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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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512
탐방로그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탑은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내에 있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해 세워졌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학생들에 의해 주도된 대표적인 민족운동으로,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 사건을 계기로 하여 11월 3일부터 광주에서 시작되었으며, 11월 12일에 두 차례의 학생시위를 거쳐 1929년 11월 말에서 1930년 초까지 전국에서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을 말한다.
1953년 '학생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이 운동을 기념하기 시작하였으며, 1973년 규정에 의해 폐지되었다가 2006년 국회의 의결을 통해 현재까지 11월 3일을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기념하고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① 학생독립운동기념탑 (높이 39미터)
설명 : 평면 형태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군중이 집합하는 힘을 생각하면서 광주학생독립운동 명: 당시 난 선열들의 회사를 상징화하였으며 원경에서는 입석군들의 조화로 타오르는 횃불의 이미지를 갖도록 함. 기념탑 입석군 사이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여 관망하는 기존의 기념탑에 비해 관람자와 함께 호흡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념탑으로서의 개념도입
진입계단의 수: 113개(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날 11월 3일을 의미)
② 전면 좌측 군상(높이 5.85미터)
설명 : 원반 중앙에 태극기를 들고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청년학생의 모습들을 형상화함.
③ 좌측 부조 (높이 3.9미터)
설명 :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민족화합을 위해 한민족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운집해 축원하는 모습을 형상화함.
④ 전면 우측 군상(높이 5.7미터)
설명: 원반 중앙에 민족의 평화를 기원하며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민족의 독립과 정기를 되찾기 위한 학생 선열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화함.
⑤ 후면 좌측 군상 (높이 5.2미터)
설명: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는 청년 선열들의 단결된 의지를 표출함.
⑥ 우측 부조 (높이 3.9미터)
설명: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고 민족이 하나가 되어 백두 정상에 태극기를 세우기 위한 행진을 형상화함.
⑦ 후면 우측 군상(높이 5.4미터)
설명: 일제의 굴욕적 교육에 항거하여 민족정신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함.
① 학생독립운동기념탑 (높이 39미터)
설명 : 평면 형태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군중이 집합하는 힘을 생각하면서 광주학생독립운동 명: 당시 난 선열들의 회사를 상징화하였으며 원경에서는 입석군들의 조화로 타오르는 횃불의 이미지를 갖도록 함. 기념탑 입석군 사이에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여 관망하는 기존의 기념탑에 비해 관람자와 함께 호흡하고 체험할 수 있는 기념탑으로서의 개념도입
진입계단의 수: 113개(학생독립운동기념일의 날 11월 3일을 의미)
② 전면 좌측 군상(높이 5.85미터)
설명 : 원반 중앙에 태극기를 들고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하는 청년학생의 모습들을 형상화함.
③ 좌측 부조 (높이 3.9미터)
설명 :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여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민족화합을 위해 한민족이 백두산을 배경으로 운집해 축원하는 모습을 형상화함.
④ 전면 우측 군상(높이 5.7미터)
설명: 원반 중앙에 민족의 평화를 기원하며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민족의 독립과 정기를 되찾기 위한 학생 선열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화함.
⑤ 후면 좌측 군상 (높이 5.2미터)
설명: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는 청년 선열들의 단결된 의지를 표출함.
⑥ 우측 부조 (높이 3.9미터)
설명: 학생독립운동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나아가 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고 민족이 하나가 되어 백두 정상에 태극기를 세우기 위한 행진을 형상화함.
⑦ 후면 우측 군상(높이 5.4미터)
설명: 일제의 굴욕적 교육에 항거하여 민족정신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함.
1929년 11월 3일 이 고장 광주의 젊은이들이 민족의 자유와 자존을 위하여 한 몸 한 목소리로 일어섰던 날, 국권을 일제에게 빼앗기고 국토와 문화와 정신까지 강탈당한 지 오래이건만 몽상간에도 잊을 수 없는 자유와 독립을 향한 목마름을 마침내 온몸으로 정규하던 날, 그 몸부림치는 절규와 필사적인 저항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감으로써 전국의 320개 학교에서 5만4천여명의 젊은이들이 항쟁의 대열에 끼어 싸우다가 1462명이 구속이 되고 2912명이 정학 또는 퇴학을 당하였으니 어찌 그 슬픔과 원통함을 잊을 수가 있었겠는가, 고개를 들어 창공을 보라. 그 곳엔 그날의 정규가 아직도 들리리라. 고개를 숙여 대지를 보라. 그곳엔 고귀한 선혈자국이 남아있을진 대 후손들이 어찌 이날을 망각의 피안으로 떠내려가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비록 그 이름없는 별들의 육체는 사라졌어도 그 고귀한 애족혼은 만고에 피어날 민족의 꽃이기에 1953년 대한민국 국회는 이날을 '학생의 날'로 제정하였고, 1954년에는 광주시민을 비롯하여 전국민의 성금으로 광주제일고등학교 교정에 '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건립하기에 이르렀으니 그것은 바로 광주의 빛이자 민족혼의 뿌리임을 재확인하려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 영광의 빛이 더 높게 더 넓게 번져나가도록 1967년 시내 황금동에 건립한 '학생독립운동기념회관'을 이제 다시 정부지원과 공주시민의 뜻과 성의를 모아 중앙공원의 2만평 넓은 터에 새롭게 성역으로 단장을 하게됨은 오직 자유와 독립과 민주투쟁의 고귀함과 영구불멸의 민족혼을 기리기 위해서이며, 그 기쁨과 긍지를 전국민의 이름으로 만천하에 천명하는 바이다.
2007년 11월 일 글쓴이 차범석, 광주광역시장 박광태, 광주광역시교육감 안순일
광주학생독립운동참가학교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가한 학교는 전국적으로 300여 곳이 훨씬 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럼에도 조선총독부 경무국이 작성한 "조선의 치안상태상황(1930년판)에서 참가 학교수는 194개 학교로 집계하고 있고, 기존의 교과서와 공문서 등에서도 참가 학교수를 194개교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상징성은 있으나 역사적 사실에 맞지 않는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므로 아래에 광주학생독립운동 참가 학교수를 전체적으로 파악하여 320개교의 명단을 제시하였으며, 향후 새로운 자료가 발굴되어 참가학교로 판명될 경우 추가로 새길 것임을 밝혀둔다.

전라지역 41개교, 서울.경기지역 56개교, 충청지역 23개교, 경상지역 401개교, 강원.황해지역 11개교, 평안.함경지역 117개교, 간도지역 32개교.
학생독립운동기념탑
① 기념탑 높이 39M
작품설명: 평면형태는 하나의 구심점으로 군중이 집합하는 힘을 생각하면서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의 단결된 선열들의 의지를 상징화하였으며, 원경에서는 입석군들의 조화로 타오르는 횃불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 것임.
진입계단의 수: 113개(학생독립운동기념의 날 11월 3일을 의미)
② 전면좌측군상 높이 5.85M
작품설명: 원반 중앙에 태극기를 들고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일제에 항거하
는 청년학생의 모습들을 형상화 함.
③ 전면우측군상 높이 5.7M
작품설명: 원반 중앙에 민족의 평화를 기원하며 비둘기를 날려보내는 인물상을 중심으로 민족의 독립과 정기로 되찾기 위한 학생 선열들의 투쟁모습을 형상화 함.
④ 후면좌측군상 높이 5.2M
작품설명: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는 청년 선열들의 단결된 의지를 표출함.
⑤ 후면좌측군상 높이 5.4M
작품설명: 일제의 굴욕적 교육에 항거하여 민족정신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표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