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상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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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499-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도총장에 올라 외와 벌에세 적도를 휘몰아 치니 가는곳 마다 왜적은 쓰러지고 그들의 소굴은 무너졌다.
그 지략과 용맹을 적은 매우 두려워하였고 동지들은 그를 기리어 숲속의 범이라 일렀다.
정대장 부자가 차례로 순국하고 대를 이은 최세한 대장마저 꺾였으나 그 뜻은 갈수록 굳어졌다.
의진을 다시 고루어 경상우도 대장이 되니 그의 호령은 영남과 동해를 울리었다.
남으로 진주에서 북으로는 울진에 이르기까지 수십 고을에서 전후 7년간 많은 전과를 거두었으나 그 보람도 없이 끝내 나라를 빼았기니 투쟁은 새모 광복 운동으로 이어졌다.
1909년 왜적에 잡혀 투옥됨을 비롯 줄곧 세 차례에 열다섯 해의 모진 옥살이를 겪었으나 나라 위한 마음은 쉬지를 않았다.
풀려나면 곧 다시 동지를 찾고 뒷날의 큰일을 위하여 천하를 두루 다녔다. 우재룡 의사와는 죽음의 맹서로 손을 잡았고 대륙으로 건너가 김동삼 지사와는 피로서 이 강토를 구하고자 다짐했다.
대동단에서는 영남을 맡았으며 의열단을 도와 군자금을 모으는 등 지하 조직 활동으로 매운 삶을 바쳤다.
여기 임의 자취담긴 유허지에 임을 새겨 모시노니 높고 넓은 넋 삼천리를 돌보시고 억만 겨레 위에 등불이 되어 주소서.
묘소는 일찍 대구 선렬묘지에 모셨고 대덕산 공원에는 동상을 세웠으며 그 공을 책으로 엮어 세상에 펴고는 이어서 경상북도와 청송군의 후원으로 강호의 정성과 의사의 아들 병태의 효성에 의하여 삼가 이 비를 세우다.
1977년 4월 일
경북 청송군 현서면 수락리 499-4 마을회관 맞은편 중호 임용상 의사 유허비를 찾아왔다.
中虎 林龍相 義士 遺墟碑(중호 임용상 의사 유허비)
中虎 林龍相 義士 遺墟碑(중호 임용상 의사 유허비)
보현묏부리 힘차게 뻗어 내린 이 두메는 금세기 초에 이땅을 짓밟던 왜적을 무찔러 겨레의 얼을 빛낸 나주 임중호 의사의 고장이다. 신령에 빌어서 용의 꿈으로 태어나니 이름 용상이요 효수공의 아드님이다.
어질고 슬기로운 천성으로 글을 읽어 덕을 닦고 어버이를 섬겨 효자상을 받음도 있으나 한편 타고난 절세의 기백은 나라사랑의 불꽃이 되어 한살이로 영남 천리와 대륙 만리를 휘달리면서 침략자 왜적과 싸웠다.
나이 스물아홉에 영덕 고을 청연사에서 동지를 이끌고 산남의진에 뛰어드니 이 진은 도찰사 정환직 선생이 고종황제의 밀조를 받고 온나라에 왜적토벌의 민병봉기를 지휘할세 그 뜻을 이은 아드님 정용기 대장이 영천땅에서 횃불을 든 영남의진의 본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