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 구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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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옥분리 677-1
탐방로그
대구 삼덕교회동산 묘지 가장 상단에는 김재범의 구 묘비만 남아있으며, 묘는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묘비번호 628)로 이장되었다.
김재범 구 묘비 옆에는 부인 강성숙 여사 묘비도 함께 있다.
김재범의 아들 김환태는 김재범 지사의 유지를 이을 수 있도록 '3.1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독립선언문의 등사 및 태극기를 제작하여 이를 인근지역에 널리 배부하고 이어 동년 3월 8일 대구 만세사건 때는 학생 동원 태극기배부 등 앞장서서 활동하시다가 현장에서 일본 관헌에게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사범으로 징역 10개월의 언도를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복역하시다. 그 후 평양 숭실전문학교 서울연희전문학교에서 수학을 하시고 안동의 경안학원에서 후배 육성에 종사하시다가 대구 교외의 동촌에 거주를 정하고 기독교의 영수로서 선교 및 농촌운동을 전개하던 중 옥고의 여독과 과로로 인하여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0년 1월 28일 향년 31세로 소천하시다. 이에 1990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된 바 1990년 12월에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이 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1990년 12월 25일
처 강성숙, 자 환태, 자부 손원숙
손 은주 은희 은철 은길
옆에는 부인이신 강성숙 여사의 묘비가 있었다.
김재범의 묘는 대전현충원으로 이장되었고 현재 묘비만 남아있다.
愛國志士 領袖 金在範 之墓(애국지사 영수 김재범 지묘)
김영수님께서는 1900년 9월 28일 경북 의성군 금곡면 화전동에서 의성인 김성락님의 차남으로 출생 대구 계성학교에서 수학 중 1919년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가 이에 적극참여 동지를 규합하고 계성학교 지하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