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일 탄생지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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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소진리 마을입구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민족교육자 항일애국지사 해동 홍주일 선생 탄생지 소진리 입구' 표석
GPS 상의 주소는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960-2이다.
민족교육자 항일애국지사
해동 홍주일 선생
탄생지 소진리 입구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의 간부로서 활약하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1915년 1월 15일 달성군 수성면 안일암에서 시회(詩會)란 명목으로 모임을 갖고,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이시영(李始榮)·박영모(朴永模)·이영국(李永局)·서병룡(徐丙龍)·김 규(金圭)·정순영(鄭舜永)·황병기(黃炳基) 등의 동지와 함께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라는 비밀결사를 만들어, 기밀부장(機密部長)으로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년여간 옥고를 치렀다. 출옥하던 해에는 대구에 명신학교(明新學校)를 설립하고 교장을 취임하여 학생들에게 조국광복의 기수가 될 것을 역설하고, 광복회(光復會)·의용민족대동단등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각 민족단체의 지도자들과 계속적인 연락을 취하였다.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확산되어 가던 1919년 3월 서울의 이갑성(李甲成)과 연락을 취하면서, 김태련(金兌鍊)·이만집(李萬集) 등의 동지와 함께 대구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던 중, 3월 3일 일제의 예비검속 때 체포되어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1년 출옥 후 대구에서 교남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통하여 항일사상을 고취하다가 일본 경찰의 강권 발동으로 교직을 박탈당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선생께서 설립한 교남학교가 현재의 대구 대륜중고등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