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소
-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364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울진 기미독립만세기념탑이 있는 울진기미독립만세공원 건너편에는 매화동산이라는 공원이 있었다.
매화동산에는 순국의사 남태영 의병장 충의비와 제단이 있었다.
충의비 건립 취지문
장군은 한시대를 달관하신 선각자로서 약관 32세에 봉화 권용하와 합세하여 의병 오백명을 소집하고 의병장으로 3년간 험준한 조국의 태백산하를 누비며 왜적과 항쟁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1907년 봉화 두전전투에서 왜적에게 피체되어 꽃다운 36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그러니 애석하게도 장군이 남긴 빛난 위훈과 열전이 국사에 쓰여지지 않아 의병사에서 찾을길 없었으나 일본 명치 백년사 총총(總叢)애에서 장군의 의병기록사항이 확인되어 정부에서 1990년 장군의 빛난 공훈을 높이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오호라 장군이 순국하신지 벽여년성상이 지나도록 시신조차 수습치 못하고 향화마져 드릴길 없어 불귀의 고혼으로 구천을 떠돌게 하였음은 후세들의 비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어쩌면 먼 역사의 뒤안속으로 사라져가는 장군의 넋을 기리는 충의비와 제단을 마련코저 2005년 3월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와 지역인사들의 지원과 정성으로 이곳 매화동산에 현충시설을 갖추고 향화를 드리게 되었음은 비록 만시지탄의 감 없지 않으나 실로 뜻깊은 추원보본이요 우국충절의 위훈의 표상으로 먼 훗날 대의로운 항일의병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 한다.
장군은 한시대를 달관하신 선각자로서 약관 32세에 봉화 권용하와 합세하여 의병 오백명을 소집하고 의병장으로 3년간 험준한 조국의 태백산하를 누비며 왜적과 항쟁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1907년 봉화 두전전투에서 왜적에게 피체되어 꽃다운 36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그러니 애석하게도 장군이 남긴 빛난 위훈과 열전이 국사에 쓰여지지 않아 의병사에서 찾을길 없었으나 일본 명치 백년사 총총(總叢)애에서 장군의 의병기록사항이 확인되어 정부에서 1990년 장군의 빛난 공훈을 높이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오호라 장군이 순국하신지 벽여년성상이 지나도록 시신조차 수습치 못하고 향화마져 드릴길 없어 불귀의 고혼으로 구천을 떠돌게 하였음은 후세들의 비도라 아니할 수 없다. 이제 어쩌면 먼 역사의 뒤안속으로 사라져가는 장군의 넋을 기리는 충의비와 제단을 마련코저 2005년 3월 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부와 지역인사들의 지원과 정성으로 이곳 매화동산에 현충시설을 갖추고 향화를 드리게 되었음은 비록 만시지탄의 감 없지 않으나 실로 뜻깊은 추원보본이요 우국충절의 위훈의 표상으로 먼 훗날 대의로운 항일의병사의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 한다.
殉國義士 南泰永 義兵將 忠義碑(순국의사 남태영 의병장 충의비)
위난의 조국을 수호하기 위하여 왜적과 맞서 싸우다가 꽃다운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하신 남태영의병장은 서기1872년 계유 3월 28일에 울진군 북면 상당리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양남씨 22세손으로 상조로는 신라 영의공 휘 민이 시조이시며, 고려 중대광 도?의 찬성사로 영양군에 습봉되신 휘 홍보공이 중시조가 되시고, 15대조 휘 영번공은 고려 신호위보승중랑장으로 14대조 수공은 사헌부 감찰어사로, 12대조 휘 거공은 무과급제하여 참정국원종훈 일등공신으로 한성탐군이셨고, 조부는 휘 경철, 고는 휘 치영이시고 장군의 배는 한양조씨이시다.
"장문필유장"이요 "상문필유상"이라 하듯 ??세족에서 나신 장군은 유년시절부터 남달리 호장한 기품에다 재기가 총민하였고, 불의앞에 결코 굴하지 않는 강직한 의협심이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매사에 살신성인하므로 써 장차 대업을 이루게 될 걸출한 장상지기를 떨치며 성장하셨다.
