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광주광역시 서구 상무공원로 101(상무시민공원)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광주·전남출신 독립유공자(光州全南出身 獨立有者)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서재필
대통령장 - 양한묵
독립장 – 강진원 고광순 고제량 기산도 기삼연 김동수 김봉규 김석 김승곤 김영백 김용구 김용재 김원국 김원범 김율 김응백 김일곤 김철 김치홍 김태원 나월환 나철 노임수 박문용 박봉석 박사화 손덕오 송주면 송진우 신정백 심남일 안규홍 양진여 염인서 오기호 오성술 유병기 윤창하 이강산 이기손 이대극 이병묵 이병욱 이병채 이상철 임창모 임하중 장인초 정기찬 조경한 조경환 조길룡 조정인 황병학 황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 서재필
대통령장 - 양한묵
독립장 – 강진원 고광순 고제량 기산도 기삼연 김동수 김봉규 김석 김승곤 김영백 김용구 김용재 김원국 김원범 김율 김응백 김일곤 김철 김치홍 김태원 나월환 나철 노임수 박문용 박봉석 박사화 손덕오 송주면 송진우 신정백 심남일 안규홍 양진여 염인서 오기호 오성술 유병기 윤창하 이강산 이기손 이대극 이병묵 이병욱 이병채 이상철 임창모 임하중 장인초 정기찬 조경한 조경환 조길룡 조정인 황병학 황현
애국장
강달주 강문영 강문진 강사문 강상호 강석봉 강한수 고광채 고광훈 공성찬 곽낙삼 곽재구 국동완 권영희 기환도 김갑수 김교락 김교풍 김기권 김기봉 김도규 김도숙 김동은 김병규 김봉수 김봉훈 김석현 김선중 김성로 김성현 김영성 김영하 김용규 김원길 김원봉 김응삼 김익중 김인학 김재계 김재룡 김재명 김재민 김재호 김제중 김종성 김종택 김종호 김준길 김준연 김직순 김진화 김찬순 김찬와 김형주 김호선 김홍두 나성화 나정련 나정문 나창운 남궁현 노석정 노석중 노인선 노형규 문동길 문승수 문장호 문재교 민치도 박규상 박금룡 박덕삼 박동규 박동주 박민홍 박상기 박여홍 박영근 박원영 박응천 박인찬 박제웅 박종협 박준기 박진 박치일 박태환 박항래 박화중 배치문 백학선 변극 서상렬 서성학 서태석
강달주 강문영 강문진 강사문 강상호 강석봉 강한수 고광채 고광훈 공성찬 곽낙삼 곽재구 국동완 권영희 기환도 김갑수 김교락 김교풍 김기권 김기봉 김도규 김도숙 김동은 김병규 김봉수 김봉훈 김석현 김선중 김성로 김성현 김영성 김영하 김용규 김원길 김원봉 김응삼 김익중 김인학 김재계 김재룡 김재명 김재민 김재호 김제중 김종성 김종택 김종호 김준길 김준연 김직순 김진화 김찬순 김찬와 김형주 김호선 김홍두 나성화 나정련 나정문 나창운 남궁현 노석정 노석중 노인선 노형규 문동길 문승수 문장호 문재교 민치도 박규상 박금룡 박덕삼 박동규 박동주 박민홍 박상기 박여홍 박영근 박원영 박응천 박인찬 박제웅 박종협 박준기 박진 박치일 박태환 박항래 박화중 배치문 백학선 변극 서상렬 서성학 서태석
애국장
소휘천 송경회 송기휴 송병운 송석래 송욱동 송학묵 신경수 신덕균 신용희 신정우 신태윤 안군명 안봉순 안택환 안후덕 양동훈 양상기 양열묵 양응인 양재홍 양창국 양회룡 양회일 양회총 염용수 염재보 오상렬 오윤칠 오응삼 오진상 왕재일 유건영 유금동 유시연 유영홍 윤봉현 윤승현 윤영기 윤영채 윤정구 이경채 이관회 이기창 이기춘 이남규 이만준 이범진 이복근 이세창 이승호 이영삼 이용순 이윤선 이윤호 이정표 이종협 이중백 이춘경 이행순 이홍빈 이홍장 이화삼 임도돌 임병국 임상영 임영화 임윤팔 임정현 임학규 장계진 장병준 장석천 장재모 정관오 정광호 정균호 정기채 정낙중 정남국 정동근 정무봉 정사홍 정상섭 정석면 정세현 정영진 정윤면 정인술 정재건 정창연 정태봉 조규하 조금동 조우식 주기화
