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흥부만세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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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 232-1
탐방로그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 산 84 흥부만세공원을 찾아왔다. 번지에 약간 차이가 있었다. 북면성당 건너편이다. GPS 상으로는 울진군 북면 부구리 232-1로 나온다.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4.3 흥부만세 기념탑
흥부 만세공원 조성 취지문
대저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 살피는 것은 오느의 지조를 세우는 일이요, 내일의 순리를 조망함이다. 우리 한민족은 반도의 지리적 조건으로 말미암아 고래로부터 근세에 이르게까지 빈번한 외세에 침략에 맞서 질곡과 응전의 시대를 살아왔다. 실로 우리의 선조들은 나라와 자손의 번영을 위해 질곡의 세월을 의(義)와 충(忠)의 덕목으로 외세를 물리치고 사람을 길러 인(仁)과 예(禮)를 사람살이의 근본으로 우뚝 세웠다.
어찌 전 지구상에서 우리 한반도처럼 의와 예가 강물 흐르듯 연연이 이어져 오는 곳이 있겠는가! 1592년 선조 25년, 섬나라 일본의 소서행장의 무리들이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라는 야만의 허세를 앞세우고 순박의 땅, 조선을 침탈하니, 우리 선조들은 반도 전역에서 나라와 후손과 인의 근본을 지켜내기 위해 괭이와 호미대신 칼과 창을 들고 분연히 일어나 어깨를 결고 맞섰다.
조선 사직의 관문인 동해 울진 땅에 쇠도리깨 장군 김언륜이 있었으니, 향리의 의로운 백성을 모아 창의군을 집결하여 우리 고장 북면 퇴천 땅 벌이개에서 엿새간 낮밤을 싸워 마침내 소서행장의 무리를 물리치고 조선의 관문과 사직을 구했다. 1919년 기미년 4월 13일, 우리 선조들은 흥부장터에서 일본 군국주의 말발굽에 맞서 조선 독립을 부르짖으며 야만의 총칼에 쓰러졌다. 흥부장터에서 분연히 쓰러진 우리 선조들의 선연한 피 속에는 400여 년 전 구국창의를 목숨으로 지킨 선현들의 소중한 정신이 오롯이 흐르고 이었나니, 이제 그 후손들과 북면 주민, 국가보훈처, 울진군, 울진원자력본부 제위가 정성을 모아 이곳 창창한 동해의 파도가 어르고 금강송이 하늘을 맞대며, 종일 맑은 햇살이 머무는 염촌 마루의 흥부만세공원에 의와 예로서 세상을 구한 선조님의 근본을 되살리는 일임을 세상에 알리니 이곳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머리를 조아려 예를 갖출지어다
4.3 흥부만세 기념탑
4.3 흥부만세 기념탑
흥부장터 기미독립만세 보존선언문

역사는 정언한다.
1910년 일제의 경술조약으로 국권이
일본에게 빼앗겼다.
이 나라 민중의 혈관속에는 그들의 폭압에
꺾이지 않는 맥박이 살아 숨 쉬고 조국을
위해 생명을 사르는 용기가 용솟음친다.
1919년 기미년 3월 1일 파고다 공원의
독립선언으로 온 겨레의 분노와 함성이
활화산처럼 반도를 뒤덮었다.
이 곳 울진서 매화장날에 이어 흥부장날
4월 13일, 주야는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는
태극기와 민중의 파도처럼 들끓었다.
충의 혈통을 이어 온 이 고장!
고려복벽운동을 주도한 최복하 선생,
임란의병장 김언륜 선생,
한말 병신의병장 장진두 선생,
울진의병 장진수 선생, 사촌형제와
매화만세주동자 전병겸 선생 등은 모두
이 고장이 낳은 지사이시다.
북면 주민들과 충절의 후예들이
광복 50주년이 되던 1995년 8월 15일,
거룩한 4.13만세 독립정신과 나라위해
목숨을 바친 기백을 천추만세에 기리고자
만세함성이 울려 퍼진 칠보산 현장에
탑과 비를 세웠다.
이곳 북면 주민들의 뜻을 모아 1996년
흥부장터 독립정신 보존회를 구성하고
주민의 가슴마다 자주, 자존, 평등의
3.1정신을 계승하고자 매년 4월 13일
흥부장터에서 만세제를 열어,
숭고한 뜻을 기린다.

1996년 4월 13일 북면독립정신보존위원회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리 산 84 흥부만세공원을 찾아왔다.
번지에 약간 차이가 있었다. 북면성당 건너편이다. GPS 상으로는 울진군 북면 부구리 232-1로 나온다.
4.3 흥부만세 기념탑
4.3 흥부만세 기념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