서기 1905년 이 땅에 일제침략의 간악한 마수를 들어낸 을사늑약으로 온 민족이 비분강개하며 국권을 회복코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왜적의 무력침탈에 분연히 맞서 싸우는 역사적인 일대의병항쟁이 봉기되였다.
이에 장군은 혈기방장한 32세에 오로지 불타는 구국일념으로 뜻있는 지사들과 창의하여 울진군 서면지역에서 젊은장정들을 규합 의병을 모집하고, 이들을 지휘하는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당당한 의병대로서의 전공을
영양남씨 22세손으로 상조로는 신라 영의공 휘 민이 시조이시며, 고려 중대광 도?의 찬성사로 영양군에 습봉되신 휘 홍보공이 중시조가 되시고, 15대조 휘 영번공은 고려 신호위보승중랑장으로 14대조 수공은 사헌부 감찰어사로, 12대조 휘 거공은 무과급제하여 참정국원종훈 일등공신으로 한성탐군이셨고, 조부는 휘 경철, 고는 휘 치영이시고 장군의 배는 한양조씨이시다.
"장문필유장"이요 "상문필유상"이라 하듯 ??세족에서 나신 장군은 유년시절부터 남달리 호장한 기품에다 재기가 총민하였고, 불의앞에 결코 굴하지 않는 강직한 의협심이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매사에 살신성인하므로 써 장차 대업을 이루게 될 걸출한 장상지기를 떨치며 성장하셨다.
서기 1905년 이 땅에 일제침략의 간악한 마수를 들어낸 을사늑약으로 온 민족이 비분강개하며 국권을 회복코자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일제히 왜적의 무력침탈에 분연히 맞서 싸우는 역사적인 일대의병항쟁이 봉기되였다.
이에 장군은 혈기방장한 32세에 오로지 불타는 구국일념으로 뜻있는 지사들과 창의하여 울진군 서면지역에서 젊은장정들을 규합 의병을 모집하고, 이들을 지휘하는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당당한 의병대로서의 전공을
갖춘뒤 서울을 향해 진격하던중, 울진 서면과 봉화 소천일대에서 마주친 왜적과 수차의 교전끝에 적군을 섬멸하는 많은 전과를 거두었었다.
이듬해인 1907뇬 봉화에서 혈맹동지인 권용하등과 합세하여 의병 오백여명을 고모하고, 또 다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3년여동안 울진, 봉화, 영양, 청송, 내덕, 풍기등지를 전전하면서 지휘자로서의 뛰어난 지락과 열화같은 용장으로 선봉에 서서 왜적을 물리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다.
그러나 봉화군 두전지구전투에서 치열한 격전에 혼신을 다하여 행쟁하였으나, 중과부적의 병력과 화력의 열세를 넘지 못하고, 끝내 왜적에게 피체되어 애석하게도 서기 1908년 무신에 꽃다운 36세를 일기로 순국하셨으니..
오호라! 지고한 충절의 뜻 다 펴지도 못한채 애절하게 순절하신 피맺힌 그 통한을 차마 이를길 없도다.
드디어 정부에서 1990년 8월 15일 장군의 충의로운 의병활동에 대한 그 빛나는 위업과 공훈을 높이 기려 대통령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셨다.
이렇듯 장군은 한시대를 보람있게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몸바치신 선구자로서, 오로지 젊은 청춘을 위난의 조국을 위한 구국전선의 선봉인 의병장이 되어, 헌준한 태백산맥을 거점으로 조국의 산하를 누비며 악독한 왜적을 격멸하며 많은 전공을 세우시고, 순국하신지 어언 백여성상!
어즈버 장군이 피를려 남기신 고귀한 업적들이 청사에 기리 빛나는 공훈으로 크게 아로새겨져야 하땅할 진데, 기후 일제치하의 혹독한 감시와 탄압에 못이겨 온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였고, 이로 인한 가세의 화란은 지금껏 후손의 생사조차 알길없게 되었으니, 그 위벙의 현창은 고사하고, 유업의 체백조차 수습치 못한채 불귀의 고혼으로 떠돌게 하고 있었음은 정녕 우리 후세들의 비도요, 수치라 않을 수 없다.