소휘천 송경회 송기휴 송병운 송석래 송욱동 송학묵 신경수 신덕균 신용희 신정우 신태윤 안군명 안봉순 안택환 안후덕 양동훈 양상기 양열묵 양응인 양재홍 양창국 양회룡 양회일 양회총 염용수 염재보 오상렬 오윤칠 오응삼 오진상 왕재일 유건영 유금동 유시연 유영홍 윤봉현 윤승현 윤영기 윤영채 윤정구 이경채 이관회 이기창 이기춘 이남규 이만준 이범진 이복근 이세창 이승호 이영삼 이용순 이윤선 이윤호 이정표 이종협 이중백 이춘경 이행순 이홍빈 이홍장 이화삼 임도돌 임병국 임상영 임영화 임윤팔 임정현 임학규 장계진 장병준 장석천 장재모 정관오 정광호 정균호 정기채 정낙중 정남국 정동근 정무봉 정사홍 정상섭 정석면 정세현 정영진 정윤면 정인술 정재건 정창연 정태봉 조규하 조금동 조우식 주기화
건국포장
강민섭 고광문 고순례 고홍석 곽찬신 구승우 김갑곤 김귀선 김기준 김기중 김기칠 김남식 김대중 김병규 김병규 김삼석 김영관 김영언 김옥석 김용표 김유성 김재중 김정환 김종택 김지수 김지태 김초암 김택주 김형석 김흥봉 김희곤 나만성 남협협 노병욱 노병주 노인수 문복금 민영명 박계남 박동희 박맹종 박병두 박순동 박왈명 박정수 박정환 박종식 박채희 배봉규 백상기 변순기 서기표 선규명 신명준 신원범 신인휴 신재의 안기환 안자정 양동묵 양동진 양방매 양상길 양성룡 양수묵 양재동 양재욱 양창묵 양태묵 염규석 오문길 오임탁
강민섭 고광문 고순례 고홍석 곽찬신 구승우 김갑곤 김귀선 김기준 김기중 김기칠 김남식 김대중 김병규 김병규 김삼석 김영관 김영언 김옥석 김용표 김유성 김재중 김정환 김종택 김지수 김지태 김초암 김택주 김형석 김흥봉 김희곤 나만성 남협협 노병욱 노병주 노인수 문복금 민영명 박계남 박동희 박맹종 박병두 박순동 박왈명 박정수 박정환 박종식 박채희 배봉규 백상기 변순기 서기표 선규명 신명준 신원범 신인휴 신재의 안기환 안자정 양동묵 양동진 양방매 양상길 양성룡 양수묵 양재동 양재욱 양창묵 양태묵 염규석 오문길 오임탁
건국포장
오재현 유인수 윤성하 윤형숙 이계춘 이광춘 이남채 이만동 이민수 이병화 이상문 이승정 이승학 이을호 이종실 이종춘 이창호 이창희 이형영 이형춘 임노복 임노성 임성근 장남현 장평완 전신묵 정규태 정몽석 정순우 정순학 정을현 정일삼 정진무 정찬규 정창남 정현모 정홍모 조병철 조종운 조준기 주만우 최기섭 최기표 최봉기 최봉성 최석호 최선일 최영운 최완규 최종렬 최창모 허원삼 황의영
오재현 유인수 윤성하 윤형숙 이계춘 이광춘 이남채 이만동 이민수 이병화 이상문 이승정 이승학 이을호 이종실 이종춘 이창호 이창희 이형영 이형춘 임노복 임노성 임성근 장남현 장평완 전신묵 정규태 정몽석 정순우 정순학 정을현 정일삼 정진무 정찬규 정창남 정현모 정홍모 조병철 조종운 조준기 주만우 최기섭 최기표 최봉기 최봉성 최석호 최선일 최영운 최완규 최종렬 최창모 허원삼 황의영
애족장
강기환 강달모 강석원 강자선 강정태 강종득 강판수 강해석 강환진 고서동 고영완 고용석 고재천 고재휴 곽우영 국채준 권수동 기태룡 길양수 길인주 김강 김경천 김경태 김경화 김광수 김광용 김규열 김기주 김기택 김기형 김길룡 김남두 김남철 김대현 김덕근 김덕선 김동규 김동훈 김두환 김득근 김무삼 김배길 김백평 김범식 김병기 김보섭 김복만 김복현 김봉수 김봉환 김사홍 김상순 김상환 김성언 김성택 김순기 김순배 김순오 김순용 김신제 김암우 김영남 김영남 김영식 김영엽 김영우 김영학 김영휘 김옥도 김용관 김용근 김용수 김용준 김용환 김은섭 김은환 김이현 김익삼 김익수 김익수 김인식 김재동 김재용 김재홍 김정상 김종수 김종주 김주성 김준헌 김차홍 김채룡 김철주 김충홍 김태열 김태오 김통안
강기환 강달모 강석원 강자선 강정태 강종득 강판수 강해석 강환진 고서동 고영완 고용석 고재천 고재휴 곽우영 국채준 권수동 기태룡 길양수 길인주 김강 김경천 김경태 김경화 김광수 김광용 김규열 김기주 김기택 김기형 김길룡 김남두 김남철 김대현 김덕근 김덕선 김동규 김동훈 김두환 김득근 김무삼 김배길 김백평 김범식 김병기 김보섭 김복만 김복현 김봉수 김봉환 김사홍 김상순 김상환 김성언 김성택 김순기 김순배 김순오 김순용 김신제 김암우 김영남 김영남 김영식 김영엽 김영우 김영학 김영휘 김옥도 김용관 김용근 김용수 김용준 김용환 김은섭 김은환 김이현 김익삼 김익수 김익수 김인식 김재동 김재용 김재홍 김정상 김종수 김종주 김주성 김준헌 김차홍 김채룡 김철주 김충홍 김태열 김태오 김통안
