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산마을(어등산의병 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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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380-6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박산은 의병마을이다. 임진왜란때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국난에 처할 때 마다 수 많은 주민들이 의병에 참여하여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왔다. 임진왜란때는 양산용, 양산숙, 양산축 3형제가 건재 김천일장군 의진에 참여하여 빛나는 전공을 세웠으며 한림공 양만용은 이괄의 난, 금나라, 청나라 침입 당시 의병에 투신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한말에는 마을 뒷산인 어등산을 중심으로 김준(태원), 김율, 김원국, 김원범, 박경옥, 박봉석, 박용식, 박처인, 양동환, 양진여, 양상기, 오성술, 이기손, 전수용, 정사천, 조경환, 오상열, 오준선, 심남일 등 수 많은 호남의병장들이 이론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장열히 산화하였으며, 이 마을출신 양인묵은 광복군으로 활약하였다. 이에 의병들의 충절을 영원히 기리고자 강운태 광주시장, 민형배 광산구청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4회 호남의병추모제 및 어등산의병의날에 의병마을로 명명한 뒤 긍지와 자부심으로 이 표지석을 세운다.
2013. 10. 25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 김갑제 박산마을 자치위원장 양노진
박산은 의병마을이다. 임진왜란때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국난에 처할 때 마다 수 많은 주민들이 의병에 참여하여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왔다. 임진왜란때는 양산용, 양산숙, 양산축 3형제가 건재 김천일장군 의진에 참여하여 빛나는 전공을 세웠으며 한림공 양만용은 이괄의 난, 금나라, 청나라 침입 당시 의병에 투신하여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섰다. 특히 한말에는 마을 뒷산인 어등산을 중심으로 김준(태원), 김율, 김원국, 김원범, 박경옥, 박봉석, 박용식, 박처인, 양동환, 양진여, 양상기, 오성술, 이기손, 전수용, 정사천, 조경환, 오상열, 오준선, 심남일 등 수 많은 호남의병장들이 이론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장열히 산화하였으며, 이 마을출신 양인묵은 광복군으로 활약하였다. 이에 의병들의 충절을 영원히 기리고자 강운태 광주시장, 민형배 광산구청장을 비롯한 각급 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4회 호남의병추모제 및 어등산의병의날에 의병마을로 명명한 뒤 긍지와 자부심으로 이 표지석을 세운다. 2013. 10. 25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 김갑제 박산마을 자치위원장 양노진
박산마을 안내지도
박뫼마을
이 길은 유서 싶은 박뫼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박뫼마을은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이며 학자인 송천 양응정(松川 梁應鼎:1519~1581) 선생이 이 마을로 들어와 산 뒤 '박산(博山)' 또는 '박뫼'라 불리게 되었다. 박뫼마을은 충(忠).효(孝).열(烈)의 전통을 이어온 마을이다. 임진왜란 때 양응정의 아들 양산숙은 진주성을 사수하다 순절하였고, 정유재란 때에는 양응정의 부인과 아들 딸, 며느리 등 일가족이 왜적에게 굽히지 않고 자결하였다. 정묘호란 때에는 양응정의 손자 양판용이 의병을 일으켰다. 박뫼마을에는 1635년 제주양씨 일가의 충절을 기리고자 세운 양씨삼강문이 있다.
의병장 양만용의 어등산 시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오재(梧齋) 양만용(1598~1651)은 자신의 고향인 어등산 아래 박산마을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斗覺虛堂枕簞寒(두각허당침단한) 빈집의 잠자리가 차가워 문득 깨워보니
高風送雨響簷端(고풍송우향첨단) 비를 보내는 높은 바람 소리 처마 끝에 울이네
啼嗚引子投烟樹(제오인자투인수) 우짖는 까마귀는 새끼 데리고 안개 낀 숲으로 들어가고
宿烏尋巢入畵欄(숙오심소입화란) 새들은 둥지를 찾아 난간으로 들어오네
窓影漸随蟾影轉(창영점수섬영전) 창 그림자는 점점 달그림자 따라 돌아가고
蟲聲還連漏聲殘(충성환연누성잔) 벌레소리 도로 이어지고 빗소리 그쳐가네
龍江水石魚山趣(용강수석어산취) 황룡강의 물과 돌, 어등산의 정취가
夜夜方明夢衰看(야야방명몽쇠간) 밤마다 또렷이 꿈속에서 보이네
시인은 어등산을 고향으로 둔 사람답게 어등산과 황룡강의 정취를 실감나게 노래하고 있다. 이 시에는 고향 산천에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만사(晩沙) 서경우(徐景雨)

底意松翁臥此間(저의송옹와차간) 아마도 송천옹이 여기에서 기거하면서
當年進退不應閑(당년진퇴불응한) 그 당시는 오고 가도 한가롭지 못했으리
終知敎子惟忠孝(종지교자유충효) 알았도다 자식들을 충효로 가르쳤기에
矗石三鄕重泰山(촉석삼향중태산) 촉석루 삼향리가 태산보다 무거웠네
박뫼마을(박산)
어등산 박뫼마을은 임진왜란때 의병으로 출병 8가족의 희생이 따랐던 의병마을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의병 양산숙 형제 등을 모시는 양씨삼감문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충의의 고장이라고 했다. 구한말 의병들도 이 마을을 주축으로 정보교환을 했던 주막집이 있었으며 주민들의 지원과 도움을 받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광주 광산구 박호동 380-6 박산의병마을 어등산의병 전적지 표지석을 찾았다.
博山義兵(박산의병) 마을 - 어등산의병전적지
博山義兵(박산의병) 마을 - 어등산의병전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