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결성지(안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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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1480-1
탐방로그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결성지였던 안일사는 대구 앞산공원 내에 있으며, 안일사까지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안일사
대한불교조계종 안일사 / 安逸寺
ㅇ 창건년도 : 927년 / ㅇ 전통사찰 제1호 (등록 : 1988.9.13) / ㅇ 소재지 :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1480-1
안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927년(경순왕 1년) 영조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에게 패하여 이곳에 숨은 적이 있으며, 절 위 500m 지점에는 왕건이 머물렀던 왕굴이 있다. 왕건이 이곳에서 3개월 동안 편안하게 있었다고 해서 사찰 이름을 안일암이라 했다. 1915년 음력 1월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13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국권회복 운동을 할 것을 서약하고,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하였으며, 1919년 3.1 독립운동 뒤에는 상해임시정부를 돕기 위하여 군자금 조달운동이 벌어졌으며 3.1 독립운동 때 3.1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 중 1명인 용성스님이 사찰을 중창하고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등 일제강점기 하에 항일운동의 중심이 된 유서 깊은 사찰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결성지 - 안일사

관리번호: 30-1-66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안일사
소재지: 대구광역시 남구 일산순환로 440(대명동)

1910년대 대구를 비롯한 영남지역 인사들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결성한 곳이다. 조선국권회복단은 1908년 대구에서 만들어진 달성친목회가 1913년 시회(詩會) 형식을 빌어 조직되었다가 1915년 확대, 개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지역 계몽계열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조선국권회복단은 국외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동지 규합 및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3.1운동 때에는 마산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안일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고 하여 오랫동안 안일암으로 불리었다. 1960년대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 결성지 - 안일사

관리번호: 30-1-66
관리자: 대한불교조계종 안일사
소재지: 대구광역시 남구 일산순환로 440(대명동)

1910년대 대구를 비롯한 영남지역 인사들이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결성한 곳이다. 조선국권회복단은 1908년 대구에서 만들어진 달성친목회가 1913년 시회(詩會) 형식을 빌어 조직되었다가 1915년 확대, 개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남지역 계몽계열 인사들이 주축을 이룬 조선국권회복단은 국외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동지 규합 및 군자금 모집에 힘썼다. 3.1운동 때에는 마산 등지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였다. 안일사는 고려 태조 왕건이 머물렀다고 하여 오랫동안 안일암으로 불리었다. 1960년대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大雄殿(대웅전)
앞산공원

스토리텔링 안내

안지랑골
안지랑이 도는 안지랭이라 불리는 이곳은 한때 수많은 피서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곳으로 그 유래는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에게 패한 후 이 골짜기에 숨어 편안하고 안일하게 지내다가 갔다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부터 본래 '안좌령(安座嶺)'으로 양녕대군이 피난와서 머무르던 곳이었는데 살펴보니 대구가 살기 좋은 곳이고 자신이 편이 있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까지 다양하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말이 변해 지금의 안지랑이가 되었다고 한다. 또다른 유래로는 이 계곡의 물이 특별하여 피부병이 있는 사람이 이 물에 씻으면 고름이 툭툭 터지고 가려움증이 가신다고 하여 백리 밖에서도 가마를 타고와 씻고 가기도 하였으며 앉은뱅이도 일어섰다고 하여 안지랑이라 불린다는 설. 또한 대구 중심가에서 안지랑이 계곡을 보면 물안개가 핀 모습이 아지랑이가 가득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하여 안지랑이라는 명칭이 생긴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주요 볼거리
안지랑골, 안일사, 왕굴, 앞산전망대, 대덕산성, 돌탑
안일사(安逸寺)

왕건이 피난하여 편안히 쉬어갔다고하여 안일사라 명명되었으며,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71호인 목조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대구광역시 앞산공원관리사무소
매우 가파른 경사의 길이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