다해이 오래 돈절했던 주손 중화(증손자)의 주선으로 늦게나마 뜻있는 지역인사와 종친들의 열의를 모아 마침내 순국의사 남태영의병장충의비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국가보훈처와 울진군이 이 뜻을 높이 새겨 아낌없는 재정지원과 각개각처에서 충원해주신 알뜰한 정성을 한데
이듬해인 1907뇬 봉화에서 혈맹동지인 권용하등과 합세하여 의병 오백여명을 고모하고, 또 다시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3년여동안 울진, 봉화, 영양, 청송, 내덕, 풍기등지를 전전하면서 지휘자로서의 뛰어난 지락과 열화같은 용장으로 선봉에 서서 왜적을 물리치며,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다.
그러나 봉화군 두전지구전투에서 치열한 격전에 혼신을 다하여 행쟁하였으나, 중과부적의 병력과 화력의 열세를 넘지 못하고, 끝내 왜적에게 피체되어 애석하게도 서기 1908년 무신에 꽃다운 36세를 일기로 순국하셨으니..
오호라! 지고한 충절의 뜻 다 펴지도 못한채 애절하게 순절하신 피맺힌 그 통한을 차마 이를길 없도다.
드디어 정부에서 1990년 8월 15일 장군의 충의로운 의병활동에 대한 그 빛나는 위업과 공훈을 높이 기려 대통령의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셨다.
이렇듯 장군은 한시대를 보람있게 대의를 위해 기꺼이 몸바치신 선구자로서, 오로지 젊은 청춘을 위난의 조국을 위한 구국전선의 선봉인 의병장이 되어, 헌준한 태백산맥을 거점으로 조국의 산하를 누비며 악독한 왜적을 격멸하며 많은 전공을 세우시고, 순국하신지 어언 백여성상!
어즈버 장군이 피를려 남기신 고귀한 업적들이 청사에 기리 빛나는 공훈으로 크게 아로새겨져야 하땅할 진데, 기후 일제치하의 혹독한 감시와 탄압에 못이겨 온 가문은 멸문지화를 당하였고, 이로 인한 가세의 화란은 지금껏 후손의 생사조차 알길없게 되었으니, 그 위벙의 현창은 고사하고, 유업의 체백조차 수습치 못한채 불귀의 고혼으로 떠돌게 하고 있었음은 정녕 우리 후세들의 비도요, 수치라 않을 수 없다.
다해이 오래 돈절했던 주손 중화(증손자)의 주선으로 늦게나마 뜻있는 지역인사와 종친들의 열의를 모아 마침내 순국의사 남태영의병장충의비 건립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이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국가보훈처와 울진군이 이 뜻을 높이 새겨 아낌없는 재정지원과 각개각처에서 충원해주신 알뜰한 정성을 한데
모아 어쩌면 먼 역사의 뒤안길로 사려저가는 울진이 낳은 민족의 선구자, 남태영의병장의 충의의 기념비를 명실공히 기미독립만세를 외치다 돌아가신 선열들의 호국의 넋을 기리는 숙기방박한 이곳 매화동산에 세우게 됨을 비록 만시지탄의 감 없지 않으나, 실로 추원보본하는 뜻깊은 보훈의 표상으로 자랑삼는다.
이제 우리는 여기 당당히 새겨진 장군의 조국수호를 위해 몸바치신 혁혁한 위업을 더 높이 호상하며 고귀한 우국중절의 애국혼이 서린 대의로운 항일의병사의 산 교육장으로서, 유구히 우리 후세들의 값진 귀감과 위대한 교훈으로 가슴깊이 아로 세기며, 그 높은 뜻 기리 빛낼지어다.
이제 우리는 여기 당당히 새겨진 장군의 조국수호를 위해 몸바치신 혁혁한 위업을 더 높이 호상하며 고귀한 우국중절의 애국혼이 서린 대의로운 항일의병사의 산 교육장으로서, 유구히 우리 후세들의 값진 귀감과 위대한 교훈으로 가슴깊이 아로 세기며, 그 높은 뜻 기리 빛낼지어다.
殉國義士 上塘 英陽南公 泰永 將軍 祭壇
(순국의사 상당 영양남공 태영장군 제단)
(순국의사 상당 영양남공 태영장군 제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