애족장
김한주 김향남 김형식 김호기 김홍기 김홍남 김화남 김후식 나덕환 나동규 나석현 나순조 남정준 노영석 노화범 마성만 마신엽 목치숙 문남일 문달환 문동경 문병갑 문사훈 문성선 문영주 문채호 박경주 박공근 박기념 박남현 박노기 박노백 박노호 박무길 박병두 박병문 박병선 박병하 박복영 박봉석 박사배 박상렬 박상유 박석우 박석훈 박선규 박성화 박세영 박애순 박오봉 박옥련 박은용 박일구 박장봉 박정순 박제현 박종선 박종주 박주일 박준채 박중진 박진철 박창규 박팽동 박현동 박현숙 박호암 박화선 박흥곤 배세동 배종국 백재호 백홍인 백효인 범윤두 변각원 서광조 서민호 서상국 서상룡 서상봉 서순채 서재만 서재익 서정기 성동준 손동출 송계명 송기호 송내호 송대호 송동식 송만수 송성수 송완명 송정호
김한주 김향남 김형식 김호기 김홍기 김홍남 김화남 김후식 나덕환 나동규 나석현 나순조 남정준 노영석 노화범 마성만 마신엽 목치숙 문남일 문달환 문동경 문병갑 문사훈 문성선 문영주 문채호 박경주 박공근 박기념 박남현 박노기 박노백 박노호 박무길 박병두 박병문 박병선 박병하 박복영 박봉석 박사배 박상렬 박상유 박석우 박석훈 박선규 박성화 박세영 박애순 박오봉 박옥련 박은용 박일구 박장봉 박정순 박제현 박종선 박종주 박주일 박준채 박중진 박진철 박창규 박팽동 박현동 박현숙 박호암 박화선 박흥곤 배세동 배종국 백재호 백홍인 백효인 범윤두 변각원 서광조 서민호 서상국 서상룡 서상봉 서순채 서재만 서재익 서정기 성동준 손동출 송계명 송기호 송내호 송대호 송동식 송만수 송성수 송완명 송정호
애족장
송주헌 송흥진 신국호 신국휴 신문선 신상우 신의구 신준희 신태식 심수근 안동선 안봉채 안용갑 안종변 안창석 안판신 안호형 양동골 양영택 양용환 양인묵 양재해 양태성 양회상 염동규 오덕홍 오문현 오상록 오석완 오석주 오승남 오영찬 오우홍 오운석 오원석 오종옥 오태순 오태윤 위계룡 위계후 위석규 위종관 유도삼 유두엽 유봉목 유상설 유찬옥 유치오 유한선 유한휘 유흥주 윤경현 윤양하 윤인섭 윤장 윤종섭 윤주연 윤호영 이각재 이광수 이기성 이기하 이기환 이덕우 이동선 이민영 이병영 이병우 이병현 이병호 이사섭 이상순 이상암 이상철 이영범 이영준 이용백 이원중 이응범 이인행 이인형 이일근 이재대 이정동 이정우 이종규 이좌근 이주상 이준수 이춘수 이태우 이태훈 이항선 이현렬 이현주 이형모
송주헌 송흥진 신국호 신국휴 신문선 신상우 신의구 신준희 신태식 심수근 안동선 안봉채 안용갑 안종변 안창석 안판신 안호형 양동골 양영택 양용환 양인묵 양재해 양태성 양회상 염동규 오덕홍 오문현 오상록 오석완 오석주 오승남 오영찬 오우홍 오운석 오원석 오종옥 오태순 오태윤 위계룡 위계후 위석규 위종관 유도삼 유두엽 유봉목 유상설 유찬옥 유치오 유한선 유한휘 유흥주 윤경현 윤양하 윤인섭 윤장 윤종섭 윤주연 윤호영 이각재 이광수 이기성 이기하 이기환 이덕우 이동선 이민영 이병영 이병우 이병현 이병호 이사섭 이상순 이상암 이상철 이영범 이영준 이용백 이원중 이응범 이인행 이인형 이일근 이재대 이정동 이정우 이종규 이좌근 이주상 이준수 이춘수 이태우 이태훈 이항선 이현렬 이현주 이형모
애족장
이형우 이흥쇄 임기열 임민호 이병욱 임병주 임상규 임소녀 임재갑 임현주 임홍우 장경례 장경선 장기문 장매성 장명환 장삼채 장석칠 장세영 장순기 장영규 장용삼 장호조 장홍염 장희수 전순협 전평규 정건수 정귀석 정규식 정기연 정남균 정동수 정두범 정두실 정득수 정병소 정석규 정순정 정순제 정순홍 정신섭 정우채 정욱 정인영 정종배 정종철 정진감 정진수 정태연 정태화 정학순 정헌기 정현철 정희면 조게현 조규찬 조극환 조동선 조문환 조병식 조병의 조병현 조성인 조영선 조옥현 조용택 조점환 조정구 조철현 조희방 주경석 주봉식 주세원 주영철 주재연 주창업 지용수 진신애 차영섭 차태희 천덕운 천병섭 최강윤 최경동 최기준 최동환 최병준 최봉관 최사열 최상욱 최성원 최수향 최영균 최영서 최용선
