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마북리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철조망을 우회해서 철망 안쪽으로 넘어왔다.
그나마 이어졌던 길은 계곡물에 의해 없어진 곳에 안내판이 보인다.
길은 이곳부터 없어졌고 개천으로 다가다 물막이보에서 좌측 언덕으로 올라간다.
물이 흐르는 계곡 하천과,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을 번갈아 가면서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신기하게 물이 많이 흐르는 계곡 하천이 순식간에 이렇게 건천으로 바뀐다.
안내판에 표시된대로 약 30분이상을 개천을 따라서 올라오니 물막이 둑이 보이고 동학의 깃발도 보였다.
하지만 좌측으로 산위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나무를 붙잡고 올라가다 올려다 보니, 위쪽에 가느다란 대나무들이 보였다. 사람이 살았었다는 증거다.
올라오니 안내판이 보였다.
간판 안내문이 떨어져서 칡넝쿨로 묶어 놓고, 쓰러지지 말라고 지팡이로 고여 놓았다.
간판 안내문이 떨어져서 칡넝쿨로 묶어 놓고, 쓰러지지 말라고 지팡이로 고여 놓았다.
천도교 교조 해월 최시형 옛 집터
이 곳은 해월 최시형이 1859년(33세)부터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다. 그는 1861년에는경주 용담으로 수운 최제우를 찾아가 동학에 입도한 후 독실한 수련으로 많은 포덕을 하여 劍岳布德(검악포덕)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37세 되는 해에 동학의 제2세 교조가 되었다. 1894년 갑오동학혁명을 영도하였으며 '만물이 다 한울님을 모셨다' '만민은 모두 평등하다' '땅을 어머니의 살처럼 여겨라' '어린아이 함부로 떄리지말라'고 말씀하시었다.
이 곳은 해월 최시형이 1859년(33세)부터 화전을 일구며 살던 곳이다. 그는 1861년에는경주 용담으로 수운 최제우를 찾아가 동학에 입도한 후 독실한 수련으로 많은 포덕을 하여 劍岳布德(검악포덕)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37세 되는 해에 동학의 제2세 교조가 되었다. 1894년 갑오동학혁명을 영도하였으며 '만물이 다 한울님을 모셨다' '만민은 모두 평등하다' '땅을 어머니의 살처럼 여겨라' '어린아이 함부로 떄리지말라'고 말씀하시었다.
여기저기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많다. 돌담도 있고...
유허지에서 내려가는 다른 길은 없고 물막이보 방향으로 급한 경사길로 내려올 수 밖에 없었다.
포항시 북구 신광면 마북리 474-1에 도착했다.
저수지까지 올라왔지만 철망으로 막혀 있다.
저수지 둑에서 보이는 저수지 위쪽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