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용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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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27-1
탐방로그
김세용 묘는 국립신암선열공원 제 5묘역에 있으며, 묘역번호는 42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公州 金公 世用 之墓(애국지사 김세용의 묘)
김세용(金世用) 1906-1966 / 묘역번호 : 42
.훈격 : 건국훈장 애국장(1990년)
.운동계열 : 광복군, 평북 용천
.안장일시 : 1966년 7월 14일
광복군 제2지대 요원으로 항일독립 전쟁에 투신하여 국내진공 위한 정진 훈련에 참여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애국지사 김세용 공은 이국만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운 광복군 출신이다. 1907년 9월 12일 생으로 공주 김씨이니 그 출신지는 이 가문이 성거하는 평북 용천의 용암으로 예조판서 의손은 중조요 5열사의 충절이 대를 이은 명문이다. 1935년 봄 큰뜻을 품고 압록강을 건넌 것이 항일투쟁의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십여성상 포연 속을 누비며 풍찬노숙하던 지사의 가슴에는 오직 구국항쟁의
일념 뿐이었다. 1940년 초에는 임시정부의 지령을 받고 섬서성(산시성) 서안으로 가서 한국청년 전지 공작대에 입대했다가 그해 9월에는 광복군으로 귀속 익년 1월에는 제5지대로 개편되었고 1942년 4월에는 제2지대 1구대로 배속되었다. 그해 10월에는 중화민국 육군 군관학교 제4회 특과총대 학원대 한청반을 수료한 후 원대로 돌아왔다가 다시 한미군사합작 OSS특수훈련반을 마치고 국내 정진을 대기 중에 고대하던 광복을 맞아 1946년 6월 그리던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조국은 양분되어 동족상잔의 상흔을 안고 멀리 북녁 하늘을 바라보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다가 1966년 7월 12일 5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배는 탐진 최씨로 복연이니 공에게는 아내요 동지였으며 자에는 상남이 있고 손에 민석이 있다.
1977년에 국가는 공의 공적을 기리어 건국포장을 추서하고 선열묘지에 모셔서 이 비를 세우다.
1986년 10월 일 오천 정희영 글을 짓고 달성 서석준 글씨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