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택진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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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산49-1

사적지 사진 상세설명

선생은 2005년 영주독립운동사 편찬위원 김일수 교수의 노력으로 독립유공자로 서훈되고, 2006년 동 편찬위원과 지역민들의 노력으로 세상에 다시 알려졌다. 2008년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 위원들과 성균관대학교 근현대사연구팀, 민족문제연구소 지역회원 등이 함께 목비를 세워 추모하였다. 우리는 선생의 높은 뜻을 기려 이 비를 세운다.,
2008.05.
사단법인 대한광복단기념사업회
영주시 풍기읍 금계1리 금계중학교 서북쪽 500미터 산 애국지사 하연 강택진의 묘를 찾아가고 있다.

정감록 제1승지 풍기인삼 시배지 금계1리
저곳 풍기읍 금계1리 영주시 풍기읍 307이 애국지사 강택진 선생이 기거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멸실되고 없다고 한다.
광복단기념사업회에 위치를 문의하였을때 저곳 4채의 펜션까지 가지 말고 도중에 논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었다.
위성지도상으로는 저 정상 바로 앞쪽에 묘소로 추정되는 것이 보인다.
펜션 앞에서 산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산 정상까지 올라가자 전기펜스로 막혀있는 과수원이 있었다.
GPS 상의 주소는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산 49-1이다.
항일독립투사 하연(何然) 강택진(姜宅鎭) 선생의 묘
1892.6.5~1926.10.24
항일독립투사 하연(何然) 강택진(姜宅鎭) 선생의 묘
1892.6.5~1926.10.24
1892.6.5 영주 풍기 출신
1911. 만주로 망명, 김림군정사 재무부원, 독립군자금 모금활동
1919.10. 서울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연통제 조선13도 총간부가 조직되자, 교섭부장을 맡아 독립군 자금 수백 원을 모금 임시정부에 보냄
1920년말 체포되어 옥고 2년을 치름
1923.1. 풍기소작인 조합 결성, 토지9천평을 포함한 전 재산을 조합기금으로 기부, "지주권을 포기하노라" 공개선언
1923.10. 조선노농대회준비회를 결성, 활동하다 체포. 옥고를 치름
1924.4. 조선노동총동맹 중앙위원,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
1926.10.24. 경북사회운동 간청회 사건으로 검거. 병 보석
으로 가성방된 후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 풍기에서 사회운동단체연합장를 치르다.
2005.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지주권을 포기하고 소작인 제군에게 고백하노라."
하연(何然) 강택진(姜宅鎭)
자신의 모든 것을 불태워 민족해방 독립투쟁에 바친 강택진 선생.