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성지 사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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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2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돈녕부 도정 의병대장 소류선생 청송심공 사적비
산수의 승지인 영남의 명부 청송은 인걸지령이라는 옛말따라 문덕과 잠영 충절과 효열의 인사가 많이 나왔다. 한말에 또한 명유가 있었으니 즉 고 돈영부 도정 의병대장 소류선생 청송심공으로 휘는 성지요 자는 사행이며 소류는 그 표덕이다. 공이 순조 신유에 총영한 성자와 호만한 재기로 논수동 구제에서 태어났다.유시로부터 언행이 비범하고 스스로 독서를 좋아하여 포취전에 능히 문장을 지었다 9세의 어린 나이에 모부인상을 당하여 성인처럼 집상하였으며 계비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다. 초장에 더욱더 학업에 정려하여 날로 진취할세 친령으로 돈와 유공문하에 종유하여 중용을 배우다가 소덕은 소류라는 구절에 이르러 이르기를 내가 사는 지지와 같으니 제호를 소류라 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데 유공이 매우 좋은 생각이니 더욱 면려하라 하였다. 을미년에 계비상을 당하여 역시 애통과 예절을 다하였다 이로부터 두문불출 오직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계미년에 천상을 당하여 이미 노분인데도 애훼유제하며 3년을 노묘하였다.복궐후 소거에 소류정사라 편액하고 심경근사록과 주퇴등서를 완적하는 한편 장횡량의 동서명과 주문공의 가훈을 좌우에 계시하여 조석으로 관완하면서 양성수신에 전념하였다. 이에 학흥덕소하여 그 성망이 향방에 드러나 조정에 까지 알려저 무자년에 의금부도사가 제수되고 갑오년에 돈녕부 도정에 승배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 이때
간신들이 발석하여 왜적을 인원하고 국권을 천롱하여 을미년에 곤전살해의 변이 일어났다. 이에 온 나라 장보가 분개하고 영남열읍의 자사들이 분기의거하자 청송에서도 유림이 모여 창의토적을 모의핤게 년덕이 높고 학문과 지략을 구비한 공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부장에 조성업 좌익장에 김상길 우익장에 남두희 소모장에 심능장 의영도 지휘사에 서효원 기타 참모를 적재 선임하여 의진을 편성하였다. 이에 공이 칠순 노령에도 불원하고 결연히 장단에 올라 장엄한 의지로 진충보국을 선서하였다. 영중에서 작전계획을 짜던 어느날 밤 여러 참모들과 함께 시를 읊기를 ....이라하여 장지를 표하였다. 그리고 간선군정을 조발하여 영덕 흥해의 적도를 퇴각시켜주고 안덕에 이르러 감은에서 이천의성진이 왜적과 격전한다는 급보를 듣고 돌진 동충서격하여 7,8명의 왜구를 참살하니 적도들이 황?패주하고 장병들의 사기가 충천하였다. 이로부터 향중의 많은 지사들이 의진으로 모여들어 왜적의 토명을 찬진하던중 조정의 의진철거령으로 해산하고 절치부심 의분을 품은채 산정으로 돌아와 경사로 통한을 달래며 군국의 앞날을 위하여 후진을 계도하다가 노환으로 향년74인 갑진년 11월 12일에 고종하여 많은 동지들의 애도속에 주봉산 선좌원에 안장하였다. 공의 세계...
소류정
청송을 찾았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 121 소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