이형우 이흥쇄 임기열 임민호 이병욱 임병주 임상규 임소녀 임재갑 임현주 임홍우 장경례 장경선 장기문 장매성 장명환 장삼채 장석칠 장세영 장순기 장영규 장용삼 장호조 장홍염 장희수 전순협 전평규 정건수 정귀석 정규식 정기연 정남균 정동수 정두범 정두실 정득수 정병소 정석규 정순정 정순제 정순홍 정신섭 정우채 정욱 정인영 정종배 정종철 정진감 정진수 정태연 정태화 정학순 정헌기 정현철 정희면 조게현 조규찬 조극환 조동선 조문환 조병식 조병의 조병현 조성인 조영선 조옥현 조용택 조점환 조정구 조철현 조희방 주경석 주봉식 주세원 주영철 주재연 주창업 지용수 진신애 차영섭 차태희 천덕운 천병섭 최강윤 최경동 최기준 최동환 최병준 최봉관 최사열 최상욱 최성원 최수향 최영균 최영서 최용선
애족장
최장춘 최정기 최정두 최종오 최창규 최창희 최태주 최한영 최형천 최혜순 최흥종 하의철 한방섭 홍귀주 홍덕주 홍종휘 황원 황의선 황채연 황채현
대통령표창
강대연 강봉섭 강원태 강유진 강정수 강정택 강주형 강지석 강철수 고제빈 고형진 곽이섭 곽인석 곽재석 곽희주 김공현 김귀남 김규석 김길호 김나열 김덕순 김명곤 김상중 김상후 김석용 김선제 김순복 김순천 김안순 김양숙 김영호 김옥남 김옥실 김용문 김용상 김용언 김우진 김일제 김재문 김제문 김종호 김준령 김태영 김화백 김흥룡 김희로 남상권 노근후 노동훈 노천목 모순기 문경홍 민영흥 박경순 박경현 박광우 박기숙 박두옥 박병훈 박복술 박상규 박석현 박수봉 박오기 박용규 박용래 박용수 박우말례 박유성 박음전 박인배 박재봉
최장춘 최정기 최정두 최종오 최창규 최창희 최태주 최한영 최형천 최혜순 최흥종 하의철 한방섭 홍귀주 홍덕주 홍종휘 황원 황의선 황채연 황채현
대통령표창
강대연 강봉섭 강원태 강유진 강정수 강정택 강주형 강지석 강철수 고제빈 고형진 곽이섭 곽인석 곽재석 곽희주 김공현 김귀남 김규석 김길호 김나열 김덕순 김명곤 김상중 김상후 김석용 김선제 김순복 김순천 김안순 김양숙 김영호 김옥남 김옥실 김용문 김용상 김용언 김우진 김일제 김재문 김제문 김종호 김준령 김태영 김화백 김흥룡 김희로 남상권 노근후 노동훈 노천목 모순기 문경홍 민영흥 박경순 박경현 박광우 박기숙 박두옥 박병훈 박복술 박상규 박석현 박수봉 박오기 박용규 박용래 박용수 박우말례 박유성 박음전 박인배 박재봉
대통령표창
박중일 박태문 박현채 박형기 박흔홍 박흥래 방상섭 배명순 배윤주 배형주 백인열 백형기 변진설 서경식 서유종 서필환 서화일 선화인 손승옥 손태옥 신갑도 신만희 신원식 신유선 신임휴 신종태 안규진 안덕환 안동영 안상규 안운수 안진영 양원모 양화순 양회준 엄순오 여맹조 염현두 오기영 오놀보 오상구 오응추 옥대호 원대성 원창권 유봉기 유상규 유상순 유상학 유영태 유해용 윤상윤 윤옥하 윤이신 윤자환 윤점수 윤태완 윤해병 이갑준 이경채 이남순 이동천 이선우 이용근 이일봉 이재실 이준섭 이준탁 이치홍 이행록 임동수 임양순 임태일 전유봉 전인채 정귀인 정규수 정병의 정보한 정상조 정성련 정순선 정순호 정영조 정용섭 정인철 정재남 정치언 정학균 정학조 조경래 조규학 조기석 조기섭 조병완 조옥희
박중일 박태문 박현채 박형기 박흔홍 박흥래 방상섭 배명순 배윤주 배형주 백인열 백형기 변진설 서경식 서유종 서필환 서화일 선화인 손승옥 손태옥 신갑도 신만희 신원식 신유선 신임휴 신종태 안규진 안덕환 안동영 안상규 안운수 안진영 양원모 양화순 양회준 엄순오 여맹조 염현두 오기영 오놀보 오상구 오응추 옥대호 원대성 원창권 유봉기 유상규 유상순 유상학 유영태 유해용 윤상윤 윤옥하 윤이신 윤자환 윤점수 윤태완 윤해병 이갑준 이경채 이남순 이동천 이선우 이용근 이일봉 이재실 이준섭 이준탁 이치홍 이행록 임동수 임양순 임태일 전유봉 전인채 정귀인 정규수 정병의 정보한 정상조 정성련 정순선 정순호 정영조 정용섭 정인철 정재남 정치언 정학균 정학조 조경래 조규학 조기석 조기섭 조병완 조옥희
