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 현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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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628-23
탐방로그
대구 중구 남산동 628-23 남산교회 인근 독립유공자 현진건 현창비가 건립되어 찾았다.

이곳 저곳을 찾다가 건물 앞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간이 걸렸다.
2층 베란다에 시비가 철사줄로 묶여 있었다.

현창비를 당겨서 자세히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바꾸었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가서 촬영을 다시 하였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언론에 나와있는 현진건 생가터 추정지 안내판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현진건 현창비
<빈처><운수좋은 날><고향><신문지와 철창><적도><무영탑>등 뛰어난 사실주의 경향 작품을 써서 '한국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걸출한 민족문학가이자,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 유공자 현진건을 기려 여기 비를 세운다.
현진건 현창비
<빈처><운수좋은 날><고향><신문지와 철창><적도><무영탑>등 뛰어난 사실주의 경향 작품을 써서 '한국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걸출한 민족문학가이자,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 유공자 현진건을 기려 여기 비를 세운다.
<빈처><운수좋은 날><고향><신문지와 철창><적도><무영탑>등 뛰어난 사실주의 경향 작품을 써서 '한국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걸출한 민족문학가이자,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 유공자 현진건을 기려 여기 비를 세운다.
많은 이야기를 듣고, 언론에 나와있는 현진건 생가터 추정지 안내판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대구남산교회
백남채 장로, 김태련 장로와 김용해 성도, 이만집 목사
이 분들은 1919년 3월 8일 죽음과 투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구에서 기미년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다.
애국애족의 그 숭고한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여기에 새겨 드린다.
2014년 3월 8일
광복의 종
광복의 종
일제강점기 말엽, 잔혹한 탄압 가운데 민족의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이 태평양전쟁물자로 강제 동원되었다. 1942년, 전국 교회의 모든 철물, 심지어 교회종과 종각까지 수탈하는 극히 암울한 상화에서 대구남산교회는 사용 중인 종을 땅에 묻고 다른 헌종을 구해서 대신 내는 기지를 발휘하였다. 신앙을 지키기 위한 성도의의 지혜와 믿음의 결단은 당시 상황으로는 목숨을 건 용단이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대구 도성에서 사라졌던 교회 종소리가 묻어두었던 이 종을 꺼내어 다시 울림으로 새로이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광복 후 첫 주일인 8월 19일 아침 대구 남산교회에서 울려 퍼진 종소리는 온 대구시민과 성도들에게 광복의 벅찬 감격을 선물하였다.
그 후, 광복의 종을 녹이 슬고 금이 가고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1954년 12월 5일 성탄절을 맞이하며 현재의 종으로 교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구 중구 남산동 628-23 남산교회 인근 독립유공자 현진건 현창비가 건립되어 찾았다.
2층 베란다에 시비가 철사줄로 묶여 있었다.
앞면 <빈처><운수좋은 날><고향><신문지와 철창><적도><무영탑>등 뛰어난 사실주의 경향 작품을 써서 '한국 근대소설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걸출한 민족문학가이자,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 유공자 현진건을 기려 여기 비를 세운다.

뒷면 현창비가 쇠사슬로 감겨 있는 것은 현진건이 살았던 때가 일제강점기(독립운동기)였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반쯤 지워진 일장기를 게시해 1936년 현진건의 일장기 말소 의거를 상기시켰습니다. 비 기단에 한반도의 절반가량 지도를 배치한 것은 '현진건은 독립운동시대를 살았고, 우리는 분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현창비를 당겨서 자세히 촬영하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바꾸었다.
현진건 현창비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
시간과 장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한다.
조선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든든히 디디고 서야 한다.
현대문학인 다음에야 현대의 정신을 힘있게 호흡해야 한다.
달뜬 기염, 고지식한 개념, 수고로운 모방에서 뛰어나와 차근차근 주위를 관조하고
심장의 고동하는 소리를 들을 때 이것이야말로 우미 문학의
운명인 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1926년


뒷면 현창비가 쇠사슬로 감겨 있는 것은 현진건이 살았던 때가 일제강점기(독립운동기)였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래서 반쯤 지워진 일장기를 게시해 1936년 현진건의 일장기 말소 의거를 상기시켰다. 비 기단에 한반도의 절반가량 지도를 배치한 것은 '현진건은 독립운동시대를 살았고, 우리는 분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현진건은 독립운동시대를 살았고, 우리는 분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