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산28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孝子安東權公相斗之碑(효자 안동권공지비)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산 28 지방도 912번 도로변 애국지사 권상두 효자각을 찾아가고 있다.
효의 고장 단밀
효의 고장 단밀
의성군 단밀면 생송리 산 28번지는 너무 넓은 번지이다.
단밀면 생송리 347 건너편으로 네비게이터에 입력하면 된다.
단밀면 생송리 347 건너편으로 네비게이터에 입력하면 된다.
권상두 효자각(權相斗 孝子閣) - 의성군 향토유적 - 경북 의성군 단밀면 생송1리
공은 1870년(고종7-庚午)에 태어났으며, 자는 군칠(君七), 관향은 안동(安東)이다. 성정이 화순하고 용모 또한 온화하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봉양에 특별한 효성이 나타나더니 성장하여서는 먼 길을 나갈 때나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에게 고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니 공의 덕화로 마을의 교풍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3년 시묘하면서 묘전 상식을 잊지 않았다. 또한 하루에 세 번 애곡(哀哭)하니 옷자락은 피 눈물에 얼룩져 있었고 밤마다 호랑이가 옆에서 지켜주었다. 그 후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하니 어려운 가정이라 짚신을 삼아 팔아서 장날마다 반찬을 준비하였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시탕(侍湯)하며 밤에도 옷끈을 풀지 못하였다. 아버지를 잃고는 일제 때 사설묘지 허가를 받을 길 없어 공동묘지에 입산하고 3년 시묘를 계속하니 구렁이가 나타나 보호하였다. 공의 효행은 널리 전해져 영남 명덕회에서 표창이 있었고 1926년 11월에 효자각을 세웠다. 1993년에는 의성군의 지원과 지역민의 정성으로 보수하였다. 권세와 물욕에 집착하는 현실의 세태에서 돌이켜보면 효의 길을 스스로 지켜 이 땅에 맥을 잇게 한 귀감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린다.
서기 2006년 12월 26일 의성군수
공은 1870년(고종7-庚午)에 태어났으며, 자는 군칠(君七), 관향은 안동(安東)이다. 성정이 화순하고 용모 또한 온화하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봉양에 특별한 효성이 나타나더니 성장하여서는 먼 길을 나갈 때나 돌아와서는 반드시 부모에게 고하였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니 공의 덕화로 마을의 교풍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니 3년 시묘하면서 묘전 상식을 잊지 않았다. 또한 하루에 세 번 애곡(哀哭)하니 옷자락은 피 눈물에 얼룩져 있었고 밤마다 호랑이가 옆에서 지켜주었다. 그 후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하니 어려운 가정이라 짚신을 삼아 팔아서 장날마다 반찬을 준비하였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곁을 떠나지 않고 정성껏 시탕(侍湯)하며 밤에도 옷끈을 풀지 못하였다. 아버지를 잃고는 일제 때 사설묘지 허가를 받을 길 없어 공동묘지에 입산하고 3년 시묘를 계속하니 구렁이가 나타나 보호하였다. 공의 효행은 널리 전해져 영남 명덕회에서 표창이 있었고 1926년 11월에 효자각을 세웠다. 1993년에는 의성군의 지원과 지역민의 정성으로 보수하였다. 권세와 물욕에 집착하는 현실의 세태에서 돌이켜보면 효의 길을 스스로 지켜 이 땅에 맥을 잇게 한 귀감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경종을 울린다.
서기 2006년 12월 26일 의성군수
孝子閣(효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