대통령표창
유상학 유영태 유해용 윤상윤 윤옥하 윤이신 윤자환 윤점수 윤태완 윤해병 이갑준 이경채 이남순 이동천 이선우 이용근 이일봉 이재실 이준섭 이준탁 이치홍 이행록 임동수 임양순 임태일 전유봉 전인채 정귀인 정규수 정병의 정보한 정상조 정성련 정순선 정순호 정영조 정용섭 정인철 정재남 정치언 정학균 정학조 조경래 조규학 조기석 조기섭 조병완 조옥희 조자현 조희도 주봉옥 주유금 주형옥 진자미 차종화 차주빈 채규호 천보여 천재섭 최규철 최기정 최성심 최순우 최이규 최정주 하영자 한익수 한창수 허치성 허탁 홍민후 홍철수
유상학 유영태 유해용 윤상윤 윤옥하 윤이신 윤자환 윤점수 윤태완 윤해병 이갑준 이경채 이남순 이동천 이선우 이용근 이일봉 이재실 이준섭 이준탁 이치홍 이행록 임동수 임양순 임태일 전유봉 전인채 정귀인 정규수 정병의 정보한 정상조 정성련 정순선 정순호 정영조 정용섭 정인철 정재남 정치언 정학균 정학조 조경래 조규학 조기석 조기섭 조병완 조옥희 조자현 조희도 주봉옥 주유금 주형옥 진자미 차종화 차주빈 채규호 천보여 천재섭 최규철 최기정 최성심 최순우 최이규 최정주 하영자 한익수 한창수 허치성 허탁 홍민후 홍철수
절해고도인 완도군 소안도에서 독립의지를 다짐하며 교련수업을 받던 사립소안학교 여학생들(1923)
일제의 식민지교육 철폐와 민족차별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른 광주학생독립운동 주동자들과 학부모들(1931)
우리 민족의 정치·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고 일치단결하여 기회주의를 배격하자던 신간회 나주지회의 창립 광경(1927)
우리 민족의 정치·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고 일치단결하여 기회주의를 배격하자던 신간회 나주지회의 창립 광경(1927)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여학생의 팔을 잔혹하게 자르는 일본 경찰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첫걸음을 준비한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 회원들(1926)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첫걸음을 준비한 비밀결사 성진회(醒進會) 회원들(1926)
일본의 야만적인 호남의병진압작전(소위 ‘남한폭도대토벌작전’ - 1909년 9-10월) 중 끝까지 항전하다 체포되어 순국한 한말 호남의병장들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광주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의 출옥 후 모습
3·1운동 당시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된 광주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의 출옥 후 모습
광주독립운동기념탑
광주독립운동기념탑
건립 취지문
광주 전남은 의(義)로운 고장이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분연(奮然)히 일어나 외세(外勢)와 맞섰다. 특히 36년간의 대일항쟁기간 중 거세게 불타올랐던 한말 호남의병 항전(抗戰)과 광주 불로동 부동교 아래 장터에서 시작된 이 지역 3·1운동, 전국을 독립의 합성으로 물들게 하였고 동남아까지 약소민족의 독립정신을 심어준 광주학생독립운동, 일제의 수탈에 맨주먹으로 항쟁한 농민운동과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 찬란히 빛나는 업적이다. 그러나 이 빛나는 역사만큼이나 희생도 컸다. 