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27-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여기 대구선열공원 묘지 한자락에 조국의 자주 독립을 위해 신명을 바치신 송대 장성표 애국지사가 잠들어 있다. 장지사는 1923년 음 7월 7일(7월 칠석)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에서 절강 장씨 시조 해빈 선생의 11세손이신 한무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고 있던 1940년 전후하여 중국 심양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당시 중국 침략의 상징이던 봉천신사를 소각(燒却)코자 했던 방화 미수 사건으로 옥고를 치루었고, 1944년 겨울에 일본군에게 강징된 한국 청년으로서 한국 광복군에 편입되
기전 일본군을 탈출하여 일본군에서 지독한 정보를 활용하여 탈출때 만났던 중국군 소대병력의 지원을 받아 중국공로(中國公路)를 통행 중이던 일본군 수송차량을 습격 병사 2명을 포로로 잡고 양곡 80가마 및 의료품 다량 등을 노획한 전과를 올렸다. 장지사가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1분대원으로서 중국군 제9전구 사령부에 파견되어 학전 중 용감하고 침착하여 많은 중국 군인의 모범이 되었고, 그는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품으로 제9전구 사령장관이던 설악(薛岳) 장관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을만큼 헌신적인 군인이었다. 해방 후 국내도 들어와 살면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고 민족 정기 선양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귀향하여 광복군의 전우였던 권준호와 자주 만나 해방 전 광복군이 계획했던 국내 진입작전에서 우리 함께 죽었던들 38선이 그어졌을까? 분단 오십여년이 흘러갓을까? 를 함께 추억하는 한을 씹다가 1999년 1월 12일 영면 하였다.
2000년 5월 3일 이곳에 장지사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표석을 세우다.
한국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9전구 전우 권준호 짓고 광복회 대구.경북 연합지구 광복동지회장 고령 신성구 쓰다.
2000년 5월 3일 이곳에 장지사의 거룩한 뜻을 기리는 표석을 세우다.
한국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제9전구 전우 권준호 짓고 광복회 대구.경북 연합지구 광복동지회장 고령 신성구 쓰다.
부인 김해 김계옥 자 승환 중환 동섭 호섭, 손 규주 규남 규림 규련 미령 선경 은주 하니 윤서, 녀 순례 말례, 외손 손병휘 양형석 혜경
愛國志士 松大 張星杓 之墓(애국지사 송대 장성표의 묘)
장성표(張星杓) 1924-1999 / 묘역번호 : 8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운동계열 : 광복군, 경북 의성
.안장일시 : 1999년 1월 12일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소속으로 항일운동 전개. 1940년 중국 심양의 일본군 중국침략 상징인 봉천 신사 방화. 1944년 일본군 병참수송차량 습격 군량미 및 의료용품차량 탈취로 항일전쟁 수행.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운동계열 : 광복군, 경북 의성
.안장일시 : 1999년 1월 12일
광복군 제1지대 제3구대 소속으로 항일운동 전개. 1940년 중국 심양의 일본군 중국침략 상징인 봉천 신사 방화. 1944년 일본군 병참수송차량 습격 군량미 및 의료용품차량 탈취로 항일전쟁 수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