으로 이조 개국공신 계림군의 16대손이며 송애공의 9대손이고 교관공의 종증손으로 서기 1900년에 천석군의 종갓집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자는 문국이다. 서울에 유학하던 중인 1919년 3월 15일 경 대전지역 독립만세운동을 위해 서울에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국민회보.독립신문을 약 300여 매 인쇄하여 3월 27일 오후 3시 경 대전 장날에 모인 수백명의 군중에게 배포하고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다 왜경에 체포돼 7월 18일 공주지방 법원에서 징역형을 받아 1년 옥고를 치렀다. 출감 후 중국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의 김구, 김용원, 김좌진 등과 활약하다가 조직적인 군사 훈련의 필요성을 느껴 중국 운남성 강무당군관학교 입교, 1934년 길림성 중동선 해림참 소재 한인학교 교사, 1934년 북경 인쇄소 일향사 설립, 1943년 단민보를 설립하는 등 항일애국계몽운동을 다방면으로 펼쳐나갔다. 해방 후 귀국하여 한국독립당 창당에 참여하엿고 국토재건의 필요성을 인식, 동아토목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1948년 현 천안 입장저수지를 완공하고 옥천군 군서면 명경소류지를 착공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3년에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전까지는 길이 없었는데, 이곳부터는 나무로 만든 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경주김씨 문국공파 세천지
애국지사 김정철 가족원
애국지사 김정철 가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