한말 호남의병의 씨를 말리기 위한 1910년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이 해에만 전라도에서는 500여 명의 의병이 항전 중 순국했고, 3천여 명 이상이 체포돼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희생 또한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육체는 쓰러져도 나라를 놓지 않고 명맥은 끊어져도 민족과 얽매인 채 몸부림치다 시어진 선열들. 아! 백만 년이 흐른들 어찌 그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잊을 수 있으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불멸의 독립정신을 영원히 새기고 자자손손 물려주자
광복회 광주전남연합 지부장 김갑제
본 작품은 광주 전남독립운동의 숭고한 희생과 화합 그리고 그것이 지켜낸 평화를 주제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의 바닥에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조각들의 조합은 뿌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원을 그리며 상승합니다. 각 뿌리들은 상승하며 하나로 만나 평화의 꽃을 피웁니다. 이는 독립운동의 소중한 희생이 자양분이 되어 맺은 결실 즉. 오늘날의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꽃피웠음 의미합니다.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은 독립운동을 이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작품에 생동감과 사실감을 부여하였습니다. 또한 기념탑을 중심으로 천화대와 향로, 조형벽이 구성되어 독립운동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특별한 공간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작품의 전면부에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독립정신을 심어주신 고귀한 이름과 업적을 기술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감상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각각의 작품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거대한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2014년 8월
평화의 꽃 – 피어오르다
시행 : 광주광역시
시공: 나루. 조각 민광식
글씨: 금초 정광주
광주 전남은 의(義)로운 고장이다. 국난이 있을 때마다 분연(奮然)히 일어나 외세(外勢)와 맞섰다. 특히 36년간의 대일항쟁기간 중 거세게 불타올랐던 한말 호남의병 항전(抗戰)과 광주 불로동 부동교 아래 장터에서 시작된 이 지역 3·1운동, 전국을 독립의 합성으로 물들게 하였고 동남아까지 약소민족의 독립정신을 심어준 광주학생독립운동, 일제의 수탈에 맨주먹으로 항쟁한 농민운동과 노동운동 등 사회운동은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에 찬란히 빛나는 업적이다. 그러나 이 빛나는 역사만큼이나 희생도 컸다. 한말 호남의병의 씨를 말리기 위한 1910년 일제의 소위 남한대토벌작전으로 이 해에만 전라도에서는 500여 명의 의병이 항전 중 순국했고, 3천여 명 이상이 체포돼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다. 3·1운동과 광주학생독립운동의 희생 또한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육체는 쓰러져도 나라를 놓지 않고 명맥은 끊어져도 민족과 얽매인 채 몸부림치다 시어진 선열들. 아! 백만 년이 흐른들 어찌 그들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잊을 수 있으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불멸의 독립정신을 영원히 새기고 자자손손 물려주자
