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순국열사비(포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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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775
탐방로그
호남 순국열사비가 위치한 광주 포충사에서는 1603년 한석봉이 쓴 포충사 편액을 볼 수 있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포충사 | Pochungsa / 褒忠祠 /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1533년~1592년)·종후(從厚, 1554년~1593년)·인후(因厚, 1561년~1592년)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1554년~1592년)·안영(安瑛, 1564~1592년)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 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내외삼문·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 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忠孝堂)·청사영당(晴沙影堂)·전사청(典祀廳)·고직사(庫直舍) 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 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 4종 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褒忠祠 廟庭碑(포충사 묘정비)
포충사 묘정비(褒忠祠 廟庭碑)
문이 잠겨있어서 들어갈수가 없다.
褒忠祠(포충사)
구 사당 앞 소나무 숲 사이에 비석이 하나 서 있다.
호남순국열사지비(湖南殉國烈士之碑)
이 비석은 이혁 전 전남대 교수 등이 참여한 모임인 호남순열모의계가 1951년 세운 것이라고 한다.
호남순국열사지비(湖南殉國烈士之碑)
倡義諸公(창의제공)

녹천 고광순 장흥인
성재 기삼연 행주인
인봉 고제량 장흥인
행사 양회일 제주인
죽봉 김준 경주인
일광 정시해 진주인
지강 양한묵 제주인

대극 이순식 함평인
정재 이석용 전주인
남일 심수택 청송인
해산 전수용 천안인
후곡 최종익 강화인
담산 안규홍 죽산인
추계 양한규 제주인
문봉 김원국 김해인

取義諸公(취의제공)

소송 정재위 영일인
정재 장태수 인동인
매천 황현 장수인
도봉 백인수 수원인
사인 김기순 김해인
춘량호 김영상 도강인
평천 김상각 경주인
단기 4284년 신묘 4월 일
호남순열모의계 중 근수

호남순열모의계가 광복 이후 한말 의병 자료를 수집하던 중 6·25전쟁이 터지자 서둘러 비석을 세우고 사업을 중단했던 것 같다고 한다.
광주 남구 원산동 775 포충사(褒忠祠)
포충사(褒忠祠)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소재지 : 남구 원산동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호남의병을 이끌고 금산(錦山) 싸움에서 순절한 고경명(高敬命 1533년~1592년)·종후(從厚 1554년~1593년)·인후(因厚 1561년~1592년) 3부자와 유팽로(柳彭老 1554년~1592년)·안영(安瑛 1564~1592년)을 모신 곳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헐리지 않았던 전남지역 2대 서원 중 하나이다.
이 건물은 왜란 후 호남유생들이 충의로운 인물을 기리고자 세웠는데 1603년 고경명의 후손과 제자인 박지효(朴之孝)등이 임금에게 청하여 '포충(褒忠)'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980년에 새로운 사당과 유물전시관[正氣館]·내외삼문·정화비 및 관리사무소 등을 세웠고 이때 옛 사당을 보수하면서 충효당(忠孝堂)·청사영당(晴沙影堂)·전사청(典祀廳)·고직사(庫直舍) 등을 철거하였다. 그러나 옛 사당과 동·서재는 본래의 위치에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채로 남아 있다. 포충사에 소장되어 있는 문적(文籍) 4종 9점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포충사 안내도
忠孝門(충효문)
正氣館(정기관)
成仁門(성인문)
褒忠祠(포충사)
구 사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자연석으로 만든 忠奴 鳳伊,貴仁 之碑(충노 봉이,귀인 지비)
충노비
『봉이』와 『귀인』은 고경명 선생의 가노(집안하인)로서 금산전투에 의병으로 참전하여 고경명선생과 차남 인후가 순절한 사신을 거두어 정성껏 장사 지냈고, 이듬해 다시 고경명 선생의 장남 종후를 따라 진주성 전투에 참가 왜적과 싸우다가 주인과 함께 순절하였는데 국난을 당해 신분을 초월한 자기희생을 기리기 위해 자연석에 새긴 비이다.
忠奴 鳳伊 貴仁 之卑(충노 봉이 귀인 지비)
충노비 바로 옆에 있는 홍살문
구 사당은 언덕 위 높은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