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청하면 유계리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생가로 되어있는 유계리 422를 찾아서 묘소 위치를 문의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없다.
포항시 북구 유계리 466-4 유계2리 마을회관 앞. 월중 이상호 선생과 동명이면서 한자까지 같으신 3.1운동 애국지사 이상호 선생의 사적을 찾아왔다.
유계리 마을 유래
서정천의 발원지인 궁곡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을 따라 덕성산과 호학산 줄기가 형성한 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 명종 원년 을사사화때 황해감사로 있던 윤상문이 이 마을에 유배되어 하천계곡 서쪽마을 즉 서계리라 불렀으며, 하천에 돌이 쌓여 물이 쉽게 잦아들어 건천동,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유계리로 개칭하였다..
마을 북쪽 안 골짜기는 궁곡, 황배이골, 왜명동 등의 지명이 있으며, 신라시대 황방사 절터에 1943년 법성사가 건립되었다.
마을 동편 하천변에 오리에 뻗친 풍치림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총 개머리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벌채되었고, 현재 1천여 평에 50여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있다.
1919년(기미년) 3월 12일 청하장터에서 나라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의거를 일으킨 주동자(청하 8인, 송라 15인) 23인중 한 사람 이상호(1890 ~ 1954) 독립의사의 생가가 있고, 마을 서편 작은 언덕위에 그의 묘소가 있다.
서정천의 발원지인 궁곡에서 흘러내리는 냇물을 따라 덕성산과 호학산 줄기가 형성한 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 명종 원년 을사사화때 황해감사로 있던 윤상문이 이 마을에 유배되어 하천계곡 서쪽마을 즉 서계리라 불렀으며, 하천에 돌이 쌓여 물이 쉽게 잦아들어 건천동, 냇가에 버드나무가 많아 유계리로 개칭하였다..
마을 북쪽 안 골짜기는 궁곡, 황배이골, 왜명동 등의 지명이 있으며, 신라시대 황방사 절터에 1943년 법성사가 건립되었다.
마을 동편 하천변에 오리에 뻗친 풍치림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총 개머리판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벌채되었고, 현재 1천여 평에 50여 그루의 노거수가 남아있다.
1919년(기미년) 3월 12일 청하장터에서 나라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의거를 일으킨 주동자(청하 8인, 송라 15인) 23인중 한 사람 이상호(1890 ~ 1954) 독립의사의 생가가 있고, 마을 서편 작은 언덕위에 그의 묘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