광복회 광주전남연합 지부장 김갑제
본 작품은 광주 전남독립운동의 숭고한 희생과 화합 그리고 그것이 지켜낸 평화를 주제로 제작되었습니다. 작품의 바닥에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조각들의 조합은 뿌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이는 원을 그리며 상승합니다. 각 뿌리들은 상승하며 하나로 만나 평화의 꽃을 피웁니다. 이는 독립운동의 소중한 희생이 자양분이 되어 맺은 결실 즉. 오늘날의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꽃피웠음 의미합니다. 그 주위를 둘러싼 인물들은 독립운동을 이끈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작품에 생동감과 사실감을 부여하였습니다. 또한 기념탑을 중심으로 천화대와 향로, 조형벽이 구성되어 독립운동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특별한 공간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작품의 전면부에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독립정신을 심어주신 고귀한 이름과 업적을 기술하여 교육적인 효과를 갖도록 하였습니다. 감상자들의 시각에서 보면 각각의 작품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조화를 이루어 거대한 하나의 공간으로 느껴지게 될 것입니다.
2014년 8월
평화의 꽃 – 피어오르다
시행 : 광주광역시
시공: 나루. 조각 민광식
글씨: 금초 정광주
광주독립운동기념탑
광주-전남의 독립운동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듯이. 예로부터 광주-전남은 충절과 의리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19세기 말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광주전남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들의 항쟁이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라성 같은 의병들이 수없이 일어나 하늘같은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져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광주-전남지역은 의병항쟁의 중심무대였으니, 1908년에는 전국대비 교전 의병수의 24.7%였고 1909년에는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에 일제는 이른바 '남산폭도대토벌작전(1907.9-10월)'을 실시하여 수천명의 광주-전남 의병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거나 체포함으로써 식민화의 제물로 삼았다. 1910년 경술국치 당한 후에도 광주·전남인들은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광복을 도모하기 위한 독립의군을 자처하며 반투쟁을 전개하였다.
