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술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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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신암동 산27-1
탐방로그
김헌술 묘는 국립신암선열공원 제 3묘역에 있으며, 묘역번호는 26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愛國志士 雲巖 慶州 金憲述 之墓(애국지사 운암 김헌술의 묘)
김헌술(金憲述) 1924-1988 / 묘역번호 : 26
.훈격 :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운동계열 : 일본 방면, 경북 영일
.안장일시 : 1988년 3월 9일
1940년 일본 경도중학교 재학 중 항일단체 民心會(민심회) 창립, 백지동맹 등 저항운동과 징병제도 반대, 일제침략전쟁 부당성과 식민통치 부당성 폭로로 민족의식 고양, 1942년 일경에 체포, 일본 경도 복강형무소에서 징역 1년 6개월 옥고를 치렀다.
공의 휘는 헌술 호는 운암 성은 김씨이고 본관은 경주이다. 1924년 5월 24일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 용기동 410번지에서 신라 경순왕의 37세손 석초 김상화의 독자 김수준 공의 장자로 출생. 향리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단신 도일 1939년 일본 국경도 중학교에 입학 약소민족을 강압하는 일제의 횡포에 의분을 느껴서 경도에 거류하는 동포 학우들을 핵심으로 독서회를 조직하고 항일의식을 배양함. 같은 해에 경도 중학교 재학 중인 동포 학우들을 기간으로 민심회를 창립 백지동맹 동맹휴학 등의 저항
활동을 전개하여 민족 차별이 심한 일본 교사들을 추방하는 등 항일활동의 선봉이 됨. 1940년 민심회의 총책으로서 동포 학우들의 독서회를 20개 조직으로 확대하고 총 경도 유학생회로 발전적인 개편을 단행 이 회가 후일 전일본 조선 유학생들의 구심체가 됨. 1941년 반전 일본인 학생들과 연합하여 경도 제국 대학 독서회 사건의 도화선을 만들고 동아 연맹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강연회를 수차례 개최하여 일본 군국주의의 허위성을 갈파하고 침략전쟁의 부당성을 고취함. 1942년 일제의 검거가 심화되자 구주 지방의 탄광지대로 변신하여 조선인 광부들에게 항일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지하조직을 통해 일본으로 잠입한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 은신처의 주선 활동비의 지원 등 헌신적 투쟁을 계속함. 1942년 10월 8일 경도 중학생 근로 봉사 불참 운동 및 일본 천황의 비존엄성과 불경심을 역설하던 중에 일경에 피검. 압수된 서신 일기 기타 문서 등을 물증으로 일본 특별 고등경찰의 가혹한 고문을 받아 치안유지법 위반 및 불경죄란 형명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언도받고 경도 형무소에서 복역 중 1943년 7월 11일 복강형무소로 이감되어 1944년 9월 16일 만기 출옥함. 해방 후 교육계에 투신하여 육영에 전념. 1960년 안동 김기형 공의 2녀 정환과 혼인하여 1남 2녀를 생육함. 1977년 12월 13일 조국의 자주독립과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애국지사로서 대통령 포상을 받음. 1988년 3월 16일 숙환으로 자택에서 향년 63
세를 일기로 별세. 고인의 나라사랑 겨레사랑의 높은 뜻을 예찬하여 이 비를 세움.
자 욱 녀 영 녀 은정 여서 김무원
1988년 11월 일 영성인 형파 엄대일 찬 독립유공자협회 대구경북회장 서달수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