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마을 표지석(안덕면 감은리), 감은리 전투전적비, 항일의병 13의사 기념비, 청송의병 감은리 항일격전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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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 194-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항일의병
감은리 전투 전적 기념비
방포여뢰(方袍如雷)하고 비환여우(飛丸如雨)한데 본진은 후방에서 공격하고 利川(이천)과 義城(의성)의진은 전방을 막아 삼진이 합세 적병 칠,팔인을 사살 전과 후 일몰하여 하산 퇴각 玉峴(옥현)에 유진하니 적들이 감은촌(甘隱村)을 방화하여 참상은 형언할 수 없이 한 마을이 겨우 육,칠 가구만 남았다는 전화(戰禍)는 1896 병신년 4월 초 2일(양 5월 14일) 청송의진의 진중일기인 적원일기(赤猿日記)에서 밝혀진 항일의병 감은리 전투 현장의 참혹한 사실의 기록인 즉, 때는 120년 전 이웃나라 日本(일본)이 우리나라 대한제국(大韓帝國)(고종 31년)의 국권이 비세(非勢)하여 1894년 동학란이 일어나자 평정에 도움을 주겠다는 빌미로 파병하여 앞서 주둔하고 있던 청(淸)나라와 전쟁을 유발 승리하게 되자 그 기세를 몰아 우리나라의 국권 찬탈을 노골화하면서 국정을 농단(壟斷)하다. 드디어는 1895년 8월 20일 국모인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고 단발령을 내리는 야만적인 을미만행으로 전국 각지에서 분기(奮起)한 의병들이 창기(倡起)할 때 우리 청송에서도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난을 당했을 때면 의병(義兵)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도리이거늘 따르고 따르지 않는 것은 충신과 역적임을 스스로드러나게 하는 것인데 향회의 모임에 한 번이라도 참여치 않음은 부모에 대한 의리(義理)를 저버리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니 과연 옳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엎드려 바라옵건데 여러 첨존은 밤을 새워서라도 달려와 거의(擧義) 도모를 함께 하기 바라노라."라는 위국거의(爲國擧義) 자수지계(自守之計)와 춘추대의(春秋大義)를 명분으로 효유(曉諭) 창의(倡義)하였던 의진(義陣)으로서 경기도 이천의 김하락(金河洛)의 진과 의성의 김상종(金象鍾) 의진이 우리 청송의 심성지(沈誠之) 의진과 함께 삼개 지역 의진이 승전(勝戰)한 한말 항일의병사의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전사(戰史)임에도 널리 알려져 있지 못한 안타까운 사적(史的)이라 만시지탄은 있으나 丙申倡義(병신창의) 靑松義兵(청송의병)의 倡義(창의) 120주년이 되는 二甲周年(2갑주년)을 맞이하여 (사)의병정신 선양 청송지회의 발의에 의해 청송군민의 성력으로 항일의병 감은리 전투 전적 기념비를 건립하여 이천의진과 의성의진에 대한 감사와 함께 감은리 전투 참전 삼개 의진 의병선열들의 국권수호를 위한 자발헌신(自發獻身) 호국정신(護國精神)인 의병정신(義兵精神)을 위무 추모하면서 항일 의병사에 길이 남을 중요 전투 전적지로 영원히 기념하고자 하노라.
2016년 5월 14일 건립 청송군수
(사)의병정신 선양 경북지부 청송지회 지회장 달성 서점 근식
경북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 194-1 소공원 항일의병 감은리 전투전적비를 찾았다.
의병마을 감은1리
병신창의 청송 의병
감은리 항일 격전지

대한민국 건국훈장
항일의병 감은리 십삼의사 기념비

항일의병
감은리 전투 전적 기념비
丙申倡義 靑松 義兵 甘隱里 抗日 激戰地
병신창의 청송 의병 감은리 항일 격전지
병신창의 청송 의병 감은리 항일 격전지

서기 1896년 음 4월 2일 서전대승
병신창의 청송의병 선열 유족회 임원일동
감은리 전적기
이곳 감은리 뒷산은 서기 1896년 병신년 4월 2일 청송의병이 친일
적군과 대치교전하니 방포여뢰하고 비환여우하여 적 7~8명을 사살하고 잔적은 격퇴하여 서전대승한 격전장이다. 퇴각하던 적군이 앙갚음으로 온마을을 불태워 연화가 긍천하고 포성이 진지하여 그 참상은 차마 형언할수 없었다던 당시를 상기하고자 이곳 항일 격전지에 표지를 한다. {사재적원일기}
서기 2002년 3월 16일
병신창의 청송의병 선열 유족회
대한민국 건국훈장
항일의병 감은리 십삼의사 기념비
대한민국 건국훈장
항일의병 감은리 십삼의사 기념비
구한말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심으로 시작된 항일의병은 왜적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때마다 일어났다. 의병은 농민이 주축이었고 지도자는 전직관료나 유학자였다. 이들은 향토지리에 밝아 지역 조건에 맞는 무기, 매복, 기습, 위장 등 유격전술로 열악한 조건에서도 왜적과 싸우고 무찔렀다. 1896년 5월 14일 청송군 안덕면 감은리에서 청송, 의성, 이천 의병부대 240명과 감은리 주민들이 뭉쳐 이 곳 산야에서 신식소총으로 무장한 왜군들과 싸워 이긴 항일승전 감은리 전투를 적원일기에서는 상세히 밝혔다. 당시 패배에 격분한 왜군들이 분풀이로 감은리 마을을 방화로 전소시켰으며 북진을 중지하고 퇴각하였다. 병자호란시 의병장(주도)의 정신을 이어받은 감은리에는 우리나라 건국사업에 이바지한 반 크므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의하여 항일의병 13명의 이사9전국 2,596명)는 건국훈장을 받았고 아직 미서훈 다수가 있어 전국 최고의 의병마을이 되었다. 항일의병은 애향정신과 호국충정의 투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은리가 왜 불탔는가를 우리 후손들은 잊지않고 기억해야 한다. 조상들의 호국정신을 높이 받들어 푸른청송 내고향 함조사상과 백세청풍 정신을 마음에 담고 또 새겨야 할 것이다.
항일의병 기념공원 충의사 위패봉안 13위
의사 조광규 의사 조규 의사 조규락 의사 조규진 의사 조능호 의사 조독호 의사 조성규 의사 조성눌 의사 조성로 의사 조성박 의사 조성원 의사 조성태 의사 조성효
2018년 10월 일 청송군수 윤경희 감은청년회장 조상락 글 조웅걸
항일의병
감은리 전투 전적 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