비운의 황제 고종의 승하를 계기로 3·1운동의 도도한 함성과 만세시위는 광주-전남의 산과 들에 메아리쳤고, 일제의 잔악무도한 침략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10년 뒤, 광주-전남의 저항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원제의 무자비한 식민정책에 저항하여 전국을 뒤흔들었으니, 바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이었다. 나주와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식민지 해방을 외치며 전국 각지와 해외로 확산되었다. 약 5개월 동안 약 200개 학교 5만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2천여 명이 구금되고 퇴학과 정학을 당한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가장 큰 독립운동이었다. 이를 전후하여 광주·전남인들은 민족의 대동단결을 주창한 신간회운동을 비롯한 농민·노동·청년·여성·문화·종교운동을 통해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을 거부하고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1945 을유년, 천신만고 끝에 나라를 되찾았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다시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부여안은 지 70년, 세기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오늘 점차 퇴색되어가는 자주독립정신을 재 조명함으로써 우리 선열들의 돌올한 희생을 되새기고, 나아가 자유와 평등을 염원하는 독립운동기념탑을 여기에 세운다.
이제 김구 선생이 그토록 소망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광주·전남의 정의로운 기운을 결집하여 빼어난 통일문화국가의 횃불로서 인류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자.
2014년 광복절
순천대학교 사학과 홍영기 짓고
금초 정광주 쓰다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국가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회자되듯이. 예로부터 광주-전남은 충절과 의리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19세기 말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한 광주전남의 동학농민운동과 의병들의 항쟁이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기라성 같은 의병들이 수없이 일어나 하늘같은 목숨을 초개처럼 내던져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일본의 식민지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였다. 광주-전남지역은 의병항쟁의 중심무대였으니, 1908년에는 전국대비 교전 의병수의 24.7%였고 1909년에는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이에 일제는 이른바 '남산폭도대토벌작전(1907.9-10월)'을 실시하여 수천명의 광주-전남 의병들을 잔인하게 학살하거나 체포함으로써 식민화의 제물로 삼았다. 1910년 경술국치 당한 후에도 광주·전남인들은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광복을 도모하기 위한 독립의군을 자처하며 반투쟁을 전개하였다.
비운의 황제 고종의 승하를 계기로 3·1운동의 도도한 함성과 만세시위는 광주-전남의 산과 들에 메아리쳤고, 일제의 잔악무도한 침략을 뒤엎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다. 10년 뒤, 광주-전남의 저항 정신은 면면히 이어져 원제의 무자비한 식민정책에 저항하여 전국을 뒤흔들었으니, 바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이었다. 나주와 광주에서 시작된 광주학생독립운동은 일본 제국주의 타도와 식민지 해방을 외치며 전국 각지와 해외로 확산되었다. 약 5개월 동안 약 200개 학교 5만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하여 2천여 명이 구금되고 퇴학과 정학을 당한 학생들이 부지기수였던 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가장 큰 독립운동이었다. 이를 전후하여 광주·전남인들은 민족의 대동단결을 주창한 신간회운동을 비롯한 농민·노동·청년·여성·문화·종교운동을 통해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을 거부하고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 온 힘을 쏟았다.
1945 을유년, 천신만고 끝에 나라를 되찾았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다시 분단과 전쟁의 상흔을 부여안은 지 70년, 세기를 훌쩍 넘기고 말았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오늘 점차 퇴색되어가는 자주독립정신을 재 조명함으로써 우리 선열들의 돌올한 희생을 되새기고, 나아가 자유와 평등을 염원하는 독립운동기념탑을 여기에 세운다.
이제 김구 선생이 그토록 소망했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광주·전남의 정의로운 기운을 결집하여 빼어난 통일문화국가의 횃불로서 인류 전체의 행복에 기여하자.
2014년 광복절
순천대학교 사학과 홍영기 짓고
금초 정광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